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소설 -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김형경]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김형경]

☜피터팬☞ 2006. 8. 1. 13:34
반응형

User-created

난 사랑을 정의하지 않는다.
아니,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관해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에리히 프롬은
'신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정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없고,
단지 '무엇이 아니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사랑은 너무나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사랑.

이 소설은, 30대 중반을 넘긴 이 땅의 여성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로맨틱 코메디도 아니고, 하이틴 로맨스도 아니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고,
인생의 방향을 잡고 그것에 매진하고 있을 무렵의 나이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흔히 결혼할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는 그런 평범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녀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는 독신녀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며 나름대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런 배경을 듣고, 여성들이 사회에 가지고 있는 불만을 해소하는 성공 신화 소설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말자.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우리 주변에 익히 볼 수 있는 아줌마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녀들의 이야기와 바람과 성장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들의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결정적으로 이 소설은 결코 사회적 성공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무렵의 그런 나이의 '사랑'에 대해,
앞뒤가리지않고 정열적으로 뛰어들던 20대의 사랑을 지나,
어쩌면 조금 시들해지고 현실적이 되어버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록 나는 아직 그 나이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사랑의 의미는 변화하고 20대 초반의 사랑과 30대 후반의 사랑은 다르겠지.
서로 만나기만 해도 좋고, 바라만보기만 해도 좋고, 밤새도록 통화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것을 요구하고 요구받고,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그런 사랑.

그러나 다른 것은 그 표현일 뿐,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은,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성격은 이야기할 수 있다.
상대를 아끼고 성장시키고 아픔을 보듬고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세진과 인혜는 그렇게 사랑을 배워간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상대방의 온전한 성장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은 사랑의 상대를 만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것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며,
사랑의 의미와 가치의 변화를 인정하고 긍정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며,
자신의 즐거움과 상대의 고통을 보며 함께 극복하고 쓰다듬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과 조금 더 완성에 다가간 그러한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녀들이 그리고 그녀들의 사랑의 상대방은 인생에 있어서 사랑에 대해 다시금 배우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사랑의 모습에 이율배반적이지는 않다.
설레고, 기쁘고, 괜시리 생각나는 그러한 기분과 감정은 사랑이 가진 가장 즐거운 특성 중에 하나이며,
그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바뀌지않을, 그리고 사랑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특성 중에 하나일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나아가게 하는 것,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있어서
사랑만큼 근본적이고 확실하며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리 많지않다는 것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내 인생의 목적을 '사랑'으로 삼을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페미니스트들이다.
각각 인물의 의견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우리가 흔히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어설픈 페미니스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사회의 피해자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도 이런 마초적인 사회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작가는 나의 이런 의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이란 단순히 여성을 위한 운동가가 아니라 이러한 남성들도 포용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나의 이런 생각에 충분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 중에 하나인 세진이 심리치료를 받는 부분에 있었다.
읽으면서 의심했고, 뒤늦게 확인했듯이 세진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개인적인 문제들은,
아마 남녀를 가리지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문제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진의 심리치료의 진행과 함께 치유되고 회복되었고, 그녀에게 몰입하여 깊이 빠져들었다.
물론 독자는 소설을 통해서 간접적인 치유만을 받기 때문에, 세진이 완전히 자신을 찾는 순간, 함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혹은 몰랐던 것들을 깨닫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이제 나의 문제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숙고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치료하는 것에 있어서,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것에 있어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것도 중요했다.
이 땅 위의 모든 문제가 맹목적인 사랑으로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사랑.
그것은 결코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서는 그렇고 그 의미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알이 애벌레가 되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