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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농담 [밀란 쿤데라]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농담 [밀란 쿤데라]

☜피터팬☞ 2005. 2.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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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우스개 소리다. 실없는 소리다. 그것은 어이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지배하던 동유럽에서, 루드빅은 한 마디의 농담으로 인생이 바뀌었고,
그것은 그에게 있어 희극이 아닌 비극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입대를 막 앞둔 시점이었다.
그 당시의 내 모든 상황과 이 책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참 닮은 구석이 많았던 것 같다.
(루드빅은 군대에 강제로 입대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의 상황과 그의 마음은 마치 앞으로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루드빅에게 투영시키며 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군대에서는 단 한번도 루드빅을 떠올리지 않았다.
다시 읽으면서 그 당시의 내 모습이 그토록 생생하게 다시 루드빅을 통해 나타났음에도 말이다.

메타포. 은유를 뜻한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 메타포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쩌면 '농담'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농담은 바로 우리의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연결된 관계였기 때문에 한 사람은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되어 있고, 그 누군가는 다시 또다른 누군가와 연결이 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으며, 이 가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놓고 행동한다.
루드빅은 사회주의에 모든 것을 맡겼지만 배반당하고, 사랑에도 버림받으면서 회의적인 것에 자신을 맡긴다.
루드빅의 오래된 친구인 야로슬라브는 전통적인 모든 것, 풍속, 민요, 축제에 자신의 가치를 걸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코스트카는 신을 믿고 의지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쨌든, 각각의 모든 인물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의미를 두고 믿고 따르던 것들을 통해서 배반당하고 기만당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우리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상황 자체는 사실 그 어떤 의미도 없고, 그 어떤 상징도 없으며, 그 어떤 뜻도 없다.
상황에 처해진 우리의 위치와 그 때의 마음가짐, 그리고 분위기와 기분이 바로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놓는다.
루드빅이 마르케타에게 보낸 편지의 그 내용이 실상은 아무것도 아님에도 그 사회 속에서는 그토록 반동적으로 비춰질 수 있듯이.
야로슬라브가 전통을 사랑하며, 아들에게 그 전통을 전수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아들 블라디미르에게는 단순히 특권처럼 보일 수도 있듯이.
코스트카의 순수하고 숭고한 루치에를 향한 구원의 마음이 결국에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와 그를 괴롭혔듯이.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임의적이며, 똑같은 사건이라도 각자의 눈에서는 얼마나 다르게, 또한 얼마나 다른 목적으로 이뤄지는 지.

이것이 바로 농담이다.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농담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세계 전체는 대체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작가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고 싶은 측면만을 보며, 그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까지 보면서, 모든 것을 보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에 붙들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메달려 있지말고, 변화하는 의미, 가변하는 의미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를 말이다.
모든 것은 변하는 법이다. 과거는 흘러가고 과거의 인물들과 사건들은 이제 그 의미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에.. 그리고 그 가치에.. 그리고 자신의 철학에.. 바로 그 '덫'!!에 걸려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둥대고 있을 것인가?
작가는 특히 루드빅을 통해서 그런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가를, 그게 얼마나 비극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루드빅은 파벨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또한 다시 민속음악을 연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의미의 가변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함정.
우리는 스스로 확고하다고 믿는 것들을 면밀히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속박되지 말고 자유롭게, 순수하게 자유롭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P.S : 루드빅의 생각과 상황. 그리고 그의 변화. 그것은 나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었기에 이 책은 그토록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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