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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MANHOLE [츠츠이 테츠야] 본문

감상과 비평/책

만화 - MANHOLE [츠츠이 테츠야]

☜피터팬☞ 2007. 10. 2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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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한 평범한 도시인 사사하라시.
그 도시의 상점가에 벌거벗은 사내가 나타난다.
사내는 거리를 배회하다 한 젊은이에게 달려들고,
그 젊은이는 놀라 벌거벗은 사내를 밀어 넘어뜨린다.
넘어진 사내는 죽었지만, 죽기 전에 젊은이의 얼굴에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것이 악몽의 시작이었다.


앞서 리뷰를 쓴 'RESET'과 마찬가지로 츠츠이 테츠야의 작품이다.
나는 'RESET'과 'MANHOLE'을 '츠츠이 테츠야 공포컬렉션'이라는 박스 세트로 구입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었지만(나는 이토 준지 식의 공포가 훨씬 더 좋다.)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작품을 얻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RESET'의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가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현대라는 시대를 특징짓는 몇가지 정의들이 있는데, 대충 기억나는데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거대화된 사회와 소외된 인간들, 철학의 부재와 가치의 상대성, 도덕 불감증 등등.
사실 위에 언급한 현대의 특징들은 이 작가의 작품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RESET'에서 인터넷 공간의 폐해,
혹은 그것을 통해 드러난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간과 어그러진 욕망이 드러났다면
이번 작품은 이 사회에 만연한 악, 도덕의 상실, 철학의 부재, 그리고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찌보면 진부한 주제이기도 하다.
아니, 실제로 이미 많은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런 주제는 진부하다.
그러나 묘하게도 최근에 접한, 그리고 접하고 있는 작품들에서 비슷한 주제를 계속해서 접하고 있었기에
이 만화는 그런 흐름의 하나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진부한 주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아직까지 (적어도 내가 보기에) 우리는 찾지 못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벌하는 것이 정의일까.
우리가 정해놓은 법은 인간의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만화는 필라리아라는 기생충을 들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필라리아라는 기생충은 인간의 시상하부를 파먹고 사는 기생충으로
이것에 감염된 사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이 사라진다.
악이란 것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라는 전제를 깔고 만화 속 범인은 말한다.
언젠가 일본 전체가 필라리아에 감염된다면 모든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과연.
인간에게 있는 끝없는 탐욕과 욕심이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평화롭고 안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의 아내를 탐하지도 않을 것이고, 너의 재산을 탐하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질투하지도 않고, 나의 욕망을 위해 너를 희생하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는 순간 이 우리는 수많은 악과 저열함 속에서 해방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화 속에서 필라리아를 퍼뜨린 노신사는 어쩌면 우리가 흔히 봐왔던 슈퍼맨이나 배트맨과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들도 그들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고, 이 노신사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물론 아메리칸 히어로들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기 때문에
때때로 오해를 받는 일은 있어도, 최후에는 언제나 그들의 정의는 공공의 정의와 맞닿게 된다.
그렇다면 요즘에 인기를 얻고 있는 수많은 장르의 먼치킹 스타일의 주인공들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들에게 정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일 수도 있고 염치없는(?) 주인공들도 많다.
그들의 신념과 노신사의 신념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가 노신사의 편에서 작품을 쓰지않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작가는 자신이 내놓은 이러한 거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만화는 이런 질문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은 대답을 찾았는 지도 모르지만, 나는 찾지 못했다.)
단지 필라리아를 통해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사람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때는 처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불쌍한 희생양들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안타까운 결과들은 노신사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반박하지는 않는다.
감성적으로는 자극할 지언 정 이성적으로는 그저 반박할 여지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던져왔고, 비슷한 물음을 해왔지만
제대로된 대답은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 대답은 언제나 그런 물음과 접하는 개인에게 남겨져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언제나 그렇듯 뻔하다.
꼭 그래야만하느냐고.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야하느냐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자유'라는 덕목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야겠느냐고.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악은 욕망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표현이 그릇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냐고.
게다가 이런 불안함 그 자체가 바로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지만 나의 대답은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의 울림이다.
물론 내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지
그리고 얼마만큼 튼튼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지는 별개의 문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는 순간 우리는 동일한 선상에서 이야기하기가 무척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이다.
내 믿음에 던져진 질문들에 대답해나가면서,
내 믿음을 의심하고 그것이 틀리지않았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끈기있게 밀고 나가는 것.
마치 사사하라서의 두 형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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