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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돈키호테 [메겔 데 세르반테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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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청소년 필독서로 오랫동안 꼽혀온 작품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엔 명절같은 때에 만화 영화가 방영되기도 했으니까.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하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책.
그러나 이 책을 제대로 다 읽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에서야 겨우 이 책을 읽어봤다.
사실 그렇게 지나쳐버린 고전 명작들이 꽤 많은 편이다.
빨강머리 앤이나 허클베리 핀과 같이 만화 영화로 이미 접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실제 작품을 손에 잡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이적의 '로시난테'라는 노래를 듣다가 갑작스레 이 책이 읽고 싶어졌고,
때마침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을 맞아 완역판이 나와있었기에
주저없이 책을 사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비록 2편 중 1편만 번역이 된 상태여서 작품을 끝까지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책의 편집과 삽화가 좋았고, 고전의 느낌이 잘 살아있어서 읽는 맛은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돈키호테를 다 읽고 난 후에 내가 가진 느낌은 '정신없다'였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돈키호테라는 이 소설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고,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상 그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정과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뷰가 늦어진 데에는 내가 가진 느낌이 한 몫한 것 같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서 찬찬히 정리해보고 싶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은 마지막 낭만주의자이자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시대에 전혀 맞지않지만, 자신의 꿈인 편력 기사가 되기위해 모험을 하고 여행을 떠나는 인물이 극 중의 돈키호테이다.
작품이 나온 초반에 돈키호테는 단순히 희극화되고 풍자되는 인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의 관점이 변화하면서
돈키호테는 단순히 풍자적인 인물이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내가 느낀 돈키호테는 이 두 가지 모습을 하나에 담고 있는 인물이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으면서 돈키호테에게서 찾고 싶은 모습은 후자의 상이었다.
열정과 패기, 굽히지않는 신념을 지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생활에 지치고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는 요즈음에 그의 정열적인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돈키호테에게서 이런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비록 시대에는 전혀 맞지않고 아무도 바라지도 않으며 매번 곤경과 역경에 부딪히고 사람들의 비웃음꺼리가 되어도
그는 자신이 꿈꿔 온 편력 기사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있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굽히지않는 신념과 꺼지지않는 열정을 지닌 그의 마음만은 수많은 기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못지않은 진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돈키호테를 이런 굳은 신념과 정열을 지닌 인물로만 볼 수는 없었다.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말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 시대의 편력 기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할 이유도,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그의 꿈은 한 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으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너무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비록 그가 편력 기사라는 꿈을 통해 이루고싶은 이상이 사회의 정의라는 숭고한 것이었고, 그 이상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고 하여도,
그는 그 이상을 전혀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으며, 단지 이상을 만들어준 소설의 세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뿐이다.
덕분에 소설 속에서 돈키호테가 겪는 모험들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되어 어이없는 결과만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수들과 망상들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모험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일조차 없었다.
그의 실수와 망상들은 단순히 그의 몸을 다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고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결과도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되기만 했다.
여기에는 작가 자신이 밝힌 것처럼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극중 인물들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들 중 몇몇에 화형(?)을 가한다.)
그러나 작가의 종교적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돈키호테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돈키호테는 분명히 현실을 무시하는 실수투성이에 심하게 말하면 고집불통에 정신나간 인물임에 분명하고
자신이 스스로 행한 모든 모헙은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일들 뿐이었지만, 작품 속의 정말 중요한 사건은 돈키호테로 인해 좋은 결말을 맞는다.
돈키호테는 명작 고전이자 장편 소설답게 수많은 사건과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는 돈키호테가 행한 어이없는 모험들말고 주변 인물들의 현실적이고 애절한 사연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차 사건'이라거나 '양떼 사건'이 아닌,
돈키호테가 성이라고 믿고있던 허름한 주막에서 벌어진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돈키호테를 자신의 집으로 몰래 데려가기 위해 주막에서 연극을 하던 중에 발생한 사건인데
거기서 기이한 운명에 얽히고 섥힌 네 명의 연인과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연인을 빼앗긴 불행한 사내와 그의 연인, 그리고 그의 연인을 빼앗아간 귀족, 그리고 그 귀족의 옛 사랑.
전쟁 포로로 아랍권 국가에 있다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과 개종을 위해 그를 도와준 현지 여인.
자신의 임지로 가고 있던 전쟁 포로의 동생인 판사와 그녀의 딸, 그리고 판사의 딸을 사랑하여 그녀를 좇아온 귀족 청년.
복잡하고 기이한 인연을 지닌 사람들이 우연히 한 곳에 모여 그들의 숙원을 풀고 연인들은 사랑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가 1편의 말미를 장식한다.
여기서 돈키호테가 어떤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정신나간 편력 기사 덕분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이 바람하던 일들을 모두 이룰 수 있게 되는, 운명의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뜻하신 바를 이루게 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처럼,
돈키호테가 원하던 정의는 소설의 마지막에서나마, 이를 통해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이라 함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돈키호테가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데는 주저함이 없다.
비록 소설 속 돈키호테의 모습이 모범이 되거나 지침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으로 그의 과장된 생각과 행동을 척도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위치와 행동들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는 영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돈키호테처럼 이상과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마음을 지니면서도
그처럼 현실을 무시하고 외골수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극히 평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평범한 교훈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서 외롭게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돈키호테의 자세는 많은 힘이 되어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할 여지를 주기에도.
나 스스로도 내가 가진 열정과 나의 현실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돈키호테와 산쵸의 엉뚱한 모험 덕분에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어 간다.
다양한 성격의 등장인물들은 작품을 풍부하게 하고 흥미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비록 돈키호테는 책의 말미에서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그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설의 제일 마지막에 그는 다시 모험을 향해 떠났음을 암시하고 있고,
죽음이 그의 눈을 가릴 때까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상을 향해 달려갈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결코 그가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가지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이상을 바란다면, 현실에 적합한 방법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내 생각이 틀렸는 지 맞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다음 번 이야기를 통해 나는 무엇을 또 배울 수 있을까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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