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2008년 3월 31일 월요일 날씨 맑음. 울컥. 본문

일기

2008년 3월 31일 월요일 날씨 맑음. 울컥.

☜피터팬☞ 2008. 4. 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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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통화하다 울컥해버렸다.
그 기분이 나랑 통화를 하던 사람을 향한 것인지,
나의 내면을 향한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와 통화한 '친구'는 이곳에 들어와 내 글을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그 '친구'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적어도 한 개 이상 가지고 있지만, 일부러 여기에 적어야겠다.
왜냐하면 울컥한 기분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는 내 내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쓸 글이 자기 변명이 될 수도 있고 반성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왜 내가 화가 났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니 친구여. 혹시 이 글이 그대의 기분을 상하게할 수도 있다고 판단되거든 읽지않아도 좋아.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부터 심심치않게 들려오던 소리였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로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나의 변화에 대해 들려오는 그들의 평가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변화를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있었고,
나의 변화에 대해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하기 시작했으니까.
나에게 대부분의 것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를 생각하며 가끔은 대견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피식거린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변화한 후에 내 생활에서의 많은 스트레스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면에서 수긍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참 위험한 일이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거기에는 어떤 기준이나 지향점이 없다.
거대한 흐름에 떠내려가듯, 그저 시대의 흐름과 주변의 요청에 자신을 맡기면 된다.
내가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것을 나의 흐름 속에 맡긴다.
열정이 사라지고, 의지가 사라지고, 의미가 사라져간다.
거기에 남는 것은 거대한 흐름이며, 그 거대한 흐름에 편승한 나의 작은 모습뿐이다.

......

수많은 말들을 쓰려다가 쓸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변명이 되어버리니까.
그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도 나에 대한 방어를 포기한다.
그건 기만이니까.
단지 인정하고 싶지않았다.
스스로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이어야 한다고 소리쳐왔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었는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기만이다. 사기다. 구라다.
그것은 친구의 단정적인 말 몇마디에 무참히 무너지고,
나는 지금 내가 나를 속여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이기를 포기했고,
그토록 고민하던 실존의 문제에서 벗어났으며,
더욱이 그렇게 함으로써 편안함을 얻었다.

나는 편안함을 얻기 위해 나를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설득해왔다.
그 사실을 인정한 지금도 내 안에서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않느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여전히 인정하지 못해서 발버둥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내가 나의 기만을 잘 알고 있음을 증명한다.

겁쟁이가 되어버렸고, 용기를 잃어버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었는 지도 모른다.
거대한 시스템의 그림자만 보고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가,
그 실체의 작은 발가락 하나를 보고 금새 본성을 드러내고 벌벌 떨던 내가 잡은 동아줄인 지도 모른다.
화가 났던 것은 아마 그런 사실을 내 안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그렇게 적나라하게 지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친구여.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진 말아주길.
만약 오늘의 이 이야기가 없었다면 나는 앞으로 더 많은 타성에 젖어들었을 것이고,
지금 내가 쓰는 이런 글을 절대, 단 한줄도 쓰지 못했을 지도 모르니까.


내가 나를 더 잃어버리기 전에 나 스스로를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절박함이나 강렬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이 편안함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이미 선악과를 베어먹은 나는 과거의 그 상태를 원하고 있지않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살고싶지는 않다. 적어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한동안 나는 언젠가 잃어버린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 위대한 관성의 법칙이여.
이 관성의 실험에서 내가 걸어야할 금액은 너무 크다.
나는 내 스스로 이 흐름에 제동을 걸고 흐름의 저편에 두고온 나를 다시 찾아와야한다.

......

여전히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그런 것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지않느냐고 말한다.
이미 타성에 젖어버린 나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이야기냐고 되묻는다.
나는 과거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 지 희미해서 실루엣조차 그릴 수가 없다.
미치도록 슬픈데, 가슴 한 켠에서는 킬킬거리며 다행이라고 속삭인다.
돌아가고 싶다고 뒤를 돌아보지만, 남아있는 건 메아리 뿐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붕괴하자.
다 때려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제와서 잃는 것이 두려운가.
그러나 기만과 모순은 언제고 너를 무너뜨릴 아킬레스건이다.
더 비참해지기 전에 돌아가자.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벌거벗겨져 수치스러워하지 말자.
차라리 스스로 당당하게 벗을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다행이다. 아직 예전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어서.
내 기억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린 것은 아니어서.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작은 조각이지만, 어쩌면 작지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걸음은 몰락이다. 추락이다. 파괴다.
그것이 초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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