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일본 여행기 2002년6월6일~6월8일 규슈 본문

내가 본 것들/일탈

일본 여행기 2002년6월6일~6월8일 규슈

☜피터팬☞ 2002. 11. 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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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일본 여행에 대하여 들은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1주일 전이었던 것 같다. 39만원에 일본을 갈 수 있다는 소리에 나는 주저없이 결정을 했다. 집안의 반대가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아무 반대도 없었다.

6월 6일 현충일 목요일 8시 의정부
집에서 출발준비를 했다. 전날 밤에 대충 챙겨놓았지만, 가방에 다 넣은 것은 아니었다. 대충 마루에 늘어놓고 아침에 챙길 생각이었다. 9시까지 의정부역 서부광장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어젯밤에 짐을 제대로 안 챙긴 것이 화근이었다. 여행 중에 녹음하려고 준비한 테이프를 하나도 들고 오지 않은 것이다. 녹음기는 들고오고선..젠장. 할 수 없이 집에 전화를 걸어 식구들을 동원했고, 난 버스가 떠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일행 중 늦는 인원이 있어서 다행히 내가 테이프를 받고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안은.. 아줌마들 관광차와 다를 것이 없었다. 원래 20명이었던 인원이 싼 값으로 인해 인원이 갑자기 불면서 50명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에서 할머니까지, 게다가 20대라고는 나 혼자. 어떤 분위기인지 상상이 되리라.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조금은 조용한 여행을 원했던 나로써는 실망일 수 밖에 없었다.

16시 부산
4시가 조금 넘었을 때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배표를 끊는 동안 우리는 출국준비를 했다. 입출국표를 써놓고 기다리면서 난 항구에서 부산의 느낌을 녹음했다. 처음 와보는 부산의 느낌은 참으로 신선했다. 고가도로를 통해 들어와서인지 차도 별로 밀리지 않았고, 바다와 산을 사이에 둔 도시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1시간 정도 이리저리 시간을 때우다가 배에 승선을 했다. 나는 2등실에 머물렀다. 여객선이라는 것을 처음 타서인지 모든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배의 규모는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배가 출발할 때까지는 아직도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오락실을 찾았다. 한 번에 100엔이었지만, 환율을 따져보면 1000원이라는 이야기였다. 젠장. 하지만, 상품을 뽑는 오락기 중에 내가 좋아하는 모델이 있어서 결국 10000원을 투자해서 얻었다. 그 사이 배는 출발했고, 나는 배가 출발하고 10여분이 지나고 갑판으로 나가 배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배가 움직이면서 흔들림이 느껴졌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익숙해졌다.
배에선 식사시간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밥을 먹으러갔다. 가장 싼 것이 카레라이스로 800엔이었지만, 역시나 우리 물가에 비교해보면 비싼 값이었다. 밥을 먹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잠을 청했는데 22시 쯤 함께 간 선생님이 날 깨웠다. 양주를 가지고 왔다면서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나와 영어 선생님, 원장 선생님, 다른 학원 원장님, 이렇게 넷이 새벽 3시까지 그 큰 양주병을 비웠고, 난 다음 날까지 고생을 해야했다.

