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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피터팬☞ 2009. 1. 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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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살고 있는 앨리스는
사랑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사는,
직장을 가진 평범한 아가씨다.
솔로로 살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친구가 주선한 파티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남자 에릭을 만나고,
그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분명히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로맨스 소설을 기대했다면,
책을 시작하면서 뒷통수를 맞을 각오를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연애, 사랑, 그리고 배우자.

나는 종종 연애와 사랑은 다르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연애와 사랑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애와 사랑을 혼동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와 사랑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연애는 사랑으로 가기 위한 시험대 혹은 전단계의 과정쯤 될 것이다.
주변에 원래 알고 있던 사람과 시작하는 연애가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는 작품 속 주인공
'앨리스'에게는 아마 작품 전반에 걸쳐서 이야기되는 연애가
자신이 만나는 상대가 사랑하기에 적절한 상대인지 알아보는 과정임이 분명하다.

작가는 평범한 한 여성의 연애 이야기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들이며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철학, 문학, 예술 등등이 작품에 등장하며
그것들은 앨리스의 연애담을 관찰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앨리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요소이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수많은 속성들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어느 순간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한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아무리 단순하고 유치해보이더라도 당사자에게 갖는 의미는 엄청나지 않던가.

따지고보면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드라마틱한 구석은 전혀 없다.
흔히 로맨틱 소설에 등장할만한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복잡한 관계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없다라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할 때, 반드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소소한 사건과 별 것 아닌 것들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들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그 사소해 보이는.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일상'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다른 분야를 끝없이 끌어들여야만 했다.
사랑은 결코 가볍고 단순한 것이 아니다.

앨리스는 사랑하는 상대를 얻고 싶었다.
왜?
앨리스가 사랑을 하고싶어하는 이유는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간단하게 뭉뚱그려 이야기한다면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른다.
소설 속 앨리스가 사랑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말한 부분을 실현해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것의 목적은 하나가 아닐테니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소설 속 앨리스가 원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꽤나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의 내가 추구하는 사랑에 닮은 구석이 많았고, 그것은 바로 내가 앞에서 말한 그 이유다.
그리고 앨리스는 에릭을 만나게 되었다.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지만, 아무하고나 사랑할 수는 없다."
혹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인 박무직 선생님이 하신 말을 살짝 바꿔놓은 말이다.
앨리스는 마음에 드는 상대인 에릭을 만나서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꿈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어떤 순간이나 부분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전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릭과 수많은 시간과 사건을 공유하게 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원했던 것들을 얻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에릭은 잘 생겼고, 매력적이고, 유머가 있으며 능력 또한 있는 Cool Guy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와 사랑하려는 앨리스의 노력은 번번히 빗나가고 만다.
앨리스와 에릭의 연애가 실패한 것이 에릭의 사랑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지는 말자.
인생의 가치나 목적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사랑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사랑과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사랑이 다를 때에 그 교집합을 찾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앨리스의 사랑과 에릭의 사랑이 그랬다.
그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앨리스가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통해 얻고자 했던 수많은 것들을 에릭이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앨리스는 필립을 통해서 자신이 꿈꾸던 사랑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에릭에 대해서는 외적인 매력에 대한 설명이 어느 정도 나오는 반면에,
필립에 대한 외적 설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혹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에릭은 많은 부분에서 앨리스가 만나고 싶어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닮아있었다.
그러나 필립도 그러한가에 대해서 작품은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필립의 이전 여자친구가 엄청난 미인에 능력이 있다는 설명은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필립 역시 이전의 여자 친구에게서 자신이 원하던 그 무엇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있어서 대상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 같다.
(이 부분은 내가 '사랑'에 대한 정의를 구축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 에리히 프롬과 다른 생각을 하는 부분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나의 삶, 나의 가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꿈꾸지만, 정작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 지는 잘 모른다.
그저 막연한 느낌이나 감상만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너무나 폭넓은 것들이 자신의 사랑에 영향을 끼친다.
외모, 성격, 화법, 생각, 사상... 심지어 취미까지.
이 책 속에서 작가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의 성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보려 하고,
사랑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다양한 것들을 명확하게 해보고자 한다.
적어도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면서 어렴풋하게 느껴왔던 것들과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의 흐름과 기분들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랑의 모든 것을 다 밝힌 것은 아니다.
작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아가씨의 한 연애담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사랑에는 아직 이야기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측면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소설의 마지막에 앨리스와 필립은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연애가 과연 성공하고 앨리스는 자신이 원하던 사랑을 할 수 있을까는 알 수 없다.
처음에 그 사람에게 받았던 인상이 과연 끝까지 유지될 것인 지는 언제나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번엔 진짜 사랑인 줄 알았는데...'라며 무책임하게 필립과의 관계를 청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생긴다.
앨리스는 자신이 사랑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 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사랑에 대한 강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내가 필립같다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아마 그 사람은 나를 통해서 소설 속에서 앨리스가 느꼈던 그런 기분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필립이 앨리스에게 느꼈던 그런 감정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사랑에 대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대상을 찾지 못할 경우 그것은 그리 요원한 일이 된다.
하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상대가 과연 적당한 대상인 지를 아는 것은 사랑을 모르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 역시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연애를 안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연애 혹은 사랑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것보다는
사랑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하는 것이며,
내가 지금 만나는 혹은 앞으로 만날 그 누군가를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노력에 이 소설이 작은 보탬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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