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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피터팬☞ 2008. 11. 1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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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산맥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도그빌'
그곳은 이웃집에 숫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아주 작고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 갱들에게 쫓기는 '그레이스'가 숨어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2주간 지켜본 후에
그녀를 계속해서 숨겨주며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은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하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그의 영화 중에 내가 본 것이 '킹덤'과 '도그빌'밖에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 나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한 후배는 내게 이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은 영화라고 했지만,
지루한 것과는 별개로 너무나 질질 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 이제 그것에 관해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아, 추가로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안 읽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그빌'은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이 지적했듯이 인간 세상의 메타포다.
(그러고보면 개라는 것의 이미지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선의에서 '그레이스'를 마을에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녀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맡긴다.
하지만, 그 선의조차 마음에서 우러난 순수한 선의라고 말하기에는 꺼림직하다.
톰의 궤변이 없었던들, 그레이스는 그 마을에서 잠시의 시간도 얻을 수 없었을테니까.
어쨌든,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살아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성실하고 친절하고 따듯한 사람인 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따듯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이제 끝났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적응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그녀에게 맡긴 '소소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임무가 된 후부터,
그리고 그녀를 찾는 갱들의 노력이 점점 더 가시적이 되면서부터
영화는 끝없이 암울한 분위기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그 무렵부터의 영화가
라스 폰 트리에가 인간이라는 생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보여진 그나마의 선의는 후반부의 분위기 때문에 더욱 가식적인 색채를 띈다.

인간이란 생물의 적응력이라는 것은 수많은 의미를 담는다.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육체적으로 한 번 적응한 것에 대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끈임없이 탐구하고 실현한다.
도그빌의 주민들이 그레이스에게 탐욕의 이빨을 드러낸 것의 표면적인 이유는,
갱들이 그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고 만약에 들킬 경우에 자신들이 받게 될 보복 때문에
그녀로부터 더 많은 봉사와 책임을 지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었다.
하... 그러나 그들은, 아니 우리들 인간은 바로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외부의 갱들과 경찰이 그레이스에게 붙인 수식어는 '무언가 무시무시한 여자'라는 것이었지만,
마을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그런 표현은 거짓이라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추악한 욕망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먹이를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먹어치울 수 있는 구실.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건실한 우정과 진정한 인간 관계가 아닌,
힘들고 찌들은 삶 속에서 잠시나마 맛본 자신들의 쾌락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줄 무엇이었다.
그레이스는 언제나 성심성의껏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고, 그것은 마을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레이스에게 힘든 시간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강력하게 나서며
그녀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를 이야기했다면,
그 누구도 떳떳하게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인 지도...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면 그들은 자신이 애써 얻은 약간의 행복을,
그 행복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댓가로 분에 넘치는 지 어떤 지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포기해야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자신이 얻은 이익을,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할 지라도 쉽게 놓지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자신을 납득시키며 비겁하고 저열한 행동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추악한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봐야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빼놓지않고 하나씩 그레이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만들으며
감독은 무척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화면에서 펼쳐지는 동안 내내 편안하지 못한 기분을 느낀 것은
어쩌면 그 추악함이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모습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레이스가 고통받는 모습은 내 가슴에 강하고도 질긴 아픔을 주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이러한 나의 아픔이 보상을 받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레이스는 결국 그녀를 찾던 갱들에게 넘겨지게 되고, 그 순간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녀는 갱단 두목의 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와 길고 긴 대화를 나눈다.
'과연 인간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할 것인가...'

이 부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기독교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인 대립 구도를 보면 이것은 맞는 말이다.
엄격하고 위엄있으며 모든 것을 규정해버린 구약의 신과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며 모든 것을 포용하려 한 신약의 예수의 입장을 갱단 두목과 그녀의 딸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기독교적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랑과 자비만을 내세우던 그레이스는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리니까.
만약 기독교적인 결말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뉘우치도록 했을 것이다.ㅋ

어쨌든, 그녀는 사랑만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몰살한다.
다만 나의 경우는 그것이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되면서 느낀 그 불편함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좀 더 잔인해지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감독은 참으로 관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그 수많은 악행들에 대해서 그토록 간단하게 결말을 지을 수가 있는 지...

네이버의 영화 해설가 홍성진씨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끝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구원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
아마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인간에 대한 시선은 그런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나는 영화의 마지막보다 영화의 중간 부분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본다.
죄의식이란 전혀 없이, 자신들의 행동이 모두 옳다고 믿고 있고, 자신은 정의를 행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던 '도그빌' 주민들의 행동이 말이다.
구원을 받고 안 받고와 관계없이,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할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자기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진 않았는 지...
그것은 구원과는 관계없는, 내가 나 스스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개'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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