6월 7일 금요일 7시 하카다 항
숙취로 인해 아침도 거르고 8시가 되어서 하선해야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대충 짐을 싸들고 일본 항구에 내렸다. 도착하자마자 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느껴야했다. 난 일행 중에 꽤 앞에서 나간 편이었는데, 여권을 검사하는 곳에서 뭔가가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일본어'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일본어는 인사 정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난 당황했고, 결국 일본어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오는 동안 우리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항구의 곳곳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깨끗하고 깔끔했다. 조금 놀랐던 점은 그들의 흡연 문화였다. 일본에서는 우리 나라에서처럼 실내 흡연에 대해서 그렇게 심하게 제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로비에도 버젓이 재떨이가 놓여있었으며, 우리가 탄 버스에도(비록 관광버스였지만.) 좌석에는 모두 재떨이가 붙어있었다.
관광버스가 온 후에 우리는 모두 버스에 올라탔다. 이야기로만 듣던 반대 차선과 반대 운전석. 정말 모든 것이 반대였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차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나라라는 것이 느껴졌다. 자동차의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견고해 보였다. 여기서는 중산층의 차가 우리 나라로 오면 상당한 고가가 된다니...첫 번째 행선지로 행하면서 우리는 일본의 시골을 지나게 되었는데, 내가 느낀 인상은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는 전국토의 대부분을 산으로 덮고 있는데 항구에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산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언덕도 없었다. 덕분에 일본의 논밭들은 정말 완전 바둑판이 무색할 정도로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첫 번째 행선지 11시 쿠마모토성
일본의 3대 성 중에 하나라는 쿠마모토성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국 시대 병사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느라 무척 바쁘게 보였다. 안에서는 내부 수리 중인지 여기 저기 공사현장이 보였다.
성의 입구로 들어가는 곳은 마치 미로와도 같았다. 상당히 높게 쌓은 돌벽으로 만든 길은 직선이 아니고 몇 번을 돌아야지만 성의 마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벽은 가파르고 매끈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길 이외에 벽을 타고 들어간다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전쟁 중에 사용했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길을 따라 죽 들어가니 만화에서나 보던 일본성의 모습이 보였다. 성 앞마당에는 닌자의 모습을 한 사람이 사람들과 사진을 찍을 때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도 한 장.^^ 표정을 완전히 가리는 복면을 썼기 때문에, 어떤 인상인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 당시의 닌자들도 그랬겠지.
일본의 건축과 우리 나라의 건축은 다르다는 것을 쿠마모토성을 시작으로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경복궁, 창경궁과 같은 성들은 넓지만, 높은 건물은 아니다. 바깥 건물들이 안쪽의 건물을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대문을 통해 들어간 후에도 계속 안으로 건물이 존재한다. 마치 한문의 回자처럼. 헌데, 일본의 건물은 그런 느낌은 별로 없다. 대신 높다. 옛날 우리 나라의 건물이 모두 단층인 것에 비해서 일본은 2층 이상의 건물이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성은. 쿠마모토성 역시도 6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갖가지 비밀통로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고.. 난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추리하는 수 밖에 없었다.-_-;;
성의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명패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이름을 적은 듯한 패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마 2층까지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이 성에 있던 장수들과 성주들의 이름이 아닐까한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옛날 이 성 주변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있었다. 상당히 큰 도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 갑옷이 보였다. 우리 나라의 갑옷과 비교한다면 일본의 갑옷은 마치 중세 유럽의 갑옷과도 비슷할 것이다. 철로 된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갑옷은 강인한 이미지였다. 성의 제일 위로 올라가니 도시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간간이 고층빌딩이 있어서 시야를 가리기는 했지만, 아마 그 옛날에는 그 꼭대기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일본의 옛 백성들은 그 성의 성주를 그 성처럼 우러러보았겠지.

두 번째 행선지 13시 횟집
1시간 30분 정도의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식당엘 갔다. 그런데, 그 식당이라는 것은 내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건물의 사이즈는 아마 태영프라자 정도 될까? 아니, 더 클 수도 있다. 단순히 밥만 먹는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실수였다. 원래 관광 코스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아치형의 수족관으로 된 통로가 나왔다. 한 10미터 정도의 거리에 아치형의 천장을 수족관으로 만들어놓고 거북이와 생선들을 기르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도 일반 식당에 이런 시설이 되어있는 곳이 있던가? 그 곳은 스모와 관련이 있는 듯 싶었다. 식당의 정 중앙에는 10미터가 넘어보이는 거대한 요코즈나(스모 챔피언. 우리 나라의 천하장사쯤..)의 모습이 보였고, 주변에는 갖가지 그림과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걸려있는 것 중 반은 스모 선수의 사진이었다. 유명 스모 선수와 함께 찍은 식당 주인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는데, 기차가 있었다. 그냥 장식용인지 궁금해서 종업원에게 제스쳐로 물어보려고 기차를 가르키며 손짓을 했더니 갑자기 기차를 작동시켰다. 기차 뒤에 쟁반을 올려놓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특정 좌석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배달하게 만든 기차인 것 같았다.
식사는 예상했던 대로 아주 단촐했다. 일반적인 일본인의 식사가 이런 줄을 모르겠지만, 무척 적은 양이었다. 생선회가 3점, 오징어 회가 2점, 튀김이 4개, 그리고 밥과 된장국, 약간의 야채. 젠장... 전 날의 술로 속이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아주 많이 먹지는 않는 내 식성 덕분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식사를 일찍 마친 후 식당 주변을 돌아다녔다. 모두 출근을 한 후라서 그랬을까? 도시는 무척 한가해 보였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고,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거리는 무척 깨끗했고, 간간이 자전거를 탄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일본은 자전거가 무척 많은 나라였다. 시내를 돌아다니건 어디를 가건 자전거를 탄 사람은 꼭 볼 수가 있고, 큰 쇼핑몰 같은 곳은 항상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어있었다. 도로에도 대부분 자전거 도로가 표시되어있었다. 골목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일본의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여기나 거기나 아이들은 무척 천진하고 귀여웠다. 담 밖에서 쳐다보는 내가 신기한 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날 변태로 본 건 아닐까?^^;;; 일본의 거리나 골목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옆에 있던 공원 역시도 무척이나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길가에 있는 상점이나 식당 등도 조잡한 면은 없었고, 잘 정리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내가 어느 곳엘 가던 지 계속 되었다. '예쁘게, 예쁘게' 아마 이 말이 내가 가진 일본의 이미지일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단순히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아무것도 남길 수 없었다...젠장..

