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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 본문

내가 본 것들/일탈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

☜피터팬☞ 2004. 6.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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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9월까지 하게 되는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갔다왔다.
난생 처음 강남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을 경험했고, 또한 초현실주의 작가.. 그것도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아마 그런 곳은 발치에도 안 보였었겠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뭐, 나도 한 번 경험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따라갔다.
-'발치에도 안 보였었..'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초현실주의는 내가 다가가기에 어려운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6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반이 넘어서야 약속을 한 친구와 만나서 예술의 전당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는 했지만, 날씨는 그런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비 한방울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그나마 요 며칠은 구름이라도 잔뜩 있더니 그 날은 해가 내리쬐더군.
아무튼..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우리는 강남역에서 예술의 전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날 카페에서 구한 프린트된 할인 티켓을 제시하고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의 로비에서는 루이스 뷔니엘의 '안달루시안의 개'가 상영되어지고 있었다.
내가 1학년 때 영화제 상영작이면서, 내가 글을 썼던 영화였다.
당시에 너무도 난해한 영화의 내용에 내 글이라기보다는 비평가들의 평을 편집해놓은 글이 되어버렸긴 했지만..
어쨌든, 여전히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있는 것은 분명하다..-_-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감독도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찍은 것이었다..ㅋ)
입구에서는 우리 나라 작가(이름을 까먹었다..;)가 달리의 작품을 페러디한 것이 전시되어져 있었다.
이것은 아마 기념 사진을 찍을 양으로 설치한 듯,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입장권을 제시하고는 달리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에는 달리에 관한 간단한 약력과 함께 설명이 벽면 가득히 써있었고, 안쪽에는 달리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인..
(아마 달리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의 그림이나 작품은 꽤 많이 봤을 것이다. 적어도 눈에 익긴 하겠지.)
흘러내리는 시계가 설치되어있었다. 흘러내리는 시계와 관련된 몇몇 작품을 돌아보고 있을 즈음..
달리 전에 관한 설명을 해주시는 분이 전시회의 각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다.
-달리 전에는 전시회에 관한 설명이 하루 4번 이루어진다. 마침 운 좋게도 우리는 그 설명회와 비슷한 시간에 입장했었다.-

그 분의 설명을 통해서..
초현실주의란 어떤 것인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생겨난 다다이즘이라는 새로운 쟝르에 대한 반항이자 그 발전선 상에 있는 초현실주의.
그리고 그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이자 천재로 일컬어지는 달리의 작품에 대한 의미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불변하고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관념에 대한 파괴를 보여주는 흘러내리는 시계.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만들어서 씌워버린.. 절대적으로 만들어'버린'-절대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개념이다)
시간에 대한 상대성. 혹은 비절대성을 표현한 그의 작품 세계가.. 그 때만 해도 손에 잡힌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리고 설명하시는 분의 말씀을 따라 더욱 깊게 들어가게 되는 그의 세계..

상업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작품들은 상업적으로도 상당히 인기를 누렸다.
그가 디자인한, 작품들, 가구들, 옷. 그리고 조각상들과 각종 책들의 삽화.
그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진 단테의 신곡이나, 성경,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들 및 여러 책들...

그는 지금까지의 절대적이라고 믿어져왔던 과학적인 개념에 대한 파괴를 시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서 초현실주의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대한 표현.. 발현..
상관성, 인과관계,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내면에 감춰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감히 표현하는 것.
일관되고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는 것.
하나라고 하면서 둘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것은 피카소식 표현과는 다른.. 그는 다른 표현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피카소가 원래 있던 것들 분해해서 재해석하였다고 한다면..
달리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개연성이 없는 것, 혹은 상반된 것들을 재해석하거나..
그런 것들 사이의 연관된 개념을 한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전시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밀로의 비너스 상이다. 단지 그냥 밀로의 비너스가 아니라 그의 손에 의해 재구성된 비너스 상..
-그의 비너스 상은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 지팡이, 콩, 말, 유니콘 등등..
또한 서랍이나 장미와 같은 것들...
그는 이런 것들을.. 서로간에 아무 상관관계도 없는 것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축약시키고 재구성한다.
머리가 장미꽃으로 된 여인이라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조형물의 경우 머리와 양 손은 장미로 이루어져 있다.
서랍이 달리 밀로의 비너스 상이나 천지 창조의 아담과 비슷한 자세로 누워있는 조각상의 몸에 달려있는 서랍,
혹은 마쉘린의 노예와 같이 타이어에 구속되어있는 조각상 등등.

나에게 주로 흥미있었던 것이 주로 조형물이라서 조형물 위주로 글을 쓰긴 했는데..
사실 전시회 내에서는 조형물만큼이나 회화도 많았다.
번짐.. 혹은 상이한 두 기법을 동시에 사용해서 그린 그림들.
그로데스크하고 상징적인 내용으로 보이는 내용의 수많은 그림들.
-절대로 나는 그 텍스트를 읽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보이는 '듯'했을 뿐.-
단테의 신곡이나, 성경,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은 이미 접한 부분이 많아서 그림을 보면서 나름의 이해를 했지만..
그것은 사실 이해라기 보다는 그냥 그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 지를 알았다는 것 뿐..
이를테면.. 아.. 이건 성경의 어느 부분에 대한 표현이로군, 이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어떤 이야기에 대한 것이로군..
정도의 이해였을 뿐.. 그 부분이 달리에게로 가면서 다시 어떤 의미를 부여받고 재구성되었는 지는 도저히 알 지 못했다.
섬세하고.. 깔끔한 선으로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거대하고 복잡한.. 그리고 나에게는 자의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로비로 나와 가볍게 아이스 티와 함께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ㅋㅋ

어쨌든.. 돌아와서 다시금 달리 전시회에 관한 글을 쓰려고 뒤적이면서 달리에 관한 글을 몇 개 찾아내서 읽어봤다.
그냥 그런 글들을 드레그 해서 붙이는 것으로 달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싶지만..
그것은 이해가 아닌 문자 그대로 드레그일 뿐.. 나의 생각이 반영되지 못하는 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여기에 펴볼 생각이다.

