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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3 같이 살아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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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3 같이 살아요

☜피터팬☞ 2019. 9. 2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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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창동 E마트

  

 퇴근 후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한율이 엄마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가있었고, 한율이는 내가 어서 밥을 먹고 자기와 놀아주기를 기다리며 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우리 하늘 나라에 가서 같이 살아요."


 "그래, 우리 하늘 나라에서 같이 살자."


 한율이가 맥락없이 던지는 말들로 이루어지는 대화 속에서 불쑥 '하늘나라' 이야기가 나왔다.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한율이 이모부를 보냈던 지라 한율이가 '하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이상하진 않았다. 사고 이후에 한율이가 가끔 이모부와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저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율이는 잠시 후에 진심을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나 하늘 나라 가고 싶지 않은데..."


 목소리가 뭔가 서글픈 색으로 바뀐 것을 눈치챘을 때, 한율이는 조금 붉어진 눈시울로 밥을 먹고 있는 내 허리를 안으며 다시 말했다.


 "나 하늘 나라 가지않고 아빠랑 같이 살고 싶은데..."


 "그럼. 한율이는 하늘 나라 가지 않고 아빠랑 같이 살자."


 그 뒤로도 한율이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하늘 나라에 가고 싶지 않고, 엄마아빠와 함께 같이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틈틈이 던졌다. 아내와 나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럽지만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오해를 만들지 않으면서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각자 고민하면서 아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사람은 언젠가는 하늘 나라에 가게 되지만,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갑자기 가는 것은 아니니까(이 부분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율이는 하늘 나라에 가게 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몸은 안 가고 머리만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서로 안을 수 없지 않느냐는 엉뚱한 이야기부터 장난감들은 어떻게 하냐는 나름의 진지한(?) 질문까지 해가며 하늘 나라에 가는 것에 대한,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보여줄 법한 수준의, 과하지 않은 거부감을 보여줬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그 후에 있었던 가족 모임에서도, 더 나타나지 않는 이모부에 대해 특별히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었기에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죽음'이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오는 '헤어짐'에 대해 한율이는 확실히 인식하게 된 것 같다.


2019년 1월 상상놀이터에서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과 비슷하게 평일 아침 한율이의 등원을 책임져 주시는 것은 한율이의 외할머니다. 게다가 둘 다 출근 시간이 이른 편이라 한율이가 잠에서 깼을 때 엄마아빠가 이미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에 한율이가 일어났을 때, 이미 출근한 엄마아빠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주셨지만, 우리는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한율이가 아침에 우는 것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칭얼대는 수준으로만 생각했던 것도 핑계 중 하나였다.

 아무렇지 않게만 생각했던 상황 파악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언제나처럼 엄마가 먼저 출근하고 외할머니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한율이가 깨어난 것이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엄마아빠가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한율이는 엄마아빠가 이미 출근을 했다고 생각했고, 외할머니가 마음이 안 좋다고 이야기하신 바로 그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한율이가 우리가 없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계속 머리를 감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019년 9월 집에서 빙고(강아지) 흉내를 내며


 평소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아이의 수면 시간을 챙겨준다는 핑계로 우리는 아침에 한율이를 굳이 깨우지 않았다. 혹여 아침에 우리가 출근하기 전에 일어나더라도 한율이는 언제나 유튜브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가 출근하기 전에 일어나려는 것은 그저 자기가 보고 싶은 유튜브를 보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다. 한율이 외할머니는 유튜브용 패드를 다루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려면 우리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맞벌이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율이는 필연적으로 '헤어짐'에 대한 감정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율이는 종종 잠들기 전에 내일이 쉬는 날이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 말 속에는 내일은 엄마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하루종일 놀고 싶은 마음에 대한 표현이었음을, 그 경험 이후로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2019년 5월 어린이 집에서


 한율이에게 '하늘 나라'는 '헤어짐'을 의미하는 또다른 말이었을 것 같다. 저녁이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한, 출근할 때의 '헤어짐'도 한율이에게 무척 슬픈 감정을 불러오는데,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은 장난감을 포함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과의 헤어짐이 될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모부의 경우를 보면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언제가 될 지 알 수도 없을테니 더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율이는 저녁 내내 '하늘 나라'에서 같이 살자고 확인하고, '하늘 나라'에 가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했고,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 살자고 화답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한율이가 불현듯 말했다.


 "엄마, 옆에 침대에 누워있어요."


 그리고 엄마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응, 하늘 나라에서 한율이 옆 침대에 누워있을께."





 P.S :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앞으로 되도록 출근하기 전에 한율이에게 기척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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