세 번째 행선지 15시 45분 아소화산.
밥을 먹고 버스에서 계속 잠을 잤다. 이제는 일본의 거리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버스가 큰 탓에 시내에서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해 지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 왔다며 나를 깨웠다. 난 처음엔 일본엔 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큰 오해였다. 버스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보이는 산, 산, 산. 거대한 산줄기를 이루며 뻗어있는 장엄한 화산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화산이었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내렸다. 그곳부터는 버스가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발 1142미터로 그곳에서 화산까지는 1.5킬로미터를 더 가야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와 영어 선생님은 화장실엘 갔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의 일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찾은 것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였고, 그 곳을 통해 올라가다가 입구를 지키는 아저씨에게 혹시 한국인 일행이 지나가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지만... 둘 다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대화를 포기하고 터벅터벅 한 5분을 걸어 올라갔을까. 위에서 서양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은 그 사람을 통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갔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어!!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는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영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결국 다른 매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아주머니도 못 알아듣는 건 별 반 다를 것이 없었다. 반 정도는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행을 놓쳤으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일행을 놓쳤으니 도와달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호텔에 전화를 걸어준다는 둥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결국 우리는 아소화산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캠코더를 가지고 간 사람이 있어서 그 캠코더를 통해서 아소화산의 모습을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원장 선생님 말로는 그 화산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한다. 어쨌든,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의 답답함을 실감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의 그랜드캐년(다녀온 사람의 말을 빌자면..)을 접어야만 했다.
화산에 가지 못한 대신에 주변의 산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곳의 산들은 험한 지형이 아니었다. 아마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로 인하여 완만한 경사를 가지게 된 것이리라. 산들이 높고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험한 산은 아니었다. 완만한 경사에 산과 산 사이에 초원을 형성하고 있었고, 자라나는 식물들도 나무같은 것보다는 그냥 풀이나 잡목이 많았다. 마치 제주도의 산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산에 방목되어지는 소와 말들을 보았다. 산길은 무척 길고도 길었는데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서 방목이 되고 있었다. 역시 산세가 험하지 않고 커다란 나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인데, 그 목장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고 개인이라고 한다. 굉장한 부자일테지..-_-;; 호텔로 향하고 있는 중간에 미총이라는 화산을 보았다. 쌀을 쌓아놓은 것 같은 모양에 중간이 푹 파여있는데, 사실 난 그게 특이한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지 관광물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사진같은 것은 찍을 생각도 안 했는데, 나중에 관광가이드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다.

