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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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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에 내가 푹 빠져버린 작가 주제 사라마구.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
내가 친한 친구에게 '눈먼 자들의 도시'를 추천해주었다.
그 친구가 그 책을 다 읽고 나에게 해준 말은 이 사람 어쩐지 평범하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편집증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그리 평범하진 않다는 것.
나는 그 느낌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느꼈다.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왼쪽 팔을 잃은 발따자르와 종교재판소의 횡포로 어머니를 잃은 블리문다.
그리고 수도사의 신분이면서도 하늘을 나르는 것을 꿈꾸는 바르똘로메우 신부.
그들 셋은 하늘을 날기위해 빠사롤라를 만들고, 결국 하늘을 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으며 단지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귀에는 이들 셋이 하늘을 날기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상, 하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이미 상권 부분에서 하늘을 나는 이들을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모든 사람의 축복과 기대 속에서의 비행이 아닌, 종교 재판소의 힘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행이었지만.
그 후에 바르똘로메우 신부는 혼자 사라져 먼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발따자르와 블리문다는 언젠가 다시 날게 될 날을 기대하며, 방치된 빠사롤라를 몰래몰래 수리한다.
이들이 하늘을 날고 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수도원 건축이었다.
발따자르와 블리문다는 무척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이었으므로 이 공사에 먹고살기 위해 참여한다.
이 수도원은 왕과 프란체스코파와의 약속이었다. 왕이 자식을 갖게 되면 수도원을 지어주겠다는 약속.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과 일종의 음모가 들어있었는 지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쨌든, 현실감각이 별로 없게 느껴지는 왕과 허영과 욕망 뿐인 종교 집단은 그렇게 자신들의 권력을 별 생각없이 사용한다.
이 소설은 포르투갈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 나라도 아닌 포르투갈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데에 더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와 작가의 생각은 어느 정도 전달된 듯 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비행기의 개념은 라이트 형제로부터 나왔다.
그 전에는 글라이더가 있었고, 증기를 이용한 기구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 속의 빠사롤라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 속 빠사롤라의 동력은 '인간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2천개의 의지.
그러나 빠사롤라는 하늘을 날아오른다.
종교 재판소가 바르똘로메우 신부의 이단적인 행위 - 하늘을 나는 것을 파악하고 난 뒤 그를 잡으러 왔을 때,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빠사롤라를 띄울 마음을 먹었고, 빠사롤라는 날았다.
인간의 의지가, 종교의 억압을 피해 날아올라 도망친 것이다.
신의 뜻이나 기도의 힘이 아닌, 2천개의 인간의 의지를 모아 하늘을 날아오른 것이다.
종교를 거스르고, 인간은 드디어 그들의 의지로 하늘을, 인간은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곳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완벽한 의미의 탈출은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포르투갈에 다시 불시착하게 된다. 그리고 바르똘로메우 신부는 그 발명품을 뒤로 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에게는 그가 하늘을 날아오른 그 의미를 신의 뜻 안에서 찾지 못하였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는 그에 대한 단 한 줄의 설명도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발따자르와 블리문다는 그들을 죽이려했던, 수도원의 건축에 동참한다.
물론 그것은 그 행위의 신성성과 신의 업적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의 생계를 위한 것일 뿐이었지만.
인간의 의지가 그 어떤 위대한 일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들은 나약한 개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권력, 종교와 정치의 권력은 아직 인간의 의지를 누를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더욱 이 소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수도원의 건축이 시작되면서 발따자르와 블리문다의, 평범하게 보이지않는 사랑이 더 많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묘사 자체가 이미 평범하지 않아서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사랑이 특별히 변태적이거나 혹은 특별히 플라톤적인 사랑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은 무척이나 인간적이었고, 솔적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육체를 경험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빠사롤라를 수리했다.
발따자르가 일을 하고, 블리문다는 그를 기다렸으며, 그렇게 기다려서 서로를 만났을 때는 서로 바라보았다.
발따자르가 사고로 사라지게 되었을 때, 블리문다가 그를 찾는 부분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었다.
결국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증명과 함께-비록 하늘을 날았을 지라도-
그것이 가진 애절함은 (적어도 나에게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 버금갈 수 있었다.
나의 글은 발따자르와 블리문다에게 초점을 맞춰서 씌여졌지만, 사실 소설의 반은 왕실과 종교에 할애되고 있다.
그들의 권력, 우매함, 현실적 인식의 부재, 이해관계, 욕망. 특히 욕망.
그들이 얼마나 허왕된 인물들이며,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인 지에 대해 이 책은 자신의 반을 할애하고 있다.
백성들을 보살피고 잘 이끌어야할 왕실과 사람들에게 심적인 평안과 신앙적 구원을 책임진 종교가 가진 거짓성.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조소와 비난. 그 안에서 상처입어가는 나약한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해 비난하는 일조차 없었다.
그렇다... 지금 생각이 났지만.. 그들은 그 일을 거부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센티해졌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군.
주제 사라마구는 사회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해있었고, 유물론을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였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니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이 책은 철저히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힘없이 착취당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작가 특유의 화법과 이야기 전개 방식에 의해 무채색의 우울함을 띄고 있다.
무척이나 우울하지만, 그 우울함을 지닌 사람은 그 우울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채색의 우울함.
이 소설의 결말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는다. 수도원의 공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의 결말일 뿐, 우리는 그 후의 역사를 안다.(혹은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의 의지를 가지고 이루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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