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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 우주의 암호 : 양자물리학의 자연관 [하인즈 페이겔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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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 우주의 암호 : 양자물리학의 자연관 [하인즈 페이겔스]

☜피터팬☞ 2006. 11. 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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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물리학은 뉴턴으로 시작한 고전물리학의 세계를 넘어서
아인슈타인이 열어놓은 양자물리학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물리학의 개념적 변화는 단순히 학문적인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대에 가장 중요한 것인 '돈'의 흐름을 연구하는 경제학이
지금은 더 중요한 학문으로 여겨질 지는 모르지만,-나 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리학의 발전은 단순한 생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닌 철학의 변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
학부 때 들었던 '과학 철학'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현대에 나오는 철학 논문 중 압도적인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양자 역학에 관한 논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물리학자가 지적했듯이 현대 물리학은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너무 많이 멀어져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물리학자들의 태만이기도 하겠지만, 양자 역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수학적인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모 대학 화학과인 동생이 이번 학기에 양자 화학을 듣는데,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수학적인 부분을 상당히 어려워 하더군.
물론, 양자 역학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그 개념적 난해함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서도 그토록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일테고.)
하지만, 이 책은 복잡한 수학적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양자 역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저 막연히 양자 역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일 지도 모르겠다.

양자 역학이 어려운 이유는 앞서도 설명했듯이 수학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개념적 난해함이 가장 크다.
오히려 수학적으로는 아무 오류가 없다고 하는데, 물론 그 수학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테지.
이 책의 저자는 양자 역학을 배울 무렵, 이것의 물리적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수학적으로만 성립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양자 역학에 대한 물리적 이해가 이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가 양자 역학의 세계가 아닌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양자 역학은 아주 작은 미시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거시 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는 뜻.
다음은 '과학 철학'시간에 들은 양자 역학에 대한 비유적 이야기이다.

한 테니스 선수가 벽에다 공을 치고 있다.
처음 공을 벽에다 친 후에 우리는 그 공이 다시 우리에게로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양자 세계에서는 다르다.
공의 반은 우리에게로 돌아오지만, 나머지 반은 벽 뒤로 넘어간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시 세계에서는 이러한 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러나 양자 역학의 수학으로 풀어보면 가능한 일이 된다. 아무런 오류나 문제가 없다.)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돌아온 공과 넘어간 공, 어느 공이 진짜 공인가?

양자 역학의 개념적 이해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과거의 물리학에서 모든 것들은 예측 가능한 값이었고, 확고한 값이었다.
우리는 공을 얼만큼의 속도에, 어느 정도의 각도로 던지면, 그 공이 떨어질 위치와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공기의 저항과 대기의 흐름까지 계산할 수 있다면, 공이 떨어지는 정확한 위치를 오차가 없이 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공이 날아가고 있는 순간의 속도와 위치도 계산이 가능하다.
이것이 고전 물리학의 세계다.
고전 물리학은 결정론의 세계였고, 모든 것은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 존재했다.
모든 요인을 고려할 수 있다면, 우리는 먼 미래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순간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바로 고전 물리학이 이끌어가던 세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양자 역학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한다.
양자 역학은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알면서 동시에 입자의 속도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결정론적 이해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불확실성,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확률적 결론만이 존재할 뿐이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고 믿어지는 일들이 양자 세계에서는 양립해서 일어난다.
공이 벽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은 이중성이 존재하는 세계가 양자의 세계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양자 역학의 세계는 미시 세계의 일이다.
육안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이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미경같은 관찰 도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미경으로 양자 세계를 보는 것은 아직은-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단지 전자를 쏘아서 그 흔적을 관찰하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바로 그 부분이 문제다. '측정'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세계를 관찰한다는 것.