네 번째 행선지 19시 50분 벳부의 스기노이 호텔
시간이 늦어서 우리는 서둘러서 호텔로 들어섰다. 벳부라는 시에 있는 스기노이 호텔에 묶게 되어있었는데, 그 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한다. 자연 온천을 보유하고 있고, 상당한 시설의 온천장이 있다고 했다. 인원이 워낙 많아서 방 배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방에 여장을 풀었을 때는 이미 8시가 넘어섰다.
일류 호텔이라는 것을 내가 평생에 몇 번을 더 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 호텔은 무척 좋았다. 난 영어 선생님과 한 방을 썼는데, 들어선 방에는 싱글 침대 2개가 놓여있었고,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형광등이 달려있는 조그마한 벽붙이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다다미 방이 따로 있었다. 다다미 방에는 문이 있어서 침대가 있는 곳과 분리할 수도 있었고, 그 방에는 따로 일본식 이불장이 붙어 있었다. 역시 만화에서 자주 나오던 이불장이었다. 두 층으로 나뉘어서 위에는 이불이 놓여있었고, 아래에는 방석이 몇 개 더 들어있었다. TV도 있었는데, 일본 방송이라 볼 수 있는 방송은 없었다. 채널을 돌리던 중에 일본 AV(성인 방송)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성기만을 모자이크 처리되었고, 상당히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었다. 모자이크만 없다면 포르노와 별 차이가 없었다. 몇 분을 보고 있는데 화면이 바뀌더니 이것은 유료채널이라며 보고 싶으면 PAY버튼을 누르라고 했지만, 일본의 물가를 실감하고 있던 우리는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버튼을 누르면 나중에 방 키를 반납할 때 1200엔(우리 돈으로 12000원)을 내야한다고 했다. 냉장고도 있었는데 냉장고 안에는 칸막이가 되어있고, 각 칸막이마다 각종 음료가 들어있었다. 맥주에서 양주, 박카스같은 피로회복제도 있었다. 각 칸막이에는 문과 함께 버튼이 있었는데, 나와 영어 선생님이 멋모르고 그 버튼을 눌렀더니 문이 열렸다. 그런데 닫히지를 않는 것이다. 그 때 불현 듯 생각난 이야기. 일본의 호텔에 있는 것 중에서 편의물 중에 자판기 형식으로 되어있는 것이 있는데 꺼내는 것은 자유지만 일단 꺼내면 역시 나중에 키를 반납할 때 돈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과 나는 계속 문을 어떻게 하면 닫을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방법은 없었고, 결국 우리는 카운터에 내려가서 사정을 이야기해야했다. 다행히 일류 호텔답게 카운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일본 호텔의 방을 경험하고 우리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호텔 식당은 뷔페로 되어있었다. 적당히 먹을만한 음식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내가 입이 짧은 건지 아니면 거기 음식은 원래 그런 건 지 썩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종류는 다양했지만, 글쎄.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시내에 나가고 싶었다. 시간은 21시. 좋은 시설의 온천은 22시까지 한다는 소리에 일단 온천을 가기로 했다. 온천은 우리가 묶고 있는 방과 가장 먼 곳에 있었다. 겨우겨우 도착해서 온천에 들어갔지만, 사실 온천에 대한 인상은 별로였다. 자연 온천이 얼마나 좋은 건 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시설은 아마 우리 나라의 큰 온천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난 대중 목욕탕에 들어간다는 기분으로 적당히 씻고 일찍 나왔다. 그 곳에서 원장님과, 다른 학원 원장님, 그리고 일본어 선생님, 나 이렇게 넷이 시내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호텔 로비에 모여서 택시를 잡고 나가는 중간에 일본어 선생님이 택시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도착한 곳은 일본의 유흥가였다.

