Peter Pan in NeverLand

우리는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본문

머릿속 탐구/낙서

우리는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피터팬☞ 2014. 10. 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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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신해철씨의 부고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월요일 밤입니다.

어린 시절 함께 한 그의 음악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벌써 이렇게 가버리다니...

조만간 친구들과 노래방이라도 가서 그의 노래를 부르며 애도해야겠네요.

 

마왕은 갔지만 저는 아직 여기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통일부 홈피에서 찾은 꽃 이미지. 이 꽃과 비슷한 꽃을 파는 아가씨를 만났다.

 

회사에 출근하면 하루에 4번, 10분~15분의 짧은 산책을 합니다. 하루종일 사무실에만 있으면 햇빛을 볼 일도, 몸을 움직일 일도 없기 때문에 시작한 습관입니다. 혹시 일하기 싫어서 잠시 도망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으시면 저도 그 편이 더 정확하다고 답하겠습니다.ㅎㅎ

오늘도 그렇게 오후 일과가 끝나고 야근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산책을 나왔습니다. 일일호프가 예정되어있던 주간부터 조금씩 바빠지던 업무의 강도가 제 한계를 시험하듯 피치를 올려가고, 언제나처럼 산책을 핑계로 업무에서 잠시 도망치면서, 정말 이 일은 나와 안 맞는다고 투정을 하다가, 곧장 하지만 다른 일은 뭘 할 수 있냐는 체념으로 이어지는 공식 아닌 공식을 되뇌이고 있던 그 때, 제 옆으로 한 아가씨가 다가왔습니다.

체크무늬 셔츠에 타이트한 블랙진을 입은 그 아가씨는 작은 꽃화분 몇개가 담긴 상자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습니다. 망설임없이 저에게 다가온 그녀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하더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라고 합니다. 전 꽃가게를 열고 싶은데요, 아직은 꽃가게를 열 정도는 되지 않아서 이렇게 직접 꽃을 팔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꽃 하나 사주시겠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애매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필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그 꽃을 살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거든요. 

 

꽃이 예뻤냐구요? 

그냥 평범한 꽃이었습니다. 

그럼 그 아가씨가 예뻤냐구요? 

전 유부남인 걸요.ㅋㅋ

 

전 그 아가씨가 꽃을 팔아서 꽃집을 열고 싶다는 이야기에 굉장히 신선한, 그리고 기분좋은 충격을 받았거든요. 제가 만약 그 자리에서 꽃을 샀다면, 그건 그 꽃 때문이 아니라 제가 받은 그 유쾌한 한방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입니다. 제 애매한 표정과 아쉬움은 바로 그녀가 제게 보여준 모습에 좀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게 꼭 돈으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꽃을 살 수 있었다면 전 좀 더 기뻤을 것 같네요. 

아무튼 저는 꽃을 살 수 없었고, 그녀는 미소 띈 얼굴로, 딱히 실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른 분을 찾아 갔습니다. 저 아가씨가 정말로 저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을 팔아서 꽃집을 열 수 있을까요? 저 아가씨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걸까요? 아니, 하루 일당은 나오기는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아마 대부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죠. 제 아내도 이 이야기를 해주자, 첫 반응이 "그렇게 해서 꽃집을 열 수 있겠어?" 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부딪히고 있었어요. 꽃집을 열기까지 직접 돌아다니면서 꽃을 팔겠다니!! 그것이 용기던, 낭만이던, 혹은 객기던 아니면 무리수이던 간에, 그녀는 행동하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곧 그녀는 지금의 방법으로는 꽃집을 열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다른 전략을 세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속단하고 미리 결론을 내렸다면 그렇게 거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 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꽃집을 열고 싶으니 꽃을 사달라는 말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범위에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녀는 마치 내가 가진 꿈의 크기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투덜대던 제게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지 못해서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물론, 이 글을 쓰는 저 역시도, 그녀가 그렇게 꽃을 팔아서 꽃집을 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미리 결정하고 지레 포기해버리는 저 자신에게는 작은 흔들림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도 많고,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가능성이 희박한 일도 분명히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시도를 하고 실패했을 때 남는 것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렸을 때 남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죠. 그 시도가 옳다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의 시도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어쩌면 사소하고 뻔한 교훈을, 오늘 다시금 배웠습니다. 고마워요, 꽃파는 아가씨.^^

혹시나, 다음에 다시 강남의 역삼 초등학교 앞에서 꽃을 판다면, 짧은 머리에 검정색 점퍼를 입은 사람에게 다시 꽃을 팔아주세요. 그 때는 꼭 꽃을 살께요.

 

P.S : 프레시안 조합원 게시판에 쓴 글과 동일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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