이 책에 양자 세계를 비유하는 아주 좋은 예가 있다.
토마토의 씨를 숟가락을 통해서 측정하는 것.
토마토 씨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토마토 속에 숟가락을 찔러넣는다.
토마토 씨에 숟가락이 닿는 순간에 우리는 토마토 씨의 위치를 알 수 있지만, 토마토 씨는 밀려서 움직인다.
숟가락이 토마토 속에 들어옴으로 해서 토마토는 숟가락의 영향을 받고 이것은 토마토 씨의 위치나 속도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가 양자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우리는 양자 세계가 가진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밖에 볼 수 없다.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처럼, 양자 역학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앞면을 볼 것인 지, 뒷면을 볼 것인 지를 미리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본 세계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공이 직선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떨릴 수 있을까?
거시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떨리면서 앞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자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우리가 직선으로 보고 싶은 지 떨림으로 보고 싶은 지만 결정하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거시 세계의 모델은 이러한 현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측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본 세계는 이중성을 인정하고, 그 이중성이 어떻게 양립하는 지 보여주진 않는다.
수학적으로 모순이 없고, 측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이중성을 하나의 상으로 '그릴 수 없을 뿐'이다.

양자 역학은 우리의 세계를 결정론의 세계에서 비결정론의 세계-확률의 세계로 바꾸어놓았다.
그것은 빅뱅 이론과 진화의 이론에 힘을 실어주었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최근에 읽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 비슷한 글귀가 있었다.
"700마리의 원숭이가 700년 동안 타자를 치면 그 중에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나온다."
안 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시작해서 차곡차곡 쌓여 큰 세계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넓은 범위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 굳게 믿어왔던 "내 뒤에 펼쳐진 확고한 세계"는 이제 "뒤돌아 버린 후엔 알 수 없는 세계"로 바뀌었다.

양자 역학을 접하게 되면서 한 가지 내내 궁금했던 것이 있다.
이제 우리는 확률의 세계로 넘어갔고,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뒤집혀버렸는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뉴턴 물리학을 배우고, 그것을 이용하는가.
실제로 내가 공부하고 있는 토목의 경우에는 뉴턴으로 시작해서 뉴턴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이 세계의 패러다임이 그것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나의 궁금증에 대해서 이 책은 속시원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아주 약간의 실마리는 던져주었다. 위안과 함께.
양자의 확률의 세계는 앞서도 말했듯이 아주 작은 세계이다.
현미경을 이용해서도 접근할 수 없는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작은 세계.
그 미시 세계가 우리의 세계로 넘어오면 확률은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무시할 정도의 오차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시에 측정한 값들, 동시에 예측할 수 있는 값들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차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거의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오차가 쌓여서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에, 우리가 측정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
따라서 우리는 굳이 이 편안한 고전 역학을 버리지않아도 되는 것이다.(이 부분은 순전히 나의 결론이지만, 충분히 논리적이라고 본다.)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살펴볼 것이 많다.
이제 나는 양자 세계의 끝자락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이 세계가 가진 특징들이 어떤 철학적 의미를 지니는 지, 그것이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지는 여전히 이야기 거리이고, 토론의 대상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해봐야 당신이 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이해한 세계의 반의 반도 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이해한 세계 역시 전체 양자 세계의 1억 분의 1 정도나 될 지 모르겠다.
이런 거대한 세계에 첫 발을 내딛기를 결정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꽤 좋을 듯 하다.
양자 역학을 설명한 책 중에 복잡한 수학식없이 설명만으로 접근한 책이 거의 없다.
양자 세계와 수학은 너무나 밀접하기 때문에 수학을 빼놓고는 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양자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을 통한 것이 아니라 수학 뿐이기 때문이다. 양자 세계의 언어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아니라 수학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은 수학적 설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여러 측면의 예와 실험 소개를 통해서 우리를 양자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물론, 책의 역자가 순수 번역가가 아닌 물리학 교수라서 번역한 문장이 애매하거나 말이 안 되는 부분이 곳곳에 보이는 아쉬움은 있지만.

물리학의 세계는 거대하고 아름답고, 치밀하면서 경이롭다. 한 번쯤은 빠져서 허우적댄다고 해도 손해날 것은 없을 그런 매력적인 세계.


P.S : 너무 오래된 책이라 이제는 구입할 수가 없었다...ㅠ.ㅠ
         학교 도서관에 낮장이 떨어지는 낡은 책이 있었을 뿐.
         게다가 표지 사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오래된 책이고, 나는 21세기가 된 지금에야 그걸 겨우 읽었다.
         그 책이 나온 후에 또 얼마나 많은 양자 세계의 이야기가 남아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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