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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미스트 [프랭크 다라본트]

☜피터팬☞ 2008. 3. 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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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마을인 롱레이크.
그 곳에 사는 데이빗은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에 어느 날 폭풍우가 몰려오고,
데이빗은 아들 빌리와 함께 폭풍우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이웃집의 변호사 노튼과 함께 마트에서 물품을 구입하려 한다.
그리고 마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를 마주치게 되고...

지금부터 쓸 내용 중에는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맥을 뺄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혹 그런 분은 읽지 않는 편이 나을 듯.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미스트.
나는 쇼생크 탈출이나 그린 마일같은 스타일의 킹의 소설보다는
그의 단편 호러 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기억하는데,
킹의 단편 호러는 그다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않다.
단편 소설의 특징이 그러하듯
거기에는 이야기의 인과관계에 의한 전체적인 사건의 해결보다는
상황에 대한 묘사와 상황이 주는 공포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권선징악이나 사건의 해결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과 설정이며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그리고 더 나아가 독자들이 느끼는 공포심 자체다.
혹시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더 잘 알 것이다.
스티븐 킹의 단편만을 보아오던 시절에 나는 이토 준지를 일본의 스티븐 킹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내가 본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최고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미덕은 우리가 기대한 결말을 배반하는 것에 있다.
그것 때문에 반전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반전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킹의 스타일을 무시하고
영화의 일반적인 결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직후엔 멍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데이빗은 모든 사태를 파악한 후에 냉철한 판단과 행동력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노튼처럼 모든 것을 의심하고 무시하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지도 않고,
카모디 부인처럼 광신적인 태도로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영웅적인 태도로 사람들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결국 그는 카모디 부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마트에서 벗어나 최후의 시도를 하게 되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마트에서 탈출해 안개를 헤쳐나가기로 한다.

일반적인 진행이었다면, 그들은 조금 더 처절하게 삶과 투쟁했어야했다.
괴물들이 덮쳐오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
혹은 운이 없다면 동료를 한 두명 쯤은 잃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후에는 함께 했던 사람들과 살아남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영화에서 기대하는 결말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심스레 안개를 헤쳐가면서 미지의 생명체가 주는 압도적인 모습만을 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는 배경 음악 속에서 그들은 숨죽이며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결국 그에게 허무하고 비참한 결과만을 남겨주었을 뿐이다.
안개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차의 기름이 떨어졌을 때 그가 취할 수 있던 마지막 태도는
동행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은 안개 속에 있을 괴물에게 자신의 최후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관객에게 던지는 공포이며 슬픔이다.
모든 것을 다 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절망.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 것을 보면서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정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쨌든, 데이빗과 함께 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나의 평범한 생각은 여지없이 틀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에게 어필한 매력이었다.
주인공이라고 딱히 살아남을 이유도, 그들의 행동력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타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우리는 그런 기대를 할 뿐,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가 그렇게 빗나가고,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무너진 그 자리에
공포심과 절망, 그리고 허무함과 섬뜩함이 자리하게 된다. 약간의 불쾌감도 함께.

뒤늦게 생각해보면, 카모디 부인의 약간은 허무한 결말을 보면서 눈치를 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에서 카모디 부인과 같은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눈치챌 수 있는 그런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괴물들에게 잡혀서 무척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런 모습을 통해.
적어도 나는 카모디 부인의 그런 죽음을 예상(혹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이런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최후를 맞이한다.
그것부터가 내가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를 보면서 갖는 편견을 버려야한다는 힌트였다.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라는 만화의 결말에서 남녀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마을의 운명과 함께 자신들도 그 안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 사람의 단편집을 포함한 대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이토 준지의 작품 중 약간의 희망을 담는 것이 '공포의 물고기'였는데,
나는 이 만화에 무척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그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일 뿐,
사건의 해결이나 행복한 결말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호러라는 것은 주인공의 결말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공포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무서움이며,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런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공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인간이 갖는 무력함이다.
영화가 끝나고 당신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그것으로 이 영화는 성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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