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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로마의 휴일 [윌리엄 와일러]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로마의 휴일 [윌리엄 와일러]

☜피터팬☞ 2009. 4. 2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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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고 따분한 왕실 스케쥴에 불만이 많던 앤 공주.
로마를 방문한 앤 공주는 다른 사람 몰래 왕실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왕실을 탈출하기 전에 맞았던 주사 때문에
길거리에서 잠에 취해버리고만 앤 공주는
때마침 지나가던 기자 죠 브레들리를 만난다.
죠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앤 공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데...

'로마의 휴일'은
순전히 내가 오드리 햅번의 팬이기 때문에 좋아하던 영화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오드리 햅번이다.
이 영화가 그레고리 펙의 영화가 아닌
오드리 헵번의 영화로 선정되는 것만 보아도,
영화의 매력은 감독의 재량도 남자 배우의 매력도 아닌
오드리 헵번의 매력이다.
(물론 오드리 헵번의 매력을 한껏 담아낸
감독의 재량은 인정해줘야겠지만...-ㅂ-)
내가 오드리 헵번의 다른 영화는 없으면서
이 영화만은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헵번의 소녀적 매력 때문이다~!!>ㅂ<
이런 개인적인 취향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이 영화는 내가 언제나 이야기하는 '사랑 3부작'의 첫번째 영화라는 점.

사랑 3부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 세 편을 말한다.
'로마의 휴일', '러브레터', 그리고 '아는 여자'.
'로마의 휴일'이 이 세편의 영화들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만남 그리고 이별'이다.
물론 이별을 그리는 영화는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러브 스토리'도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혹은 추구하고자 하는 '사랑'의 이미지와 가장 닮은 것은 바로 이 영화다.

앤 공주는 간단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위치가 너무 불만스러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면서 자기 스스로도 괴로워만 하는 캐릭터였다.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적극적인 인물상이 아닌,
남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인물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탈출.
나는 지금도 그녀가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생의 큰 결심을 했기다기보다는
너무나 지친 일상에 대한 히스테리와 사춘기 소녀적인 반항심의 발로인 것만 같다.
아무런 계획도, 아무런 비젼도, 딱히 특별한 고민도 없이 그저 즉흥적으로 벌인 장난같은 심정.
그런 그녀의 반항으로 이뤄낸 탈출이 만나게 해준 인물은 바로 그레고리 펙이 연기한 죠 브레들리.

죠 브레들리는... 뭐랄까... 미국인이 보여주고 싶은 미국인다운 이미지랄까?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젠틀하지만 딱딱하진 않은, 여유넘치는 로맨티스트.
(이쯤에서 어쩐지 Marlboro란 담배 상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ㅋ)
죠 브레들리는 로마에 파견나온 미국인 기자였고,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으려 한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앤 공주의 신분도 모르는 척하면서 단독 인터뷰를 벌이려는 것.

사진사인 친구 어빙 라도비치와 함께 좌충우돌 데이트를 빙자한 인터뷰가 시작된다.

영화의 재미는 로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벌이는 해프닝들 속에 있다.
과거 로마의 모습을 간직한 시내와 데이트 코스.
아무것도 모르는 앤 공주의 천진난만함과 꾸밈없이 밝은 모습은
아마 많은 남성들이 꿈꾸는 귀여운 여성의 이상형에 제일 가깝지 않을까.
실제 로마를 여행해보지 않은데다가 당연히 그 무렵의 로마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없는 나에게는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로만 판단하면 그곳에 가면 꼭 사랑을 하게 될 것만 같다.

데이트를 빙자한 인터뷰였는데,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인터뷰는 점점 진짜 데이트가 되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인상은
단순히 영화에서 보여지는 증거를 넘어서서 보는 관객의 바람이 투영된 듯도 하다.
우연한 만남 이후에 벌어진 꿈같은 하루 동안의 데이트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해버린 것이다.
앤 공주는 왕실 생활과 같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과 함께
자신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해주는 죠 브레들리에 대한 호감이 있었을 테고,
죠 브레들리는 데이트를 가장한 인터뷰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풋풋함과 신선함에 끌렸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느끼게 된 그 둘이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으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이겠으며 영화의 멋진 완성도를 위해서 그런 결말은 좀 참아주자.
그리고 바로 그런 헤어짐이 있었기에 내가 이 영화를 '사랑 3부작'에 꼽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앤 공주는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루동안의 데이트를 끝으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간다.
자신의 조국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왕실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앤 공주의 외출이 단순히 하루동안의 심한 장난같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일탈은 그녀의 삶과 그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온 공주는 그전과 같이 그저 수동적이고 피상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스케쥴을 소화하고,
그 스케쥴 속에서 스트레스나 받는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당당히 자신의 입장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것은 그저 왕실의 생활을 벗어나고 싶던 그녀의 바람이 조금이나마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리라.
그녀는 브레들리와 만나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단순히 호감만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호감만으로는 불가능하잖은가.
오히려 그래서 그녀는 왕실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가게 될 왕실에서 이전처럼 철부지 어린애로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단 하루만에 느낀, 그리고 하루동안 이루어진 사랑 속에서 사람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꽤 어려운 질문이 되겠지만 그래도 사랑을 느낀 사람은 결코 과거와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앤 공주에게있어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위한 첫번째 걸음은 왕실로의 복귀가 아니었을까.
앤 공주의 변화된 모습은 단순히 일탈을 했기 때문만도, 죠 브레들리를 만났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 두가지와 더불어 그녀가 죠 브레들리와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앤 공주와 죠 브레들리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었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여기서는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결혼이나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생활만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그들의 사랑은 실패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루어 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앤 공주와 죠 브레들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의 만남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앤 공주가 기자들을 향해
자신은 결코 이 로마라는 도시를 잊지 않으리라고 말한 것은 그녀의 사랑에 대한 표현이었다고 믿는다.

두 사람의 물리적 만남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남아 그들의 인생에 에너지가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거기에는 결코 사랑이 끝났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믿는 사랑이다.

P.S : 이 글은 이름을 부르지 않은 누구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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