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나의 현재, 너의 과거 - #2 폭풍 성장 본문
나이를 먹어 머릿숱이 적어지고, 체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꾸준함을 유지하고 있는 나의 게으름은 결국 두번째 이야기를 1년이나 지나서 쓰게 한다.
그동안 가정과 직장에서 내 나름의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었다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먼저 해두련다.
나만의 저장소인 이 곳에 그 어떤 흔적도 없는 지난 1년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그렇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시간만큼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경험이 쌓이고, 무언가를 했기에 과거와 완전 동일한 나는 아니지만,
2년 전의 나와 1년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초자연적인 상황으로 인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해도
그 셋을 시간순서대로 누가 구분할 수 있을까?
나의 시간은 이처럼 큰 변화없이 흘러갔지만, 같은 시간을 보낸 한율이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 하루 무얼했냐는 물음에 모르겠다고 대답하던 아이는 이제 하루종일 자신이 한 일과 그 때의 기분을 재잘거린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걸음이 불안해보여 손을 잡아야만 했던 아이는 이제 물건을 들고도 계단을 오르내린다.
블럭으로 무슨 형태인지 알 수 없던 모양만 만들던 아이는 이제 무엇을 의도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모양을 만든다.
용변을 볼 때 따라가 옷을 내려줘야했던 아이는 이제 자기 스스로 옷을 내리고, 용변 후에 추스를 수도 있다.
손을 씻을 때 세면대에 손을 올리기만 했던 아이는 이제 자기 혼자 손을 문지르고 헹군 후에 수건으로 닦는다.
킥보드를 자유롭게 탈 수 있고, 혼자 포크로 음식을 먹고, 색연필로 원하는 부위만 칠을 하고, 양말과 신발을 신고...
요 짧은 몇년 동안 한율이는 내가 부지런하다고 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성장했다.
하나의 감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감탄을 만들어내는 아이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지난 시간 내 게으름이 놓친 것들에 대해 자책하는 수준이 아니라 죄책감까지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올 그 어떤 시간보다 빛났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에 대한 서글픔도 있다.
물론 어린이 영화라고 하더라도 긴장감을 주는 장면을 못 견뎌하고,
밥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서 식사 때 옆에서 거들어줘야만 하는 것처럼
여전히 앞으로 한율이가 극복해야하거나 성장해 나가야할 것들은 많이 있다.
한동안 우리 한율이는 계속해서 나를 놀라게 만드는 모습을 많이 보여줄 것이다.
아마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만큼 새롭게 도전해야할 것들도 늘어나겠지.
비록 놀라움의 폭은 점점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놀라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율이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성장'에 담긴 의미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무게를 생각하게 될 때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내 도움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고,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들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 시기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지금 정확히 답을 낼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처럼 아이가 성장했을 때 놀라워하고, 응원하고, 기뻐하고 싶다.
그 때가 나와 내 아이의 역사가 조우하는 순간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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