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2003년 2월 19일 밤의 달리기... 본문

머릿속 탐구/낙서

2003년 2월 19일 밤의 달리기...

☜피터팬☞ 2003. 2. 19.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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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탁..."

규칙적인 스텝이다. 난 달리고 있다.

"헉...헉...헉...헉..."

호흡은 스텝을 따라 하고 있다. 4번째 스텝에서 내쉰다. 그 전까는 들이쉴 뿐...귀에서는 MP3에서 낯익은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벌써부터 숨이 차 온다. 가슴이 아프다. 아직 코스가 끝나려면 멀었는데 이미 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젠장...'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혀지는게 느껴진다. 잠시 후엔 등이 서서히 젖어오기 시작했다.. 헉..헉..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의 땀은 내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스텝과 함께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여전히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탁...탁...탁...탁..."

이제 온 길도 한참, 가야할 길도 한참..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물를 수도 없다. 끝까지 간다.

"탁...탁...탁...탁..."

어느 순간.. 호흡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달리는 속도로 인해 생기는 바람이 시원하다.
나의 호흡과 스텝은 규칙적으로(혹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여전히 귀에는 낯익은 음악이 들려온다.

나는 달리고 있다.

더 이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의 몸과 마음, 내 몸의 모든 신경과 세포들이 달리는 것에만 신경쓰고 있다.



자유롭다.

"탁...탁...탁...탁..."



.....



"쏴아아아아아...."

따뜻한 물이 머리부터 흘러내린다. 따뜻함...
하지만.. 마음은 어쩐 일인 지 개운하지 못하다.
그렇게 먼 길을 뛰어온 기쁨이나 만족감, 보람이 없다.. 오히려 공허하달까...
체력만 허락한다면... 한두바퀴쯤은 더 뛰고 싶다..

달린다..달린다...달린다....




날씨를 핑계로 접어두었던 밤 죠깅을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아직은 약간 쌀쌀한 밤공기를 느끼며, 한 밤의 안개 속을 마음껏 달렸다.
거리에는 몇 대 되지 않는 차들과 늦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뿐...

달리는 사람은 나 혼자다.

그런데.. 코스가 끝나고 집으로 올 무렵...
그 전에 느꼈던 뿌듯함이 없었다. 아니..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었다고 해야겠지.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좋은 몸매, 건강을 위해서 이만큼 해냈다고 예전에는 느낄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힘들어도 달리는 그 순간이.. 더 행복하고 기분 좋았다.
오로지 달리는 것만 생각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이.
다른 것은 하나 관계없고, 관계되어지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달리고 있는' 그 순간이 내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인생도, 사랑도..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모두 이룬 그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완성하는 그 순간(그것은 결혼일까?)이
가장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완성을 향해 가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 순간에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 과정 속에서라야 진정으로 내가 그것(인생, 사랑, 혹은 그 무엇)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길... 느낄 수 있게 되길...



마라토너들.. 아니 육상선수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1등으로 들어와 금메달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닌..
(순위와는 상관없이..)달리고 있는 바로 그 때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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