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소설 - 검은 집 [기시 유스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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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검은 집 [기시 유스케]

☜피터팬☞ 2008. 11.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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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쇼와 생명'에서 주임으로 근무하는 신지.
그는 어린 시절 이지메를 당하고 자살한 형에 대한 기억이 있다.
아침마다 사망 및 사고 소식을 접하며 매일을 보내던 그는
고객으로부터 집으로 와달라는 전화에 마지못해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목을 매 자살한 그 집 아이였다.
신지는 아이의 자살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며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큰 복 중에 하나로 여겨지던 '천수를 누리고 죽는 것'은
의학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현대에 있어선 그 가치가 예전같지 않은 느낌이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중점을 두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불행에 대한 이런저런 방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정해준 생명을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런 수단 중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은 보험이고, 크게 보자면 사회복지제도이다.
이러한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삶에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불행에 대한 대비책이다.
보험회사 직원이 소설의 주인공인만큼 보험회사의 입장에 대해 주로 다뤄지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논점의 배경은 사회복지제도에 있다.

보험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보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많지않은 금액을 내는 대신에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한 개인이 단기간에 처리할 수 없는 큰 문제에 대해 미리미리 조금씩 준비해두는 것이다.
사회복지제도로 확대하자면 내용은 조금 달라지지만 의미는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요컨데,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사회나 집단이 도움을 줘서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보험을 비롯한 사회복지제도는 합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우리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갑시다...

작가가 의문을 던지는 곳은 바로 그 부분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갑시다.'
이러한 의문은 인간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갖고 휴머니티를 실천해가는 사람에게는 어이없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처할 수 있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크고 무시무시한 사고에 대해서
미리미리 조금씩 대비하고, 막상 일이 생겼을 때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무슨 의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이미 폐기되어버린 롬브로소의 '선천적 범죄자론'까지 거론하며 자신의 의문을 구체화한다.
(롬브로소에 따르면 많은 경우 범죄자의 두개골은 정상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형이 존재한다고 한다.)
작가가 소설에서 제시한 이야기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생물에게 있어 자손을 번식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게 나으면서 생존률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률은 적지만 많이 낫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보통 전자의 방법을 사용하며, 곤충이나 식물은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이다.
과거에 인간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내 아이를 사랑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심성과 행동의 발현에는 생물학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이 포함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만약 수많은 관심과 노력이 없어도 아이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고 어느 순간 태어나자마자 걸어다니고 말을 하면서 밥을 챙겨먹는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다만 인간의 사회환경적인 조건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 되었다.
발달된 사회복지제도는 부모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생존을 보장해주고 기본적인 교육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환경오염 등과 같은 이야기를 끌어들이지만... 그건 정말 곁가지에 불과하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많이 낫고 적게 낫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만 이야기하더라도 인간의 아이는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사회의 발달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없어도 아이는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었고
이러한 조건을 이용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같은 것이 아니다. 단순히 '생존'만을 놓기 이야기한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인간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는 생물적이고 유전적인 요인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실제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는 피치못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작게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장해주는 실업자 대책 덕분에 일자리가 있음에도 취직하지 않는 사람들과
크게는 많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식구들을 죽이는 사례까지, 우리 주위에는 선의가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신들의 식구에게 보험금을 주려고 자살을 하는 경우라면 나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순전히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자해를 하거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사마귀의 경우 암컷은 교미가 끝나고 수컷을 잡아먹기도 하고,
어떤 거미는 새끼들이 깨어나자마자 부모의 몸을 먹는다고도 한다.
햄스터는 새끼를 낳은 후에 불안감을 느끼면 새끼를 볼의 먹이 주머니에 넣어 죽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에서조차 이러한 행위는 모두 자신의 자손을 위한 행동이며 스스로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자신만의 욕망을 위해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인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갑시다.'는 인간적인 선의에서 시작되었고, 보험과 사회복지는 이러한 마음의 사회적인 구현이다.
초식동물들이 무리지어 살아가며 육식동물의 위협에서 자신들과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 역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혹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도태시키지 않고 더불어 살아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이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 사회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배려나 주변에 대한 관심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그들은 '사랑'이 없다.
그리고 이런 인간같지 않은 인간을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선의의 구현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유전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거나, 이런 사람들의 아이들 역시 이런 사람으로 자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같지 않은 삶을 선택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누군가가 그런 식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만든 것이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 된 것이다.


작가도 그러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글 속에서 주인공 신지의 여자친구로 나온 메구미는 인간의 유전적 결함을 다루는 이론에 대해 극도로 반대한다.
선천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보험사 직원일 뿐인 신지가 보험금 지급을 미루면서, 아이의 자살 사건을 조사한 것은 보험사 직원이기 때문이 아니다.
글 속에서 신지가 내내 말하듯이, '생명보험이 자살을 조장하면 안 되기때문'이다.
불행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것이 불행을 만들어낸다면 그런 대비는 있으나마나 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불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채우려고 다른 가치를 짓밟는 존재.
그러나 그러한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사회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준 것임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제도의 문제는 제도를 수정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해야하는 것일까.

저자가 던진 의문의 핵심은 인간에게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복지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말이다.
책의 표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인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의 가치를 가볍게 저버릴 수 있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
그 인간은 선의조차 악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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