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영화 - 거북이도 난다 [바흐만 고바디]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거북이도 난다 [바흐만 고바디]

☜피터팬☞ 2005. 5. 10. 00:46
반응형

User-created

이 영화는.. 반전 영화인가?

전쟁이 막 발발하기 전의 이라크 국경지대.
사람들은 전쟁이 터질까봐 전전긍긍하지만, 정작 소식을 알려줄 TV는 먹통이다.
사람들은 급한 마음에 위성 방송을 시청하지만, 위성 방송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만 이야기한다.
이 곳에는 마을이 있고, 지뢰가 묻힌 밭이 있고, 전쟁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이 있고, 당연히 '아이들'도 있다.

마을에 위성을 설치해준 사람은 바로 '위성'이라고 불리는 한 소년.
이 소년은 마을의 골목 대장 격이다. 마을의 꼬마들은 모두 이 소년을 따른다.
'위성'은 지기싫어하고 어른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소년스러운 자존심을 가진 소년이다.
아이들을 통솔하여 일거리를 주고, 작업할 때 아이들을 나눠서 일을 맡기고, 영어를 잘 아는 척 한다.
그런 '위성'을 아이들은 믿고 따른다.
'위성'이 영어로 말을 할 때마다 호기심 가득하게 물어보는 귀여운 '쉬르크'와
전쟁으로 망가진 자신의 발을 총인양 장난삼아 쏘아대는 '위성'의 오른팔 '파쇼'.
위험한 지뢰 제거 작업에 뽑힌 것을 좋아하면서 달려가고,
전쟁이 곧 난다며 학교 부지에 기관총을 설치하며 삽질을 하고 흙벽을 만드는 모습은 전쟁 놀이를 하려고 부산을 떠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의 천진스러움과 장난스러움은 우리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모습은 평범하고 평화로운 모습 속에서 보여지는 천진함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만의 모습을 잃지않은 천진함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가 떠오르는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은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위성'의 소년다운 모습이 보여지는 것은 그가 '아그린'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전쟁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불안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이미 전쟁 전의 상황으로 팔다리는 없지만,
천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의 무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는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있는 아이들도 있다.
전쟁을 피해 피난하는 아이들.
침공한 미군에게 강간당해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된 '아그린'과 그의 오빠 '헹고'.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아그린'의 눈이 온전치 못한 아이 '리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아그린'과 '헹고'는 단 한 번의 웃음도 보여주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이미 부모를 잃고 피난을 떠나는 그녀에게 원치않는 자신의 아이인 '리가'는 짐일 뿐이었다.
오빠인 '헹고'는 어떻게든 '리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지만, '아그린'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 사람에게 이 상황은 정말 지옥같고 끔찍하며, 무엇보다 도망갈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였다.
전쟁 속에서도 천진함과 아이다움을 잃지않고 있는 마을의 아이들에 비해 이 아이들은 암울한 현실만을 느끼게 한다.
아직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과 이미 전쟁을 경험한 아이들의 차이일까.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아프카니스탄을 먼저 침공했고, 이 아이들은 그 지방의 아이들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리가'만이 어린 아이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눈이 온전치 못한 이 아이의 천진스러움은 탄생의 비화가 밝혀지면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전쟁의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리가'를 통해 그것을 확인받는 '아그린'에게 '위성'의 관심은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질적인 두 무리의 아이들은 한 마을에 있으면서 함께 생활하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이 묘한 부조리한 조화가 보는 내내 나를 아주 편안하지도, 아주 불편하지도 않은 묘한 상황으로 자꾸만 몰고갔다.

이 영화의 제목은 '거북이도 난다'이다.
감독은 거북이의 등껍질이 거북이를 누르는 현실적 짐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 영화의 사진을 '아그린'이 '리가'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골랐다.
'아그린'이 결코 맡고 싶지않은 짐인 '리가'를 업고 있는 저 모습이야 말로 거북이의 모습 그대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fly-날다'라는 의미는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곤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말의 희망을 보려고 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이 영화는 결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북이는 날기 위해 등껍질을 버렸다. 그는 등껍질을 지고 가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짐이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거북이가 등껍질을 버린 것에 대해 쉽게 돌을 던지지도 못한다.

이 영화는 결코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다만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특별한 영화적 기교를 부르기나 현실을 치장하여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원하는 부분이 나오면 카메라를 돌려서 찍었고, 그들과 가족처럼 생활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현실적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다만 '현실' 그 자체였다.
전쟁으로 인해 팔다리가 없는, 피난을 가야만 하는 아이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영상이 아닌 그저 무심히 눈을 돌리면 보일 것 같은 그런 현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더욱 더 가슴 속에서 깊고도 강한 파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차라리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 '악'하는 소리마저도 삼켜버리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그런 기분...

그게 이 영화가 내게 던져준 그 '무엇'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