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Comments
Peter Pan in NeverLand
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본문
반응형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의 눈이 멀어버린다.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이 정체불명의 '실명'은 전염병처럼 모든 사람에게 번져간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의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만들어진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가치'들 역시도 우리가 '정상적'이라는 측면에서만 받아들여진다.
'인간다움', '존엄', '희생', '사랑', '도덕성' 등등.
-이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표현을 과연 써도 된다면)베푸는 자들의 기준에서 말하여지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침범될 수 없고, 침범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너무 뻔해서 초등학생조차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들이 사실 기만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가 도덕 시간에 배워온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라고 배워온 것들은 정말로 진실일까?
그것들이 사실은 '강하다'는 무의식 하에 일어나는 일종의 동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가?
(물론 현실에서는 모두가 '강하기' 때문에-정상이기 때문에- 저런 전제는 사실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우리의 가치들이 우리의 몸에 어떠한 장애도 없을 때는 자명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렇지않을 경우에는 쉽게 무시당하고 침범당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심정일까?
게다가 '이타'라고 하는 것조차도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 우리는 어떤 항의를 하게 될까?
(소설 속에서는 눈먼자들과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다)
-이 소설이 한 장님의 눈물겨운 생활일기도 아니고, 장님이 된 남편이나 자식을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한 여인의 이야기도 아님을 상기하기 바란다. 모두가 다 눈이 먼 것이다. 모두가-
소설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약함, 인간이 세운 가치들의 취약성, 인간성의 허약함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실명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상태'에서 벗어나 그것이 '전염'된다는 가정 하에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현실에 직접 맞닥드리면서 우리 역시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즉 우리 역시도 그들을 배척하고 두려워하며 거부하고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않았던 부분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되어져야하고 추구해야한다고 믿어졌던 그 수많은 가치들이 사실 좀 더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부서지는 것에 대해서 나는 때때로 허탈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소설 속의 많은 인물들은 바로 그런 인간의 나약함, 인간가치의 취약성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취약성까지는 아닐 지라도 그 의미의 가변성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의사의 아내라는 인물을 통해서,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가치들을 추구해야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것이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강한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더 인간적인 존재였으며, 영화 속 히어로라기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인다는 것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성자와도 같은 행동을 하기보다는 함께 눈먼 사람이길 원했다.
자신이 눈이 멀지않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걱정했다.
그녀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눈이 보인다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노라고 말하지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전 지구상의 눈먼자들에 대한 책임이 아니다. 자신의 힘이 닿는 범위에서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했다.
피해받고 있던, 똑같이 눈이 멀었음에도 '힘'이라는 것을 통한 '부당한 권력'이라는 것은 외면하지는 않았고 병원을 나온 후의 일행들을 버려두지도 않았다.
아마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멀리 있는 사람을 향한 가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가까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범위의 사랑을 베풀기를 말이다.
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뜬 구름잡기 식의, 혹은 거창하며 범인류적이기까지 한 책임과 사랑을 절대 요구하지 않았다.
내 손이 닿는 곳의, 내 이웃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하며 도와주고 책임져주기를 조용하고 담담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는 병동 전체를 책임지지도, 눈먼 사람들의 도시나 나라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그녀가 행한 사랑은 자신의 일행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비교적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녀가 눈먼사람들 모두를 책임졌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었다면 그렇지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눈이 멀지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는 말하지 말라.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녀까지 눈이 멀었다면 그건 장님에게 지팡이까지 빼앗아가는 겪이었을테니.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주어진 축복까지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눈이 멀지않게 된 그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사랑,
간단하고 어렵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은.
어찌보면 소박하기까지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덕분일 지도 모른다.
(사팔뜨기인 소년의 어머니와 충분히 비교가 되지않겠는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한 말들은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들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찌보면 신의 시험 혹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기 위한 하나의 경험을 주었다고 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통해서 느낀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 그 경험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않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일테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화두들과 접할 수 있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사랑과 기만, 이타심과 이기심, 권력과 폭력, 인간다움과 비인간다움.
그 중에서도 수많은 인간군상을 통해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가 기만하고 있는 모든 것들.
사랑과 이타, 나눔과 베품, 거창하고 거대하지않은 소박하고 소소한-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랑.
소설 속의 단 한 부분만을 가지고도 수많은 논쟁과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정말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멋진 소설이었다. 빌려서 읽고나서 바로 살 결심을 할 정도로 명작이었고, 흡입력 또한 대단했다.
게다가 소제조차도 약간 호러틱한 것이.. 내 취향에 딱이었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마침표와 쉼표로만 이루어진 텍스트는 마치 "우리 집 식구들 나만 빼고 다 죽었어"라는 말을 무감각하게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소설의 음울함을 한층 더 해줬다.
자, 자.
배운 것으로는 충분하지않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내 삶의 목적은 이 소설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다.
사랑. 범인류적인 사랑이 아니라. 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온전하게 사랑하기를 바란다.
반응형
'감상과 비평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1) | 2004.07.09 |
---|---|
소설 -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0) | 2004.07.05 |
소설 - 뇌 [베르나르 베르베르] (0) | 2004.01.28 |
비소설 - 악마의 문화사 [제프리 버튼 러셀] (0) | 2004.01.21 |
소설 - 영웅 삼국지 1-13 [기타가타 겐조] (6) | 2003.11.02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