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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 악마의 문화사 [제프리 버튼 러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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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 악마의 문화사 [제프리 버튼 러셀]

☜피터팬☞ 2004. 1. 2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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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게 되었던 계기는.. 그 당시 구상하고 있던 만화의 자료로 쓰기 위함이었다.
내가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악마의 위계질서였는데, 우연히 보게 된 PC용 게임 디아블로 매뉴얼 중에 지옥의 서열을 나열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악마 중 최고 서열은 루시퍼이고 그 아래 바알과 메피스토펠레스가 있고, 몰록같은 여타의 신들이 그 아래의 위계를 이룬다는.. 뭐.. 그런 내용.
나는 각 악마에 대한 기원과 능력, 서열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서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악마의 문화사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당장 구입.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이런 기대를 요만큼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 책은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악마라는 존재를 가정하고-증명하진 않지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극히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이 악마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하나씩 소개해나간다.

-이 책이 크리스트교의 입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가만하면서 읽어주시길..-
이 책은 신학자들이 악마의 존재에 대한 타당한 물음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성경에서는 이미 악마의 존재를, 사탄의 존재를 구약 및 신약에서 언급하기 때문에 크리스트교에서 악마는 당연한 존재였다.
(하지만 모든 신학자들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
선이 존재하듯이 악이라는 것도 존재하는데 과연 악은 왜 생겨난 것일까?
(악이라는 것은 선의 결여상태, 치즈에 구멍이 뚫려있듯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 결국 악마는 허무 그 자체라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인데..
어째서 그분이 만든 세상은 선하지 못하고 이렇듯 악이 들끓는 것인가?
게다가 세상의 모든 것을 신이 만들었다면 악마까지도 신이 만들었던 말인가?
왜 신은 이 세상의 악을 허용하시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신학자들의 머리를(심지어 지금까지도) 상당히 괴롭힌 문제들이었다.
신의 일원론과 전지전능함은 이 문제에서 항상 상충되는 부분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의 입장은 버려야만 했다. (배화교나 기타 수많은 이단들이 이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신과 악마 둘 다 대등한 입장이거나-이 경우 일원론을 버리게 된다-, 혹은 신은 악마나 혹은 다른 것에 의해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세상에 악이 창궐한다-이건 신의 전지전능함을 버린 거고..-) 두 입장을 서로 잘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수도없이 행해졌지만..(자유의지를 도입한 것은 상당히 가까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글쎄.. 적어도 내가 이해할 정도의 타당한 답은 제시되지 못했다. 어쨌든 악마의 존재와 그 기원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스무고개는 계속되었다.

종교가 발전해가듯이 악마에 대한 입장 역시도 조금씩 발전해나갔다.
초기에 악마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중세가 시작되면서 각종 예술에서 나타난 악마의 모습들에 영향을 받게 되고,
현대에 들어가면서 유물론적 세계관이 점점 그 입지를 굳힘에 따라서 그 입장이 점점 모호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이 책이 가진 모호한 관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초반부, 철저하게 악의 문제에 대해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관점만을 다루던 것이
크리스트교가 커지고, 문화의 발달과 함께 커진 전체 악마에 관한 문화를 모두 다루려하면서 그 부피를 점점 더해갔기 때문이다.
(하긴.. 제목이 악마의 문화사이니...;;)
결국 종국에는 문화사에서 악마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문학 속에 나온 그들의 묘사에 더 초점이 맞춰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된 이후부터,
악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인간이 가진 악, 그리고 악마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그 발전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초기의 입장. 그리고 그것의 모순. 그걸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 거기에 이른 반박.
초반, 거의 철학적 입장에서의 악마의 문제는 사회가 발전하고, 민간문화가 발달하고, 종교가 갈리면서 이젠 정치적인 색을 띄게되고, 점점 난잡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에 와서는 악마의 존재는 강요할 수 없는 애매한 사항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객관적인..(음.. 이 객관적이라는 말이 지금의 내게는 좀 의미불명하다.) 적어도 과학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
저자 역시 크리스트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족한 이론, 혹은 이단의 이론에 대한 반론과 그 이론의 모순성은 계속적으로 지적되지만, 현재의 기독교가 택하고 있는 이론의 모순점이나, 반박은 전혀 지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은근히 강조되는 악마의 존재성에 대한 타당함.
마지막에 제시되는 저자의 주장 또한 호소력이 강하지도 않다.
(악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뿐이라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이 책의 전체적인 짜임새와도 맞지 않게 느껴졌다.)

뭐... 결국 이 책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해주지는 못 했지만, 한 가지 더 근본적인 것을 알게해주었다.
결국 악마의 위계같은 것은 실제 체계적으로 잡힌 것은 없다는 것.
결국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맞게 자기 의도대로(하지만 참고한 문헌같은 건 있겠지.) 만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많이들 알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트교의 악마들은 다른 종교의 신들이 변형된 것이라는 것.
또한 악마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중적인 의미와 악마의 문화사를 보면서 엿보게된 크리스트교 자체의 모순성 등등.
덤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만화 속 세계관.. 좀 더 정확하게는 신에 대한 그리고 악마에 대한 입장을 스스로 세워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P.S : 관련사진찾기가 꽤 힘들었다..; 악마의 문화사 표지는 이미지가 없어서..-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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