다섯 번째 행선지 23시 스트립쇼장
밤 11시가 되어서 도착한 곳은 스트립쇼장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내가 떠나기 전에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었고, 같이 갔던 일행들도 그곳에 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들어갔다. 입장료는 4000엔. 꽤 큰 돈이 아닐 수 없었다. 극장의 안은 상당히 좁았다. 원형의 무대가 객석쪽으로 나와있고, 그 무대와 유희가 나오는 무대가 연결되어있었다. 凸자 모양이라고 할까? 잠시 후 일본어로 뭐라고 말하고 난 뒤 한 명의 무희가 나와서 춤을 추었다. 어느 정도 춤을 추더니 불이 꺼지고 무희는 옷을 갈아입고... 아니 벗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팬티와 약간의 반짝이는 술을 달고 나왔으니깐. 한동안 춤을 추다가 완전히 벗더니 계속 춤을 추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처음 실제로 보는 여자의 몸이라는 것도 그다지 흥분되는 것이 없었다. 잠시 춤을 추더니 무희는 무대 뒤로 돌아갔고, 웬 바구니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일본어 선생님이 이야기해준 바로는 그 바구니에 돈을 넣어주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돈을 준 사람이 원하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나온 여자에게 돈을 넣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_-;; 하지만 무희는 일단 자신의 성기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들어갔다. 다음에 나온 무희는 대단했다. 처음 무희의 춤엔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두 번째 무희의 움직임은 달랐다. 그녀는 아마 발레를 직접 배운 듯 했다. 무대 위에서 도는 모습이나, 다리를 들어올리는 동작들이, 그냥 춤을 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의 춤은 확실히 격이 달랐다. 그녀의 쇼는 첫 번째 쇼보다는 일찍 끝났다. 잠시 후 다시 나와서 아낌없이 보여준 후 티슈통을 들고 나오더니 손님들의 손을 티슈로 닦아 주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해 주었다.-_-;; 내 차례에서 난 사양했다. 난 사랑없는 섹스와 감흥없는 애무는 하고 싶지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괜히 고상한 척하는 재수없는 녀석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내 행동은 직업적인 모욕이었을 테니까. 세 번째 여자는 춤은 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설명은 접겠다. 설명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녀가 보여준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테니까. 마지막 무희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그녀의 몸은 그냥 척 보기에도 상당히 관리한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아주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하늘하늘 움직이더니, 두 번째는 닌자와 같은 복장으로 아주 절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엔 마치 요가를 하듯 무척 유연한 몸으로 발레와도 같은 몸짓을 보여주었다. 현대무용부터 발레까지 상당히 많은 연습을 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그곳 종업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일본 전국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스트립 댄서라는 것이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의 무희들은 단순히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수준높은 춤을 추고 있었다. 단지 거기에 '스트립'이라는 것이 가미되었을 뿐.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고급문화라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 성인 문화라는 것이 치부시되는 것이 아닌 당당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격이 높은 문화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 안에서 봤던 변태 할아범.. 그 할아버지는 무희들이 나올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_-;; 난 처음에 그녀들이 애쓴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녀들은 하고 싶어서 저런 일을 하는 것이며, 직업에 관해서 당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의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어느 정도 당당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겐 이른바 Culture Shock라고 할까?

여섯 번째 행선지 일본의 밤거리 6월 8일 토요일 1시
쇼의 파이널을 본 후 우리는 밤 거리를 돌아보았다. 1시라는 늦은 시간에 문을 연 것은 술집이 대부분이었다. 혹은 경품 오락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라면집이나 우동집처럼 분식집이 상당히 오랜 시간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4000엔이란 거금을 썼고, 일본의 식비가 무섭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각 분식집엔 사람들이 몇 명씩 앉아서 우동이나 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아마 우리 나라의 순대국집이나 감자탕집 쯤 되는 걸까? 일본의 유흥가에선 아가씨들이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베트남 아가씨들도 상당수 보였다. 일본어 선생님들은 길을 가다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난 일본어 선생님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으로 대충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유흥문화는 상당히 단계가 잘 나누어져있다는 것이다. 내가 듣기론, 우리 나라에서 술집에 가서 아가씨를 부르면 보통 2, 3차까지 가서 잠자리도 함께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렇지 않았다. 술집에서 아가씨를 부르면 시간제로 해서 시간이 끝나면 끝이다. 가라오케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노래부르며 놀지만, 그걸로 끝이다. 스트립쇼도 보여주기만 하지, 그 이상은 허용이 안 된다. 그리고 돈을 내면 시간제로 만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안마시술소도 안마로 끝이고, 정말 잠자리를 하고 싶으면 따로 아가씨를 부를 수 있는데 그것도 1시간에 얼마하는 식이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단계적으로 되어있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걸까? 일본 밤거리의 다른 모습은 우리 나라와 비슷했다. 골목마다 택시가 지나다니고 있었고, 귀가하는 손님들은 하나둘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조금 차이점이라면, 골목이 무척 좁았지만, 모두 일방통행으로 움직여서 차량 소통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의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계획이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각 블록이 아주 치밀하게 구성되어있었고, 좀 길다싶은 곳은 어김없이 일방통행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활기찬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거기서 아케이드라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아케이드라는 것은 상점이 늘어선 곳을 말한다. 상점들이 마주보고 죽 늘어서있는데 가운데 통로에는 천장이 있어서 비가 와도 전혀 상관없이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전에 일본 게임을 하다가 듣기만 했는데 실제로 보니깐, 재미있었다. 아마 낮이었다면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을텐데... 우리 나라에도 상가마다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아케이드라는 것이 훨씬 더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상가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할까? 흠.. 의정부의 지하상가랑 비슷한 이미지일런 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들어왔다.

