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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나'를 만나다. - 천성명 전시회 '달빛 아래 서성이다'를 다녀와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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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나'를 만나다. - 천성명 전시회 '달빛 아래 서성이다'를 다녀와서

☜피터팬☞ 2005. 1. 25.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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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상. 인사동의 여타 특색있는 갤러리들처럼, 이 갤러리도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 만드는 색이기도 하지만, 갤러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의 의미 모두에서, 나는 처음으로 갤러리 상의 색을 만났다. 그 안에 있는 천성명의 색도 함께.

하얗고 무채색을 띈 조형물들.
사기인 듯 깨어지고 금이가 있는 작품들.
멍하고 무표정한 얼굴들과 살아있는 듯 진짜같은 눈동자. 하지만 시선은 멍한 눈동자.
조용한 실내를 울리는 작은 소리들.

우울하고 암울해서 때때로 무서운 느낌마저 드는 꿈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갤러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각각의 공간은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단절된 이야기가 아니요, 앞의 공간의 연장이고 뒤의 공간의 근거였다.

우리 모두는 어릴적 무언가 꿈이 있었다.
구체적이던 추상적이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고, 자신만의 그 무엇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 앞에 설 수록 우리는 점점 남들과 똑같아지고, 목적도 없이 그저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 파묻힐 뿐이다.
우리가 첫번째로 만나는 작가가 꿈 속에서 보았다는 부서진 소녀는, 작가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부서진 어린 시절의 잔상일 것이다.
뭔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것, 뭔가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된다.
다시 찾아야 한다. 이제는 모두가 똑같은 이 세계에서 벗어나 내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아보자.
나아가자. 앞으로 가자.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어린 시절 타고 놀던 장난감 말의 바퀴로는 이제 나아갈 수 없을만큼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빽빽한 대나무숲처럼 우리의 앞은 제대로 보이지않고 해쳐나가야할 것들은 너무도 많다.
이제는 날개를 만들자. 새롭게 시도하자. 그래, 날아오르는 거다.
날개를 만든다. 만들고 또 만든다.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만든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날아오르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기 멀리 그 꿈이 보이고, 그것은 달이다. 우리의 꿈은 바로 저 밝은 달이다.
하지만, 그곳에 막 도착하기 전에 만난 것은 그 달에 살고 있었을 것같은 자신의 분신인 토끼의 자살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내 꿈이 아니었다. 그곳에 심어놓은 나의 이상이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져버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추락한다. 애당초 날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날개는 몸을 짓눌러 나의 몸조차 부서뜨린다.
처음부터 적합하지 않은 도구였다. 어쩌면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겨준 것이라고는 커다란 상처와 실패의 느낌 뿐일 지도 모른다.
이상이라고 믿고 도전했던 것은 결국 이상이 아니었으며, 그 이상을 향해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도구는 우리에게는 맞지않는 것이었다.

이제는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남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광대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모습을 남들 속에 숨겨놓고 그 무언가를 느꼈던 꿈을 꾸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멀어지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가고싶다.. 가고싶다…

나는 그의 작품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어른의 얼굴에 아이의 몸을 가진 기형적인 모습의 인물들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부조리함,
즉 현실이 나이와 나의 마음의 나이의 불일치와 같은 부조리함을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 역시도 그러하니까. 그리고 어쩌면 또다른 수많은 이들도 그러할 테니까.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하고 어릴적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무표정하고 공허하다. 여전히 무채색이고 똑같은 반복의 연속일 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번에 모두 부서버리고 달아날만한, 이겨낼만한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인생이던, 사랑이던, 일이던 간에 우리가 바람하는 이상에는 그리 쉽게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이상에 좌절하고 우리의 그 동안의 시도에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느끼며 스스로 무너져내린다.
수없는 시도와 실패. 전진과 후퇴. 희망과 절망. 도전과 낙오. 이 모든 것은 반복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다.
완벽한 이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 우리의 제대로 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겠지.
작가가 이 작품에서 끝내는 떨어져 자신의 어린 시절의 동무인 소녀가 날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처럼,
실존의 물음에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 대답을 내리지 못한 듯 하다.
우리의 표정은 여전히 멍하고 우리 모두는 아직 무채색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끝, 혹은 허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도전이 있을 것이다. 천성명 작가가 자신의 작품활동을 포기하지 않듯이 말이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느낌이 나는 이 전시회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전시회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의 이상과 그 이상의 실제성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노력이 묻어났던 이 전시회는 마치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무표정에 무채색인 것처럼, 나 역시도 아직은 똑같은 반복과 남들과 똑같은 모습일런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했듯이 이것은 끝이 아니며, 거대한 흐름의 하나일 뿐이고, 우리 스스로는 스스로의 색을 찾아갈 때까지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작가가 표정이 있는, 그리고 더 이상 공허한 눈동자를 가지지 않은 인물을 만들어낼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리고 나의 표정과 색과 시선을 찾기 위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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