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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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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력. 우리가 현재에 사용하는 A.D력이 아니다.
A.F력이라는 것은 포드 자동차 회사의 사장인 포드 사장이 T형 자동차를 개발한 것을 기점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는 새로운 세계. 그것은 실로 새로운 세계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실로 '멋진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 세계에는 그 어떤 고통-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고통-이 없는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는 고통이라는 것을 생산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가족, 애인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그 세계는 결혼도 없으며, 자식도 없고, 섹스는 자유롭다.- 사랑의 고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공 수정을 통해 생산되므로, 인구 조절도 자연스럽다. 모든 섹스는 단지 유희만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 부모라는 말이나 개념은 무척 저속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친구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 갈등이라는 것은 굉장히 표면적이고 유치한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학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으며, 필요한 영역의 지식만을 배우며, 파블로프식 조건반사와 수면학습을 통해
의식을 유아적으로 고정시키기 때문에 고차원의 갈등-이를테면 관계사이의 불합리 등-은 절대 없다.
또한 신분이 고정되어 있고, 신분에 따른 위치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승진이라는 것으로 고민할 이유도 없다.
거기다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이 가능한 '소마'. 이 강력한 약 덕분에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약을 통해 모든 것을 잊는다.
(이 약은 부작용이 없는 마약이라고 한다. '1그램의 소마는 10가지 우울증을 치료해준다.'-본문 중에서)
모든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되어지고, 우리는 단지 주어진 임무만을 충실히 수행하며,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인간간의 갈등도 없다.
자유는 없다. 그러나 안정적이다.
사실 이 책은 그리 기분좋은 책은 아니다. 내용 자체가 기본적으로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 이외의 것들도 사실 그렇다.
이 책이 1930년대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딴지 한 번 걸어야겠다.
이 소설은 소설의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이 책은 절대적인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서양인들의 외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소설의 설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모순은 그만두고서라도, 지금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은 '신세계'라는 설정과는 상관없는 작가의 기본 사상인 것이다.
그 당시의 서양인 혹은 작가의 생각에서 미의 기준이라던가, 남성중심적이라는 것은 신세계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상이었겠지만..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그 부분은 상당히 불쾌한 것으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라도 이 세계는 '신세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보고 뭐라뭐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 달을 한 번 쳐다보기로 하자.
이 세계가 포드사의 T형 자동차 생산연도를 그들의 원년으로 삼은 것이나,
그들이 종교적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이 포드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었던 헨리 포드라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이것은 그들의 세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부가설명은 소설 자체에 지겹도록 나와있다.
헨리 포드는 조립 라인 방식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이고, 소설 속의 신세계는 이 시스템 속에서 운영되는 세계이다.
그리고 T형 자동차는 바로 이 조립 라인 방식의 시스템, 포드시스템을 통해 양산된 최초의 자동차이다.
적절히 통제되는 인구와 각 계급의 사람들은 각자의 임무에 맞게 처음부터 교육되어지고 양산되어진다.
(하지만 알파라고 불리는 계급의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임무에 대한 자율성은 어느정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_-)
계급간의 이동이나, 델타나 입실론 계급의 사람이 강등되거나 승격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모든 것은 세계 총통의 지배와 세계 국가의 시스템 아래에서 철저하게 통제되고 조절되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
파블로프식 조건반사 훈련과 수면학습, 그리고 철저히 배제된 문학과 절대 진리의 과학의 통제를 통해 이뤄진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유아적이고, 자아라는 것은 거의 없다. 이 국가는 국가주의적이면서, 묘하게 국가주의적이지 않다.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한다고 믿어지는 행동을 하며,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란이나 폭동도 없고 불필요하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할 수 없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면 그만이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주요한 논제는 '안정'과 '자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대한 시스템 속에 포함된 부품으로의 인간과 인간성과 자아를 추구하는 인간 사이의 충돌이다.
인간이 자아를 추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필연적으로 충돌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정해진 자원, 일의 성격, 통제할 수 없는 타인 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합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노력은 개개인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아로 만들어주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내가 A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이 B가 아니라 A이기 때문이며, 그 A는 다른 누군가와는 대치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질 수 있으며, 때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와 B의 구분이 없고,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많은 문제는 사라진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그냥 녹아버린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가치나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불안과 괴로움은 없다.
(그래서 나름의 주체성을 가진 알파나 베타 계급의 사람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고뇌하는 지도 모르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우리가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겠지만, 이 신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이 소설을 읽는 현대의 사람들은 이 신세계의 체제나 사람들을 결코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이런 몰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던 서양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의 주된 논점은 잘 알았으나, 그가 선택한 혹은 제시한 방법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소개글에서 그는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기계적이고 몰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해답 혹은 반항으로,
제시하는 인간적인 삶이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며 금욕적이고 육체를 괴롭게하며 마음을 단련하는 모습이어야했을까?
이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한계를 드러내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않았다. 그는 결국 혁신적인 작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고행적 삶이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소설 중간에 들어있는 야만인 존과 세계 총통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들의 대화 속에 담겨있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인간적인 생활의 모습에는 종교적인 색체가 들어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뭐, 이런 부분에 대한 나의 불만은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처럼 오래된 것은 아니더라도, 오래된 것이니까.(적어도 작가의 생각은 고적적인 듯.-_-)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또한 인간적으로.
인간은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인간적인 삶(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사실 두 가지의 목표가 꼭 충돌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율배반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
그리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주요한 논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문제이다.
비단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수많은 소설들과 영화들은 이렇게 '인간의 정체성'문제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이다. 물론 선택한다고 끝이 나는 문제는 아니지만..^^
P.S : 이 소설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 중에 하나는.. 이 정도 소설은 중고생 필독서가 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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