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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하로카즈]

☜피터팬☞ 2005. 5. 2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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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모자가 처음에 한 일은 커다란 가방에서 아이들을 꺼내는 일이었다.
집을 얻을 돈이 없어서 식구수를 속이고 이사를 와야만 했던 5식구.
엄마는 아이들에게 이웃에게 장남인 아키라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들키지않도록 규칙을 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진다.

'거북이도 난다'에 이어서 본 '아무도 모른다'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영화였다.
두 영화 모두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어떤 극적인 상황이나 감성을 자극할 만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결코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절제된 표현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강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기보다는
손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크지않지만 지속적인 어떤 인상을 계속해서 갖게 되었다.

영화는 아키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아키라는
철없어보이지만 돈을 벌기위해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대신해서 장을 보고 아이들을 보살핀다.
동생들 또한 또래의 아이들처럼 밖에 나가 놀지는 못하지만, 집안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지내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키라. 피아니스트가 꿈인 쿄코와 아직은 천진난만하게 놀기 좋아하는 시게루와 귀여운 막내 유키.
영화는 그들의 모습과 개성을 잔잔하고 아무런 의도없이 카메라에 담아낸다.

"난 행복해지면 안 돼?"
철없게 느껴지던 엄마는 저 한 마디를 아키라에게 던지고 사라진다.
아이들을 정말로 버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정말 엄마답지 못하다는 느낌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울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후에 아키라는 방황을 한다.
아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엄마라는 통제 수단이 사라진 후에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약간의 공황상태.
그리고 그런 무질서함 속에서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어질러진 집안과 어색해진 서로의 관계였다.

외부 세계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책임질 역할을 떠맡은 아키라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아키라는 점점 황폐해져가는 자신의 집을 추스리고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선다.
엄마가 사라진 것은 아이들에게 외부 세계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계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엄마는 떠나갔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외출을 하면서도 항상 이웃의 눈에 띄지않게 주의하면서 움직인다.
어린 시절, 동네 호랑이 할머니가 사는 집 앞을 지날 때면 그 할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조심스러워하던 우리의 모습처럼.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길가에 있는 잡초들에서 씨를 찾아서, 작은 화분을 만들어 집에서 기르고
수도세를 내지 못해 물이 끊어져 집에서 씻고 빨래를 하지 못하자 근처 공원에서 빨래와 세면을 해결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특별히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아이들의 생활이 그리 편하지 못하고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열악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가졌던 인상은
마치 어릴적 비밀 기지를 만들어놓고 집보다 그 비밀 기지를 더 좋아하면서,
그 비밀 기지를 중심으로 생할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달까.
하지만, 오히려 그런 무덤덤함이, 그런 평범함이 눈에 보여지고 그렇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그 아이들이 가진 역설적이고 특수한 상황이 생각나면서 더 불편하고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어쨌든 아이들은 자신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만의 특유한 천진성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었다... 정말.....
그리고 그 평범한 일상의 어느 날. 막내인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불행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

유키가 죽고난 후에 아키라는 유키를 데리고 모노 레일을 타고 공항으로 간다.
언젠가 생일날 했던, 모노 레일을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함께 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유일한 친구인 사키와 함께 처음 이사왔을 때 시게루가 들어있던 가방에 유키를 넣고,
둘은 공항으로 찾아가 근처 들판에 유키를 묻고 돌아온다.
유키가 죽고, 묻을 때까지, 아이들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유키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의 표현이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아무도 모른다.
이건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그 아이들이 사는 곳은 아파트였고, 이웃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떠난 후에도 이웃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잘 따르고 있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 집에 아이들 4명이서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이웃이나, 우리를 탓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불행에 대해 둔감한 현대인의 무감각함에 대해 비판을 할 생각이 감독에게 있었는 지도 잘 모르겠다.

잔인한 현실 속에서 남겨진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와 그들의 행동들이 내게 보여준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잔인한 세계 속에서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 세계의 규칙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천진한 즐거움과 그 안에 역설적으로 흐르고 있는 슬픔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리뷰를 쓰기 위해 천천히 그 영화를 되뇌어보던 내 눈망울을 적시고 있는,
손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쉽게 뽑히지 않을 것 같은, 작지만 지속적인 아픔을 느끼게 할 그런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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