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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태평양 횡단 특급 [듀나]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태평양 횡단 특급 [듀나]

☜피터팬☞ 2012. 10. 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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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4학년 수업 때 들었던 문학과 사회 시간은

내가 꿈꾸던 소설의 재미가 실현되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고 소설에 담긴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이 태평양 횡단 특급은

바로 그 문학과 사회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그리고 그 시간에 소개되었던 책들의 공통점처럼 상당히 강한

인상과 문제의식을 남긴 단편들이 실린 책이다.

 

SF는 인류의 미래를 상상해서 그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SF는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 혹은 클론과 같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의 정의에 대해 묻기도 하며,

그러한 변화들이 필연코 요구하기 마련인

인식의 변화와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SF는 단순히 상상력이 난무하는

허황된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 속에서 보여지는 

철학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듀나의 단편집 '태평양 횡단 특급'에서 보여지는 담론은

지구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의 현재 지위에 대한 의문이자

그 위치 변화에 대한 예언서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런너'에서 충분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도

짧은 생명력 때문에 결국 인간을 넘어설 수 없었던

리플리컨트들을 지나, 인간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시공을 초월해 인간을 제압하려는 '터미네이터' 이후의 기계 문명은,

듀나의 소설에 와서 끝내 인간을 굴복시키고 먹이사슬의 최상위 층을 차지하게 된다.

듀나의 주된 관심은 더 이상 인간에 머물러있지 않다.

그동안의 다른 SF들이 보여준 시도가 기계와 대비된 인간적인 것, 인간만의 특징에 집중했다면,

듀나의 관심은 더이상 인간의 보조품, 인간성을 증명하는 존재로서의 기계를 넘어선, 

감성과 이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존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있다. 

단편집 제일 뒤에 실린 해설집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그동안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는 인간의 이성을 내세우며 인간적 우월성을 확보했고,

기계에 대해서는 감성을 내세우며 먹이사슬의 최상위 층을 고수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해서는 기술적 우위를, 기술에 대해서는 자연적 우위를 주장하는 인간의 이중성이라니!!

듀나의 세계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곳에 위치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감성 역시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고,

이것은 미래 어느 시기에 기계도 같은 반응을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힌다.

지금까지 기계에 대해 감성이라는 것을 통해 구분짓던 인간의 특성은

이제 더 이상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기술의 발전을 본다면 결코 과한 상상력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성과 감성의 괴리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인간과 달리

기계는 처음부터 감성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낼 수 있다.

조화로운 인간를 이루기 위해 인간에게 종교와 철학이 필요했고

그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이런 조화로운 존재가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을지언정 과연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존재의 위치가 먹이사슬에서 인간의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 타당한지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듀나의 세계는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한발 떨어져 

인간과 새로운 존재의 관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정하고 만들어낸 세계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애정은 들어있지않으며

기계 혹은 기술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또한 담겨있지않다.

자연이란, 혹은 기술이란 인간이라고 특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만 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듀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철저하게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는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생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거스르면서,

게다가 보통의 생물도 아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지위를 기계 따위(?)에게 내주다니!!

단편집은 우리에게 불편함만을 가득 안겨준 채 끝이 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난 바로 그 지점부터 우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소설은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ㅋ.

그녀(혹은 그?)가 제시한 세계에 대해 우리는 적절한 답을 찾아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가도 처음에는 인간의 우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단편집 속 소설 '기생'에서 작가가 내놓은 고민의 답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자식들의 앞길을 막는 부모보다 추한 것은 없다"

우리는 기술 혹은 기계의 부모이자 창조자이자 신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듯이 기계 또한 언젠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결론이기는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나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기 전에 고민을 좀 더 해볼 요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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