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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야와라! 1-29 [우라사와 나오키] 본문

감상과 비평/책

만화 - 야와라! 1-29 [우라사와 나오키]

☜피터팬☞ 2008. 11. 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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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다.
이 소녀의 꿈은 '평범한 여성'이 되는 것.
평범한 여성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는
할아버지로 인해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유도를 연습해왔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꿈은 이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일본 유도계에 나타나서 국민영예상을 타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유도스타와 자신이 원하는 평범한 여성의 꿈.
이런 갈등에 빠져있는 소녀가 바로 '야와라'다.

만화를 좀 봤거나, 혹은 주변에 만화를 보는 친구를 둔 사람이라면
'몬스터'라던가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천재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도.
야와라는 연출력과 스토리성을 인정받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작이다.
'몬스터'나 '20세기 소년'을 먼저 접한 독자라면 '야와라'의 분위기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현재를 기준으로 후반작에 속하는 '몬스터'나 '20세기 소년'이
한껏 무거운 분위기를 잡는 것에 비해서
초기작인 '야와라'는 너무 가벼워서 훅하고 불면 날아갈 정도니까.
그러나 나는 '야와라'나 '해피'같은 가벼운 분위기의 그의 초기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신선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스포츠 만화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덕목(?)은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소녀.
(주인공 야와라는 유도를 싫어한다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녀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유도다.ㅋ
솔직히 유도를 싫어하는 유도 소녀라는 설정은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주기 보다는
그저 완벽하게 말 그대로 해프닝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 소녀를 둘러싼 수많은 라이벌들은 당연하고 삼각관계와 미묘한 사랑의 줄다리기는 뻔하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라이벌이나 악역을 맡은 사람들까지도 결국엔 그녀를 모두 좋아하게 된다는...
심하게 말하면, 보는 내내 '와~!! 이건 완전히 만화잖아!!'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억지스럽다고 해도 좋은 설정과 사건들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나는 종종 '야와라'와 '해피'를 두고 완벽한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떠들곤 했다.)

하지만 재미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설정과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유치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 정도다.
일본에서도 이미 그 인기는 증명되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만화를 좋아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렇게 진부하고 유치한 만화가 도대체 왜!!!! 재미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출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출은 컷을 꾸미는 미장센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양새를 의미한다.
'H2'와 '러프' 등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아다치 미츠루와 마찬가지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연출은 화려하진 않지만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설정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않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동화시키는 것.
왜 그런 경우가 있지않은가. 누군가와 토론을 하는데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그 사람의 의견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런 경우.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작들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적절한 캐릭터다.
'야와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현실감은 좀 떨어질 지 모르지만,
만화의 성격에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캐릭터들이며 각각의 성격 또한 확실하다.
마치 인물의 성격만 설정해서 만화 속에 던져놓았더니 그들이 살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할까.
물론 그들은 극중에서 야와라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야와라에게 도움을 받으며, 또 야와라를 돕기도 한다.
그러나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주는 장점 중에 하나는,
그 확실한 성격 때문에 그 성격을 극복하는 모습 또한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기운없이 매일 아파하던 '콩콩'이라는 캐릭터가 유도에서 한 판을 따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흐믓할 수 있는 것은,
그 캐릭터의 신선한 면을 봤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캐릭터가 가진 약점을 극복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

확실히 '야와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좋게 말해서 캐릭터가 분명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본 설정에서 뭔가 대단히 독특한 점은 거의 없다.
스토리나 이야기의 전개도 보는 내내 다음에 일어날 일을 모두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진부한 설정과 유치한 스토리, 그리고 단순한 캐릭터... 이거 정말 괜찮은 만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야와라'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괜찮은 만화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절대 '무거워'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만화는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넌지시 던지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는 만화는 많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 그런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그저 '단순함'과 '명쾌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를 유지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이 만화는 자신이 처음에 내세운 색깔을 억지로 바꾸거나 꾸미지 않고 순수하게 유지한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만화는 재미있다.
왜 재미있는 지 내가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나의 내공은 아직 턱없이 부족해서 설명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만화의 재미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단순함과 명랑함을 전면에 내세운 이 만화에서 복잡한 법칙이나 철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의 흐름과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를 이토록 유려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천재성은
이미 이야기한 대로 작품을 뜯어놓고 봤을 때 단점처럼 보이는 것들을 갖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증명된다.
복잡한 생각없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책.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웃음, 그리고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책.
이 정도면 한 번 읽어볼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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