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대학4학년 수업 때 들었던 문학과 사회 시간은 내가 꿈꾸던 소설의 재미가 실현되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고 소설에 담긴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이 태평양 횡단 특급은 바로 그 문학과 사회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그리고 그 시간에 소개되었던 책들의 공통점처럼 상당히 강한 인상과 문제의식을 남긴 단편들이 실린 책이다. SF는 인류의 미래를 상상해서 그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SF는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 혹은 클론과 같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의 정의에 대해 묻기도 하며, 그러한 변화들이 필연코 요구하기 마련인 인식의 변화와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SF는 단순히 상상력이 난무하는 허황된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라..
뜨겁다...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태양... 태양을 마주하고 앉아 있어 눈을 뜨기도 힘들다. 눈이 아파.. 눈 앞을 보는 것이 그리 수월하진 않지만, 조금씩 빛에 익숙해지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세 사람이 보인다. 어두운 색감의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고 딱딱한 표정으로 그들은 책상 위의 무언가를 보면서 이따금 나를 흘깃거린다. 꼭 교회 성가대 복장같군. 이런 날씨에 저렇게 입으면 덥지 않을까... 나는 덥다. 지치는 날씨야. 여기를 피하고 싶은데 왠지 내 앞에 앉은 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쩐지 분위기가 무겁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하지만 그저 긴장될 뿐 두렵지는 않다. 가장 오른쪽의 사람이 무언가를 뒤적이며 보다 내게 눈길을 돌리며 갑자기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
공포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한다 - 장은호 공포 장르에서 꾸준히 작품을 출판하던 밀레니언셀러 클럽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출간했다. 그동안 스티븐 킹, 애드가 앨런 포우 등을 통해서 공포에 대한 갈증을 달래오던 내게 이번 시리즈는 커다란 호기심과 함께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10개의 에피소드들로 대부분 공포작가 모임인 매드 클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단편 작품 모음집이라 할 수 있겠다. 되도록 초자연적이고 심령적인 현상을 배제하고 우리 일상의 평범하지만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공포를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신진오의 '상자'나 최민호의 '흉포한 입'은 상식적..
8개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진 김영하의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단편 소설집은 그냥 한 작가의 단편들만 마구잡이로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뭔가 나름의 통일성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통일성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한 작가의 느낌이라는 것을 김영하의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려있는 소설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글을 신나게 읽었다 싶으면, 바로 다음엔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느낌이 나는 글이 실려있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냉소와 블랙 유머가 가득한 글이 튀어나오다가 평범해서 일기처럼 느껴지는 글이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모든 글이 다 김영하의 느낌이 묻어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