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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예의없는 것들 [박철희]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예의없는 것들 [박철희]

☜피터팬☞ 2006. 10. 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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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처럼 '지구를 지키던' 신하균이 이번엔 킬러가 되어서 돌어왔다.
그것도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인 '예의없는 것들'에게 칼침 한 방 놓으려고.
그는 부패한 정치인, 종교 지도자, 조직 폭력배 등등 파렴치한 녀석들만을 골라서 처리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건 법의 테두리 밖에서건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죽음으로 대가를 갚게 한다.
(나는 영화의 이런 설정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죽음을 집행하는 냉혹한 킬러의 화려한 액션이 난무할 것 같지만,-물론 액션이 없진않지만.-
웬 걸. 이 영화의 나머지는 이런 냉혹함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킬러인 신하균은 혀가 짧아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냥 벙어리처럼 살기로 한다.
게다가 어린 시절에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인이 되고자 한다.
킬러와 시라니. 어울리지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웬지 살짝 유치하게도 느껴진다.
온갖 쓰레기들의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않고 죽음을 집행하는 그지만, 술집 여자인 '그녀'와 고아에게는 꼼짝 못하는 밥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도식이 성립된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힘이 없어 쓰레기같은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쉬운 존재인 술집 여자와 고아는,
그러한 쓰레기같은 녀석들을 처리하는 킬러를 오히려 우습게 생각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이 설정에서 역학 관계는 전복되고, 상대적인 우위는 절대적인 힘을 상실한다.
냉혹해보이는 킬러는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그의 활약은 우리에게 더 많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러나 영화는 나에게 별다른 쾌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심각하고도 중대한 문제를 가볍게 처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 중간에 킬러는 자신의 임의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섣부른 행동이 불러온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좌절한다.
킬러는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그에게 죽임을 당한 다른 사람들의 경우엔 확실히 죽어도 된다는 보장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인가?
죽여달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죽어도 되는 보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데 가장 부족했던 것은 킬러가 죽이는 사람들의 악행이 그닥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그나마 죽는 순간의 모습 속에서 착하지 않다는 것은 보여줬지만,
그런 모습은 킬러가 임의로 죽인 사람의 악행보다 덜했다.
결국 영화의 제목은 "예의없는 것들"이었지만, "예의"의 기준 자체가 모호.. 아니 전혀 재시되지 못했다.
좀 어이없게도 느껴졌던 것은, "척 봐도 나쁜 놈처럼 생겼잖아."라고 말하는 대사.
위험하다. 저런 건.-_-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신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술집 '그녀'와 킬러와의 관계.
그리고 킬러가 의뢰받은 악덕 사업자이자 조폭 두목과 '그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점점 신파적인 요소를 갖추기 시작한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킬러가 아닌 '그녀'가 그 쓰레기같은 자식을 죽이는 희열은 존재했다.
더군다나 킬러짓을 해서 번 돈으로 짧은 혀를 고쳐
어린 시절 헤어진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시를 쓰고 싶어하는' 순수한 킬러의 꿈이 돌팔이 의사에게 맡겨져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점점 분위기를 달리한다.
결국 영화는 그 동안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피를 마지막에 낭자하며 신파적 결말을 끌어낸다.
영화 소개에는 이 영화를 '코믹 느와르'라 했지만, 난 극장을 나오면서 '신파 느와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내 개인적으로는 둘 중의 하나만 물고 늘어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 나와버렸고, 나는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벙어리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킬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화는 독백들을 깔아놓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죽음이라는 문제에 내가 너무 집착한 부분이 있어서 이 영화가 좀 거북하게 다가온 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예의없는 것들'에게 사회가 하지 못하는 복수를 해주는 모습은 분명히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장면들이 그닥 쾌감을 던져주지 못하는 것만 같다..;ㅁ;)
영화는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기면서 끝난다.
그것은 이 영화 속 킬러의 마지막 대사이자, 킬러의 삶을 압축해 주는 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뒤를 돌아 보면 왜 이리 길은 굽어 있는지 분명 반듯하게만 달려 왔는데..."

P.S : 뭔가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영화는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킬러의 슬픈 삶은 결국 신파가 되어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 신파적 삶 속에 삶과 죽음, 그리고 꿈이 있었다는 것은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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