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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RESET [츠츠이 테츠야] 본문

감상과 비평/책

만화 - RESET [츠츠이 테츠야]

☜피터팬☞ 2007. 9.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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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
그 가상 현실이 이 세계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처럼 리얼하다면?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가능한 정도의 자유도가 있다면?
이 만화는 이러한 물음을 기본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원치않으면 읽지않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정보의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가 

비교적 구분되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면, 

인터넷은 이러한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생산자와 유통자가 정보의 질과 양을 쥐락펴락하는 일은 

이제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소비자는 스스로 생산자가 되었으며 유통자가 되었고, 

정보의 질과 양을 저울질하며
역으로 생산자와 유통자를 물먹이는(?) 일까지 

할 수 있을만큼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
'공유'라는 말로 대표되는 인터넷에서의 소비는 

생산자가 공급하는 만큼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며, 

생산자는 다시 소비자로, 소비자는 다시 생산자로 만들어내는 말그대로 'Interact'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인터넷의 발달은 단순히 정보의 공유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게임 영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게임의 등장으로 게임은 개발자가 스토리와 캐릭터를 공급하고, 소비자가 즐기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발자는 단지 게임의 '세계'와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만을 조성해줄 뿐이다.
세계가 창조되고 환경이 조성되면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없어도 그만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스토리는 이제 유저들의 몫이 되었다.
온라인 게임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고,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펼쳐진 것은 천편일률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개발자들이 입력한 말을 단순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다.
비록 얼굴은 볼 수 없을 지언 정, 저기 어딘가에서 나와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세계는 인터넷이 'Interact'를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터넷 이전에 과연 우리는 이러한 세계를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인터넷 속의 새로운 세계는 많은 부분에서 매력적이다.
그곳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기 때문에 현실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얼마만큼의 자유도를 구현해주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는 죽어도 죽지않으며, 죽여도 살인자가 되지 않는다.
나는 판타지의 기사가 되기도 하고,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으며, 경주를 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더 큰 'Interact'한 문제가 숨어있다.
자유도가 높은 세계,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의 세계가 단순히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가상의 세계와 고도화된 문명과 그 안을 살아가는 무미건조해지는 인간들이 만나면서 일어난다.
문명화의 혜택을 받으며, 거대화된 사회에 사는 인간들은 그 거대한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의 퍼스널리티는 거의 없으며, 획일화된 생활과 말소된 인간성은 이 시대의 단편적인 특징이다.
그러한 인간이 자극적인 것들에 반응하고 때로 열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분하고 무의미한, 그리고 때로는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곳,
자신의 흥미와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에 집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그 곳에서 제약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과 도덕, 그리고 주위의 시선이라는 수많은 제약 조건은 가상 세계 속에 들어오는 순간 그 힘이 미미해진다.
그 곳에서 우리는 숨겨진 폭력성이나 적개심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며, 따분한 일상이 결코 따분하지 않은 곳으로 변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때로 이런 매력은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전복시켜버린다.

만화에서도 말했듯이 현실에 대한 집착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전복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거대화된 이 사회 속에는 현실의 세계에 집착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인터넷 게임으로 인한 사건은 단순히 만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작가가 이러한 문제에 내놓은 대답은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것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 나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
이 만화에서 가상 세계를 만들어서 범죄를 유발한 범인을 잡는 것은 애당초 만화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이 만화의 진정한 이야기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비인간적이고 무미건조한 인간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몫은 스스로에게 던져져 있다.
만화 속에서 히토미는 죽은 남편에게 온라인 상에서 사과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과가 진심은 자신에게 향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삶을 무료하게 만든 것, 스스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에 대한 사과.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에 자각이었다고 할까.
작가는 사회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사회일 지라도,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이고,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역시 우리라는 것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대답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만화를 통해서 충분히 전달되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인 맨홀을 보아도, 이 작가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스스로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 지 느껴진다.
연출도 흠잡을 때 없었고, 진행도 재미있었지만...
단,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그림체는 아니었고, 스토리의 비약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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