먼저.. 나는 초현실주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당연히 달리라는 작가를 제대로 접한 것도 그 전시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글을 읽었다고 해봐야 내가 얼마나 그를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혹 내가 모르는 것, 잘못된 것.. 혹은 글을 읽는 사람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지적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나는 어쩌면 텍스트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분류하는 방법 중에 세가지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분류 기준은..
좋은 작품 - 작품 내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작품.
아름다운 작품 - 단지 미적인 조화를 추구하려고 하는 작품
창조적인 작품 - 그동안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기법이나 표현에 대한 작품.
훌륭한 작품은 저 세가지를 모두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의 텍스트인 지도 모른다.
같이 달리 전을 봤던 사람 역시 자신이 달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주는 느낌.. 깔끔하고 섬세한 느낌이라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깔끔함이나 섬세함은, 텍스트와 관련해서만 생각이 되어진다.
즉 주제가 표현되어지는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어떻게 반영되어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같은 식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었더라도 나는 계속 베르세르크에 나왔던 그로테스크함..
-적어도 그건 만화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일상성.. 즉 현실적인 부분은 무시되지않는다. 달리의 그림은 멀리 있는 사람이 더 크거나 하는 식의 일반적인 상식이 무시될 때가 많다.-
대중 문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얕은 깊이의 텍스트에 더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표현 방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의 나는 상상력이 너무 고갈되어버렸거나 혹은 너무 딱딱한 엔지니어적인..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기만 한 사고에 갇혀서인 지..
새롭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잡아낼 수 없는..
즉 에디슨이 영사기를 만들어냈다는 식의 단순 사실 이상의 인정은 할 수가 없다.
(에디슨의 활동 사진이 영화가 된 것은 프랑스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그 기술에 의미를 담은 무엇을 창조해냈을 때다.)
즉.. 나로서는 그 안에 담긴 텍스트를 읽을 수 없었다.

특히나 초현실주의 같은 경우에는..
그 안에 쓰여진 각각의 조형물들이 분명히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는 있지만..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작품의 전후 관계 내지는 작품 자체를 보고..
각각의 형상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여 조합해야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그리 쉽진않았다.
-보라..-_-; 벌써 이렇게 텍스트에 집착하지 않는가..;; 변태인가.. 나??-
그리고 사실 그런 식의 텍스트가 없는 것들.. 단지 그 작품을 접하게 되는 관객들의 불편한 감정의 유발 내지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형물들도 있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내게 불쾌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성공이었다.
나는 잡히지 않는 뜻을 잡으려..(당연히 잡히지 않지.. 뜻이 없으니..-_-) 혼자 고민하다가 불쾌해졌으니까.

또한 초현실주의와 살바도르 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낸 몇개의 글들은..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읽었으면 얼마나 읽었겠냐마는...)
전부 달리 작품 자체에 접근했다기 보다는.. 즉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보다는..
그이 작품 세계를 형성하게 된 그의 일생에 대한 서술..
그의 세계에 영향을 끼친.. 이를테면 연대기같은 글들만이 가득했다.-_-
생각해보면 초현실주의 작품들의 경우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개인을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음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작품이 보편성에서 벗어나 특이성에 호소하게 된다면(물론 보편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미리 알지 못하고는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그 보편성..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해도 느껴지는 그 어떤 보편적인 메세지..
그래. 메세지...
나는 그 메세지를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너무 힘들었어.
삽화 등은 작품의 내용을 미리 알는 경우에는 알기 쉬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의 세계는 너무 주관적이고 너무 난해하게 다가와버렸다.
(사실 나는 르네상스 시기처럼.. 텍스트가 명확한 그림들을 좋아한다..;)

솔직히 달리를 좋아하는.. 그것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의 어떤 점이 좋은 전시회 내내 궁금해져버렸다.
그의 작품을 만드는 솜씨.. 그냥 단순한 기술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것인 지..
혹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그 신선한 충격.. 새롭고 범상치않은 것에 대한 충격을 좋아하는 것인 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텍스트를 읽고 그와 공감하는 것인 지..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의 이유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달리를 천재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그의 일생과 그의 작품이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람 전체를 대변하면서 그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겠지.
지금의 결론은 그런 식으로 나와있다.
그의 천재성을.. 나는 그런 식의 천재성을 아직 인정하거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의 작품 또한 그 작품 자체만으로 아직 어떤 것을 읽지는 못하겠다.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의가 '콜룸부스의 달걀'이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
초현실주의는 단지 작품 하나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작품과 작가의 삶과 생각이 모두 하나로 연관되어졌을 때 그 의미를 온전히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난 달리를 저 먼 발치에 두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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