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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성에 [김형경]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성에 [김형경]

☜피터팬☞ 2006. 7. 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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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밟힐 정도로 많다.
그 이야기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라고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인류가 남아있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토록 오래되었고, 많은 이야기가 있음에도 어째서 사랑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매년 사랑에 관한 영화가 넘쳐나고
어째서 매번 사랑에 관한 노래들만이 흘러나오고,
어째서 매일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나야만 하는가?

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랑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길래 질리지도 않고 사랑타령을 해대는 것일까?

이 소설은 우리의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말해주고 있는 사랑의 속성 중에 하나. 그것은 바로 환상이다.
그리고 사랑의 환상성이야말로, 그토록 질리지도 않고 우리가 사랑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애인이 있는 사람과의 외도.
추운 겨울의 외딴 산 속의 집.
그 집에 있는 세 구의 시체.
그리고 그 후에 남아있는 기억.

그것이 그 후의 무기력하고 의미없는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지만,
한 꺼플만 벗겨내어도 그런 기억은 실체가 없는 허상일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함께 경험한 사람이 존재하더라도,
그 사람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 사람의 의미와 나의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그러한 의미와 기억을 간직하고 그것을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그렇기에 사랑은 환상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기억과 나의 의미, 나의 가치와 나의 바람을 상대에게 투영시키는 것이 사랑의 속성 중에 하나다.
(물론, 내 사랑은 단순히 저런 것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에 저러한 속성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사 중에 하나는,
'연애가 시작되면서 사랑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의 사람과 현실의 그 사람의 갭을 줄이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애에게 부과된 하나의 숙제이다.

이 작가에게는 사랑은 환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 같았다.
결코 실체가 없고, 단순히 우리의 상상과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산물.
그렇다면, 사랑의 환상성을 걷어낸 그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섹스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나에게 감정적 혼란을 불러온 부분이었다.)
소설은 우리를 달콤하고 이상적인,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게도 느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노골적으로, 감정의 너머에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충동, 연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천박하거나 저속하지 않다.
아니, 섹스 자체가 이미 천박하거나 저속하지 않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섹스만큼 순수하게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루트가 이 지구상에 또 존재하는가?
그토록 격정적이고 몰입해서, 또한 철저하게 타자화시켜서 느낄 수 있는 행위가 무엇인가?
(물론 이것이 남성중심적인 문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글쎄.)

탄생의 시작과 죽음의 경험, 불안의 해소와 즐거움의 발산, 욕구와 만족, 충만함과 질투...
이토록 섹스는 많은 의미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이 소설은 그런 섹스를 다양한 각도로 조망하고 있다.
단순히 육체의 즐거움과 출산의 역할에 가려 잊고 있는 섹스의 의미.
생산과 죽음의 영역에 동시에 존재하는, 창조와 파괴를 동시에의미하는 섹스.
사랑이 감정적인 측면과 관념적인 측면에 그 역할을 담당한다면,
육체적이고 현실적인 면에 역할을 담당하는 섹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의 부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섹스가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을 담당하지만, 그 순간만을 채워준다면,
사랑은 환상의 영역과 기억에 남아있으면서, 우리의 나머지 무의미한 삶을 지속시켜준다.

사랑의 환상성과 섹스의 현실성.
그 두가지는 양팔 저울의 양 끝처럼 서로 균형을 맞춰줘야하는 관계인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사랑의 환성성의 현실화로 섹스를, 그리고 그것을 사랑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사랑을 환상의 영역에만 머물러두지 않고, 현실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모두를 포함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나와 이 작가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결정적인 차이 중에 하나였다.


P.S :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작품을 접하게 되었었다.
아래 리뷰를 올린 '밑바닥에서'는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중에 보게 되었는데,
두 작품 모두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 환상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와 의미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하지만, 그 두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환상이 차지하는 부분이 무척 크다는 것이다.
나와 방법은 틀리지만 생각이 도달하는 부분이 같다는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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