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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피터팬☞ 2008. 9. 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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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도쿄.
유서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한 남자가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임신중이던 그의 부인은 그 후로 20개월 째 출산하지 못하고,
이 일에 우연히 말려든 3류 소설가 세키구치와 고서점 주인인 교코쿠도는
사건의 진상을 하나하나 파헤쳐나가는데...

교코쿠 나츠히코를 처름 알게 된 것은,
이전에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 애니메이션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당시에는 '교코쿠 나츠히코'가 그냥 '수리수리 마수리'나 '아부라 카타부라'처럼,
일본에서 기담에 붙이는 관용어라고만 생각했다...허허..-ㅂ-

후에 작가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소설을 찾아보게 되었고, 첫 시도로 이 책을 고른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썩 재미있지는 않았던 상태라 나는 이 책을 그닥 기대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이 재미없었던 것은 순전히 제작의 문제였고,
그 안에 담겨있는 사상은 단순히 넘어갈 것이 아니긴 했다.

아무튼, 소설은 전후 일본의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밀실에서 사라진 유서깊은 의사 집안의 사위. 20개월째 출산을 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우부메'에 관하여 여러 설이 있는데, 임신을 한 여자 혹은 유아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책 시작부분에 우부메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통일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긴 실제하는 지조차 의심스러운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명확한 정의가 내려질 수 있을까.
아무튼, 소설 속의 기이한 이야기는 이런 배경을 깔고 들어간다.
게다가 밀실에서의 실종, 20개월째의 임신이라니... 무언가 괴기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엄밀하게 말해서 추리 소설이다.
귀신, 요괴, 유령, 초자연적인 현상은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추리소설이다.
밀실에서의 실종이야 여타의 추리 소설에서 많이 등장했을 법한 소재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체 20개월 동안 임신을 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서점 주인인 '교코쿠도'는 소설 속에서 직접 퇴마를 행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현실적'이라는 수식어를 갖다붙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물론, 자세한 이야기를 다 써버리면 행여나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빼겠다.-ㅂ-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방해아닌가..;; 무책임하기는..ㅋ)
기이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그 안에 그 어떤 초자연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
바로 그것이 '교코쿠 나츠히코'라는 작가의 주목할만한 부분이며, 이 책의 진정한 재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의 중간중간 오랜 친구인 세키구치와 교코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뭉뚱그려 보면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증명', '존재의 근거'라고 할까?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존재가 실재하는 지 혹은 실재했는 지 우리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고서점 주인 '교코쿠도'는 역사상의 인물과 설화 속의 인물에 대한 비교와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에게 가벼운 혼란을 던져준다.
그 혼란의 중심에는 어떤 존재에 대한 판단은 존재 자체와 그 존재를 인식하는 대상에 의한다는 오랜 철학적 문제가 있다.

흔히 인식론이라 불리는 이 문제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지각하고 판단하는 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다.
과연 내가 보는 것들이 실재하는 것인지, 그것들이 왜곡된 것은 아닌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러한 문제의 초점을 우리가 흔히 인정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맞추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교코쿠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각도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친구인 세키구치를 향해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던져진다.
기본적으로 인식론에 관련된 질문은 우리의 확고한 이성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좁혀줄 것만 같다.
하지만, 양자역학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학문은 이 문제가 그다지 간단한 것이 아님을 넌지시 말해준다.
왜냐고? 양자역학에 따르면, 관찰자는 자신이 의도한 것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 그 자체가 무엇이건 간에 관찰자가 의도한대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양자역학의 미묘한 매력이다.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는 그 존재가 나타나지만,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것.


결국 애니메이션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관점이나 이 소설의 관점은 같다.
그것은 요괴나 유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일 것이며, 그것에 대한 최종 판단은 우리가 할 일이다.

여담으로 X-File에서 멀더 사무실에 걸려 있는 포스터의 문구를 혹시 알고 있는가??
"I want to believe."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질문은 그렇게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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