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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탐구/낙서

오늘밤은 편안할 수 있을까

☜피터팬☞ 2012. 3. 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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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10월로 기억된다.

 일병을 갓 달고 나갔던 처음으로 맞이한 독수리 훈련.
 아마도 군단 단위 훈련으로는 첫 훈련이었고,
 중대 전체가 참가하는 훈련으로는 여름의 적지침투에 이은 두번째 훈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군단과 다른 군단이 한달동안의 모의 전쟁을 벌이는 훈련이었다.
 내가 속한 부대는 군단 예하의 특수 부대로 첩보의 임무를 띄고 있었고,
 실제 상황이었다면 적진 한가운데였을 그런 곳을 목표로 밤을 틈타 이동했다.
 중대간 이동이 끝나고 우리는 소대별로 흩어져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 훈련이 10월이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두번째 거처였던 폐가의 분위기와 날씨 때문이다.
 낮에는 비교적 따뜻했지만 밤에는 추웠고,
 억세풀로 뒤덮여있던 폐가의 기억이 아마 그 때를 10월로 떠올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아무튼 당시 나는 일병을 달았지만 소대에서는 막내였고 중대에서도 높은 짬밥은 아니었고,
 그것은 한달간의 긴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불이익을 당하는 자연스러운 이유가 되었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침낭의 외피와 내피.
 우리 부대는 비교적 전방에 특수부대로 분류되어 있어서 보급이 부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풍부한 부식에 비해서 장비 보급 상태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훈련을 앞두고 개인 침낭에 내피와 외피를 보급받던 그 때, 나는 내피는 받았지만 외피는 받지 못했다.
 그것은 불평을 할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했고, 나는 외피가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고참들은 기껏해야 이슬을 피할 수 있으면 되니까 판초우의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내게 말했을 뿐이다.

 첫날밤, 우리 중대는 경기도 이천의 어느 시골길을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조금 떨어진 논 옆의 농로를 지나가던 그 날 밤은 미국의 어느 기념일이었던 것 같다.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피융"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펼쳐졌고,
 적진을 향해 침투해가던 우리는 그 때마다 적(?)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과 함께
 불꽃놀이가 주는 황홀한 기분이 뒤섞인 묘한 감정의 애매한 상태로 불꽃의 마지막 꼬리를 바라봤다.
 그렇게 몇번의 불꽃놀이가 끝나고 각 소대는 흩어져 각 소대의 목표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소대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어느 가족의 묘지였다.
 무덤 주위의 평평한 곳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준비된 침낭을 꺼내 잘 준비를 했다.

 우리 부대는 적진 침투를 주목적으로 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텐트를 치는 것보다는 땅을 파고 그 안에서 자는 것이 일반적인 야영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장소는 묘지 근처였기 때문에 함부로 땅을 팔 수도 없었고, 우리는 적당한 자리를 잡고 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판초우의로 둘둘 말아서 자리를 잡아 누우면서 보니 소대에서 외피를 받지 못한 것은 막내인 나 하나였다.
 강원도 초소에서 근무를 서면서 바라봤던 밤하늘보다는 좀 덜하지만 나는 밝게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침낭의 내피와 내 체온이 만들어내는 온기를 느끼며 한참 잠에 빠져들었던 어느 순간...
 나는 발에서 느껴지는 냉기를 느끼며 새벽에 혼자 웅크리기 시작했다.
 판초우의로 롤케익처럼 내 몸을 감쌌지만
 미처 감싸지 못한 발 부분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내 잠은 결코 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잠에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낭 때문에 마음껏 뒤척이지도 못하고 맞이한 아침이 되어 발견한 것은,
 고통스러운 발의 차가움과 밤새 내린 이슬로 하얗게 서리가 내린 내 침낭의 발부분이었다.
 모두가 편안하게 보냈던 그 밤을 나는 미처 판초우의로 덮지 못한 발의 냉기로 인해 설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마 평생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새벽의 찬공기와 서리가 주는 냉기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기상하며 안타깝게 내 침낭을 바라보던 고참들의 눈빛과 함께 내 침낭을 아침 햇살에 말려야만 했던 그 날.

 그 후에 후임을 받아서 맞이한 첫 동계훈련에서 나는 내피와 외피를 모두 갖추고 출동할 수 있었고,
 기온은 훨씬 낮았지만 나는 땀마저 살짝 흘리며 매우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뜬금없이 그 날의 그 훈련이 기억나는 것은, 오늘, 우리집 보일러가 고장났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하나 밖에 없는 전기 장판에서 주무시는 동안 나는 겨울 이불을 둘러싸고 잠을 청할 것이다.
 그 훈련의 첫날 밤처럼 이슬을 맞으며 잠을 설칠 필요는 없지만,
 아마도 나는 오늘밤 새삼스레 보일러의 소중함과 내 체온의 위대함에 대해 감사하며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 삶에서 다시 내 경험을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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