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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본문

감상과 비평/책

소설 -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피터팬☞ 2004. 7. 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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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가장 큰 증거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수반하는 것들,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는 존재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일 것이고,
우리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고,
우리의 신체를 다른 사람과 접촉함으로도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고,
우리의 체취를 다른 사람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

체취.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과.. 눈에는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유령이나 환상의 존재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체취.. 냄새라는 것에는 아직 한 번도 접근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접근을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볼 수 있었다.

자기 스스로는 전혀 체취가 없으면서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코가 예민하고 또한 모든 냄새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
장 바스티유 그루누이.
버림받은 생명으로 태어나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냉대 속에서.. 그리고 그 스스로도 인간에 대한 증오를 품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우매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웃으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를 통해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발명한 향수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내가 읽은 쥐스킨트의 소설은 '좀머씨 이야기'와 '향수' 단 두 권이다.
초반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루누이에게 느꼈던 감정은 좀머씨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어쨌든, 인간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좀머씨와 그루누이에게 나는 측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틀렸다.
좀머씨는 인간 사회에 전혀 들어오지 못했던 반면..따라서 인간에 대한 그의 어떤 감정에 대한 표현도 우리는 알 수 없었던 반면..
그루누이는 인간과 동화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목적을 위해 인간사회 속에서 살았고, 인간에 대한 그의 조소와 증오를 우리는 너무나 확고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점점 읽어가면서 그가 무서워져만 갔다....

나는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하고있다.
그루누이가 태어나고 자라가고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인간사회를 이해.. 그 자신의 방법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과정으로의 소설.
그는 냄새 지독한 파리의 생선 더미에서 삶을 선택했다.
그의 삶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생존을 위한 삶이었으며, 그의 삶 속에서 인간미와 따스함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뭐랄까.. 나는 이것이 쥐스킨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 같다. 그가 보기에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물론 희극화된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부분 자만심에 차있고, 고집스럽고, 독선적이라고 할까?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 그의 한 측면을 대변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 사회의 이방인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신체적 조건.. 즉 무취의 인간이라는 그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인 지도 모른다.
그가 계속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주변 사람들의 인간미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주변사람들의 그에 대한 필요성, 즉 상업적이고 세속적인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활하고 영리한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 둘 얻어나간다.)
생각해보면, 그가 소설 속에서 25명의 소녀를 죽이는데 죄책감이 전혀 들 지 않은 것은 꽤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목적을 위해 그 소녀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 것에 지나지않을 지도...)
어쨌든,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배운 것은 그런 식이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하나의 순수한 생명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이용하는 삶.
적어도 그루누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를 그런 식으로밖에 대해주지않았다. 게다가 그의 천재성을 눈치챈 사람 또한 없었다.
만약 그가 그의 인생에서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랑해주고, 그의 천재성을 순수하게 인정하는 그 누군가를 만났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에 그의 천재성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랬더라면 우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향수 제조공과 그의 향수를 만날 수 있었을 지도.. 증오와 멸시가 아닌 사랑과 기쁨의 향수를 말이다.
결국 마지막에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최고의 향수는...
(비록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랑과 기쁨을 간직한 것들에서 뽑아냈을 지라도..)
그루누이의 누구도 알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던 천재성을 통한 인간들의 피상적이고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좁은 한계의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매함에 보내는 조소의 향수였다.

그리고 또한 그 향수는 자기 자신을 알리는.. 그의 존재를 나타내는 향수였는 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을 싫어해서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하고 만족스러워했지만, 자신의 체취가 없다는 것으로 인해서..
즉 자신이 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없음으로 인해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외로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면서, 어째서 그는 스스로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인가?
이것은 제일 앞에서 언급했던, 존재 그 자체를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또한 그루누이에게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 자신이 원하던, 최고의 향수를.. 자신만의 향수를..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보다 스스로가 더 뛰어남을 증명하는 향수를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통해 만들어낸다.
하지만, 결국 그가 만들어낸 것은 향수였을 뿐이다.
그루누이 자신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향수였을 뿐, 그 향수가 그루누이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고 사랑을 보내온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향수였다.
그는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도.. 또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생각은 '장미의 이름'에 나왔던 마지막 귀절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모두를 인식할 수 있다...
결국 유령이라고 하는 것도 유령이라는 이름 덕분에 우리에게 그 존재를(실재하던 실재하지 않던) 인식시킬 수 있지 않았던가.
이 소설에서.. 그 '이름'은 체취.. 혹은 향기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루누이는 존재하지않았는 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그의 '향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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