일곱 번째 행선지 9시 벳부지옥과 신사.
사실 벳부지옥이라는 곳이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의 이름모를 신사와 함께 소개하겠다. 안타깝게도 신사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그곳이 무슨 신사인지를 모르겠다. 관광 가이드에도 안 나온 것을 보면 그리 규모가 큰 것 같지는 않다.
아침을 먹고 바로 떠난 곳이 바로 벳부지옥이었다. 언젠가 일본 만화책에서 읽은 것인데 일본인들은 땅을 계속 파내려가면 지옥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다. 그래서 온천물 중에 지옥에서 올라온 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본인의 생각이 담긴 것이 벳부지옥이 아닐까한다. 이곳은 유황이 많이 섞여있는 온천 연못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아주 파란 색이고, 다른 하나는 주황 색이다. 각각 물에 섞여있는 성분이 달라서 그런 색이 나는 것이겠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다. 겨울에 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온천과 아주 가까이 있는 식물들은 겨울이 되더라도 계속 파랗게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온천의 열기로 인해서 말이다.
벳부지옥은 별로 넓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 옆에 동물들에 관련된 지옥이 있었는데, 여기도 입장료가 무척 비싸서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후에 우리는 시내에 있는 신사로 갔다. 신사 앞으로는 상점들이 죽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었는데, 모두 조그마했다. 파는 물건들도 무척 다양해서 옷을 파는 곳, 화장품, 장난감, 기념품, 외국물건, 인형, 전통식품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몇 개의 거대한 돌 도라이를 통과하고 난 신사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절과 비슷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의 절과 비교해서는 조금 작은 듯한 느낌이었다. 안에는 각종 토속 음식을 사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고, 일본 전통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음식을 팔고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가족단위나, 연인 혹은 친구끼리 신사를 찾은 사람들로 신사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신사 안에서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복장이었다. 여자들은 일본 무녀들이 입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고(일본 만화에 종종 등장한다..정 궁금하면 견야차라는 만화를 추천..) 남자들도 승려(중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였다)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꽤 큰 버드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가지에는 소원을 적은 쪽지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돌을 쌓는 것과 비슷한 걸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신사의 본당이 나왔다. 그곳에는 두 명의 승려가 어떤 의식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고, 그 안 마루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더 이상 들어설 자리없이 빼곡하게 앉아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 본당으로 들어가는 계단에는 커다란 통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곳에 동전을 던져넣고 소원을 빌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신사는 지식의 신을 모신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결혼한 것으로 보이는 부부들이 꽤 보였다. 자식이 똑똑하기를 바라는 것은 여기나 거기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신사 문화라는 것은 일본의 독특한 문화라고 여겨진다. 우리 나라에는 일본의 신사와 비길만한 것이 없다. 그들은 시내 한가운데에도 신사와 비슷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느 마을이나 신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신사에 대려가서 기도를 받고, 결혼은 서양식으로 하더라도 죽으면 다시 신사의 승려를 통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갔던 벳부지옥에도 신사가 있었다. 그들에게 신사라는 것은 하나의 생활 양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유교를 따라서 제사를 지내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우리 생활의 통과의례이다.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그런 것이겠지. 아마 일본인에게 신사란 그런 이미지인 것 같다. 그러고보면 만화에서도 종종 신사에 가는 것을 본 것 같다. 우리가 설날에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듯이 그들은 설날에 신사를 찾아가서 일년의 행복을 기원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천엔 상점에 잠시 들렀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천엔이라고 했다. 종업원들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가 소리를 지르길래, 한 명에게 다가가 가게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녹음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마이크를 대면서..^^;; 그런데, 그 쪽이 상당히 당황해 하면서 '나니요'라고 말을 했다. 난 이 말의 뜻을 몰라서 뭐라고 대답할지 한참 생각을 하다가 그냥 Thank you라고 말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쉬운 것이었는데, 나도 당황해서 이런이런 내용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
원래는 돌아오는 길에 후쿠호카 현의 텐진이라는 번화가에 들르기로 되어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바로 항구로 돌아갔다. 난 텐진에 있는 백엔 백화점을 기대하고 기념품을 하나도 사지않았기 때문에, 결국 난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_-;;

