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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기담 [정가형제]

☜피터팬☞ 2008. 6. 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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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경성의 안생병원.
일제 시대에 그 병원에서 실습 중이었던,
지금은 의대의 교수로 있는 '정남'은
허물기로 한 안생병원을 찾은 후에
그 때의 일들을 떠올린다.
기이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당시의 일들을.

우연히 찾은 동방에서 후배들이 내게 그랬다.
"기담, 너무 무서워요..."
그런데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무서운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그 영화가 보고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고,
결국 혼자 비디오방에 찾아가서 영화를 봤다.

영화는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시체에 연정을 품게 되는 정남과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자동차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어린 아사코를 치료하는 수인,
그리고 의사 부부인 인영과 동원의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는 별 개로 구성되지만
그 이야기들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얽혀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안생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기이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이한 이야기.

이 영화의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그 점이다.
'기담'
기담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호러나 공포와는 다른 느낌이다.
무섭다거나 끔찍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전래동화나 전설의 고향과 같이 으스스한 느낌.
무엇인가가 툭툭 튀어나오며 놀래키거나 피비린내가 진동할 것 같은 그런 잔인한 장면 난무하기보다
느리지만 끈적하고 지속적으로 사람을 긴장시키며 숨소리를 죽이게 하는 그런 영화.
시나리오적으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스토리를 적으려고 했을 때, 아마도 에피소드 형식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딱히 크게 할만한 이야기는 없더라.
아무리 이야기를 잘 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그 어떤 에피소드도 영화에서 보여준 것같은 그런 분위기는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받은 느낌은 그랬다.
흔히 나오는 영화처럼 짝퉁 사다코가 어느 순간 불쑥불쑥 나타나 놀래키거나 했더라면
영화를 보면서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진행되어 익숙한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안 그런다.
느긋하다. 오히려 편안할 정도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그 편안함은 익숙한 편안함이 아니다.
마치 최면에 걸려서 편안한 자세에 있으면서도 편안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의식은 깨어 있어서 분명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아는데 도무지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태.

영화는 무자비한 영상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도 없다.
그저 분위기를 잡아갈 뿐이다.
영상과 음악으로.
그렇게 영화는 서서히 목을 조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결코 긴장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
그러나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
느긋한 템포 속에서 모든 것을 다 풀어내는 영화.
공포나 호러와는 다른, 말 그대로 '기담'의 느낌을 잘 풀어낸 영화.

그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가 '사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는 복수도, 한도, 원망도 담겨있지 않다.
그저 순수한, 그래서 슬프기까지한 그런 사랑 이야기.
불가능한 것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일어난 이야기.


글을 쓰다보니 기담이라는 장르도 성립되지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스플래터 무비니, 오컬트니 하는 공포 영화의 하위장르로 말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아... 끝났다..'하는 안도감(혹은 허탈감ㅋ)이 들게 하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공포는 끝난 후에도 묘한 여운이 남아서 몸을 비척거리게 하는 영화이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 새 내가 그 영화 속에 들어가 있을 듯한 기분을 남기는 영화.
이 영화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덮어두고 고개를 돌리기엔 아쉬운, 뭔가 묘한 구석이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덧 :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은 아사코가 자다가 깨었을 때 옆에서 엄마가 울고 있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스물스물 공포가 몸을 타도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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