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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바르게 살자 [라희찬]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바르게 살자 [라희찬]

☜피터팬☞ 2008. 5. 1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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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번한 은행강도 사건으로 인해 비상이 걸린 삼포시.
새로 부임한 삼포 경찰 서장은 경찰의 위상도 높히고
빈번한 은행강도 사건도 예방할 목적으로
시나리오 없는 은행강도 모의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은행 강도 역할을 형사에서 교통순경으로 좌천한
정도만(정재영)에게 맡기고, 최대한 잡히지 말라고 당부한다.
바른 사나이 정도만은 경찰 서장의 지시에 따라
정말 충실하게 은행강도 역할을 수행하는데...

나는 장 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를 즐기는 편이다.
가볍게 보려면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작은 메시지라도 하나 남기는 그의 영화가 나는 좋다.
이번 영화의 감독은 장 진 감독 아래서 조감독을 하던 라희찬이지만,
그래도 장 진의 느낌은 분명히 살아있다.

영화의 제목은 '바르게 살자'이다.
글을 쓰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제목을 조금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자'
이 영화의 제목은 오히려 이게 더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영화의 제목을 '바르게'로 한 것은 '열심히'보다는 가치판단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왜 하필 영화의 제목이 '바르게 살자'인가??

이 영화는 코메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블랙 코메디아냐??
영화 초반에 착실한 교통 순경 정도만은 불법좌회전한 경찰 서장에게 딱지를 땐다.
차 한대 다니지않는 한적한 도로였고, 초행에 바쁜 일이 있다고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경찰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는 고지식하게 딱지를 땐다.-ㅂ-
푸하하하하. 주인공의 성격이 단적으로 하지만, 제대로 보여지는 한 장면이다.

얼마 전 개콘에서 유행시킨 유행어 하나.
"대한민국에 안 되는게 어딨니??"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적당히', '융통성 있게', '좋게좋게'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가 법과 규칙을 따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 타협하고 봐주며 굴러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엄정한 기준이나 정의를 운운하는 것은 피곤하고 골치아픈 일이 될 테니까,
서로서로 약간의 일탈과 위반은 무시하고 대충대충 하는 것이 좋지않으냐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영화는 그것이 이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걸 코메디로 포장하여 보여준다.

교통법규를 위반했지만 경찰서장에게 딱지를 땠다고 욕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
"그건 동물적인 감각이 아니라 동물들이나 하는 짓이야!!"
은행강도의 범행 장소가 시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좋아진다고 하는 형사들.
"우리가 굳이 잡지않다도 관내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모의 훈련 중에 훈련 적당히 하자며 바락바락 대들던 은행 직원과 동료 경찰들.
"저기요, 심리적으로 상당히 안 좋거든요. 대강 좀 하시죠."
그들에게 그 상황은 그저 어쩔 수 없이 경찰에서 시키는 귀찮은 일 중의 하나일 뿐이며,
자신들의 일과 시간과 업무를 지연시키는 짜증스러운 일일 뿐이다.
'실전은 훈련처럼, 훈련은 실전처럼'이라는 오래된 격언은 정말 오래된...
그래서 그저 익숙할 뿐, 아무런 느낌도 오지않는 그런 말일 뿐이다.
은행강도 사건이 빈번해도, 그걸 대처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해도 훈련은 그저 훈련일 뿐인 걸.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좋은게 좋은 거라는 우리의 사고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서장을 통해서다.
서장은 모의 훈련이 사직되기 전, 시나리오가 없는 훈련이며 절대 실전처럼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연다.
게다가 정도만 순경을 따로 불러 강도 역할을 하라며, 절대 잡히지말라고 명령하던 서장이었다.
"자넨 그냥 은행만 털어요. 우리가 잡을께. 그냥 그거에만 최선을 다해라. 부탁한다, 경찰의 위선이 달린 문제라 장난스럽게 허투루하면 안 되니까 제대로 해야돼."

그러나 정작 은행강도가 된 정도만 순경이 은행의 셔터를 닫고 내부 카메라를 가리자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하냐고 채근대기 시작한다.
게다가 진지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정도만 순경의 태도에 급기야는 화를 내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젠장.. 그런데 그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잖아..-ㅂ-)d

그럼 우리 사회의 이런 일반적인 모습에서 반대편에 선 정도만 순경을 한 번 보자.
모의 훈련을 위해 영화를 빌려서 연구를 하고, 잡지 활자를 오려 만든 협박문구를 만들어내고,
각 상황에 따른 팻말을 준비해서 인질로 잡힌 이들에게 나누어줄 때는 정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도만의 착실함이 최고의 개그가 된 장면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은행 여직원에게 다가가
허공에 주먹질을 열심히 하고 푸쉬업을 하는 장면.
그 후에 정도만에게 대들던 은행 여직원은 '강간'이라는 푯말을 목에 걸고 얌전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 시나리오도, 아무 준비도 없었던 훈련에 충실히 임하고, 모든 준비를 해서 상황을 이끌어낸 것은 정도만 혼자였다.

그러나 그런 인물에게 내려지는 사회의 보답은 어떠한가?
고위 공무원의 비리를 수사하다가 교통 순경으로 좌천되고, 훈련을 너무 빡빡하게 한다며 상관의 비난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나는 장면은 정도만의 어머니에게 경찰 간부들이 뭐라뭐라 하는 장면이었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성실히 수행하는 인물에 대해 우리는 차가운 시선과 냉담한 말을 던질 뿐이었다.
은행을 탈출하면서 정도만은 인질로 잡은 은행 여직원(이영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참 이상하네요. 내가 경찰일 때도 항상 최선을 다했는데... 그 땐 항상 무시당하고 되는 일도 없었는데..."

정도만의 계획에 엉뚱한 차량을 쫓던 경찰들은 마지막에 그를 막다른 등대까지 추적한다.
그러나 결국 경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역할에 끝까지 충실했던 정도만은 경찰이 할 몫을 전혀 남겨놓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한다.
결국 영화 속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한 사람은 정도만 혼자였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기대했던 만큼 좋진 않았다.
물론 '바르게 살아가는' 정도만 형사에 대한 해피 엔딩이었지만, 너무 식상했거든.

영화는 시종일관 대충대충, 적당히, 좋게좋게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우리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종일관 웃지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들이 연출되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제대로 된 것들, 바른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보복을 당하는 우리의 현실에 허탈함 마저 들었다.
기본이 갖춰지지않은 우리 사회에 대한 코메디.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무시당하는 사회에 대한 조소.
이 영화가 우스운 것은, 영화 속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결코 낯설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융통성없이 고지식한 것이 무조건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은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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