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날씨 맑음. 일상이 사라져가고 있다. 본문

일상의 모습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날씨 맑음. 일상이 사라져가고 있다.

☜피터팬☞ 2022. 4. 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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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쉽지 않은 해였다.

프로젝트는 생소한 공법이 선정되어서 부담스러웠고,

함께 프로젝트를 끌어가던 시공사의 장은 성격이 매우 까탈스러웠다.

11시 50분에 퇴근을 하면서 그래도 오늘은 오늘 출근해서 오늘 퇴근하니 다행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업무 강도도 높고 그만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처가에 변고가 있어서 이래저래 심신이 지치긴 했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비하면 그래도 그 때가 양반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ㅋ

(대충 둘러보니 그 때도 한창 바쁠 때는 블로그가 정지되어 있었다..^^;;)

 

지난 번에 징징대던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겠거니 하는 예상을 뒤엎고 일파만파 커져버렸다.

상황은 경력 30년이 다 되어가는 분들까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커져갔고,

프로젝트의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프로젝트의 진행과는 별도로 해명까지 해야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었기 때문에 해명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그 있는 그대로를 제 3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준비해야할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의 오해와 억측, 그리고 욕심 때문에 커져버린 상황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던 발주처만 상대하면 되던 단계를 지나서 상급기관까지 상대하게 만들었고,

그 풍랑의 한가운데에서 두 곳(그리고 문제의 진원지까지) 모두를 상대해야만 했던 나는 전에 없이 지쳐버렸다.

 

그렇게 매일을 무언가 준비하고 막아내고 해명하고 설명하다 돌아보니 내 일상이 사라져 있었다.

일의 성취보다 나만의 세계의 완성에 더 가치를 두며 살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나만의 세계에 내가 없어진 것이다.

일을 하다 지칠 때엔 나만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상상하며 휴식을 해왔는데,

일 자체의 중압감 때문에 휴식 시간까지 잠식되면서 나의 모든 것이 일에 맞춰져 버린 상황까지 와버렸다.

아침부터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쏟아지는 요구들을 맞춰주고,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면서 앞으로 해야할 일을 나누다

지쳐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혹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가고 있었다.

주말에 시간이 생겨도 내가 좋아하는 뭘 하고 싶은 마음보다 일단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그나마 기운이 좀 나면 주중에 신경쓰지 못한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건 좀 아니다. 아니 정말 많이 아니다.

 

가진 것이 몸뚱이 뿐이고,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이것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큰 성공과 인정 받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소소하게 즐기면서 살고 싶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나 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일단 해명의 과정이 잘 끝났고, 프로젝트가 밀리는 것을 감수하는 단계까지 와서 약간의 숨 쉴 틈이 생기긴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상태까지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 바닥을 치긴 한 것 같다.

다만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와서 지금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단히 큰 회의가 들고 있다.

힘들었던 지금의 과정을 또 반복하는 바보같은 짓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단순하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다.

어느 선택이 나은 선택이었는가를 깨닫는 것은 지금이 아니고 나중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내 일상을 찾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위한 도구는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내 일보다 내 세계가 더 소중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조금만 더 회복에 집중하자.

아쉽지만 그 때까지만 내 세계로의 복귀도 미뤄둬야겠다.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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