다른 이야기를 몇가지 덧붙이자면.. 일본 여자들이 못생긴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내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원주민 족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그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본인의 특징, 돌출된 앞니와 작은키, 작은 눈, 뭐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돌아다닌 곳에 있던 많은 아가씨들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리고 남자들 역시도.. 미남들이 꽤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비슷한 외모임에도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주는 이질감이 꽤 크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일본의 물에 관한 것인데.. 일본에서 난 도대체 시원한 물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우리 나라에선 수도꼭지의 찬물을 틀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곳곳에 급수대가 있었지만, 마시는 물 대부분은 미지근했다. 날씨가 너무 후덥지근해서였을까?(그곳은 제주도보다 남쪽에 위치한 곳이다) 호텔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수라고 따로 수도꼭지가 있었지만, 그 물도 미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물맛인데... 난 우리 나라의 약숫물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시원하면서도 어딘지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우리 나라의 물...한가지 여담을 덧붙이자면 요즘 시중에 나온 파는 물중에는 육각수가 젤 맛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선 식비가 상당한 것 같았다. 비록 밥을 사서 먹은 것은 배 안에서였지만, 아무리 비싸도 보통 식사가 10000원 돈이 되니...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그곳에서 담배는 120엔에서 150엔 정도였다. 음료수는 120엔에서 200엔이었다... 물가 비교가 안 된다. 담배가 싼 건지.. 음료가 비싼 건지..지금 말한 것은 자판기 기준인데, 정말 일본에는 곳곳에 자판기가 존재했다. 슈퍼는 잘 볼 수 없고 편의점이 아주 다양하고 많았다. 아마 슈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자판기인 듯 싶었다. 골목마다 자판기는 한 대 이상이 존재했고, 대부분이 음료수용이었지만, 다른 것도 있었다. 전에는 책도 자판기에서 팔았다지만, 난 그런 자판기는 보지 못했다.
하루 반의 짧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라는 것은 단지 그 곳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고, 그 안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적인 차이는 여행 내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본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 첫 해외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별다른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다르다는 것을 외치는 외국에서 나는 이방인임을 느꼈고, 그 안에 몰래 스며들고 싶다는 장난스런 생각마저 들었다.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되도록 그들의 생활을 보고싶었던 나로써는 상당히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니깐. 무엇보다,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일본을 다녀오면서 난 우리의 부족하다고 느낄만한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철저함과 프로페셔널 정신에 놀랐다. 곳곳에 치밀함과 세심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국민성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나도 이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이번 여행은 전체적으로 모자란 것이 많았다. 이번 여행을 토대로 다음의 여행은 조금 더 건실한 여행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의 문제점.

첫 번째. 인원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인원이 움직이느라 여러 군데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너무 많이 소진했다. 시간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으며, 특히 호텔에서는 방 배정 등으로 1시간을 소요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두 번째.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던 지 그 나라에서 쓸 수 있는 말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인들은 생각보다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된다면 일본어는 배워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우리 나라라고..

세 번째. 사전 계획이 부실했다.
정보와 함께 계획도 부실했다. 스스로 준비한다고 했지만, 곳곳에서 헛점을 들어냈다. 녹음을 하는 것도 너무 혼자 떠들어서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내용이었다. 좀 더 생동감있는 내용을 녹음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 생각하고 해야겠다. 의사소통의 문제와도 관련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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