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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제시카 존스(Jessica Jones) 시즌1 [넷플릭스]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드라마 - 제시카 존스(Jessica Jones) 시즌1 [넷플릭스]

☜피터팬☞ 2021. 7. 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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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사립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는 제시카 존스.

사립탐정이라고 해서 셜록 같은 미해결 사건을 떠올린다면 큰 착각이다.

그녀가 맡는 사건들은 실종자를 찾고, 배우자의 불륜을 캐는 현실적인 탐정 업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흥신소를 떠올리면 될 듯.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하며 술에 절어 살던 그녀에게 한 노부부가 딸을 찾아달라며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잊으려 애쓰던 과거의 악몽과 다시 만나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TV시리즈, 마블 히어로 제시카 존스.

...

제시카 존스라니!!

10년 동안 시리즈를 지켜본 어벤저스도 아니고, 최애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고,

넷플릭스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다고 생각하는 블랙 미러도 그냥 넘겼는데, 제시카 존스라니!!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영상물을 전혀 안 본 것이 아닌데,

그것들을 모두 그냥 넘기고 오랜만에 쓰는 리뷰가 제시카 존스라는 것이 스스로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이 작품을 그냥 넘기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작품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메시지들 중에서 리뷰에서 반드시 꺼내고 싶었던 주제는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 발생한 불행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 선택의 의도와 상관없이 때때로 결국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로 인해 발생한 불행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이 드라마를 소개해준 덕질인(홍성갑)은 사랑과 집착이 시즌1의 주제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빌런인 킬그레이브의 관점에서 해석한 좁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다만, 덕질인 덕분에 이 드라마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 땡큐 베리 감사!!)

 

시즌1의 빌런인 킬그레이브의 능력은 자신의 명령을 듣는 상대를 자신이 한 말 그대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강력한 최면. (그런데 그 최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다!! 드라마를 보세요!!)

그는 그 능력으로 마음에 드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도박판에서 상대방이 들고 있는 패와 상관없이 올인을 하게 한 후에 기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심지어 살인을 하거나 자살을 하게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꽤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사이코패스라서 어벤저스라도 나서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가 벌이는 범죄를 보면 도박판의 판돈을 긁어모은다거나, 무전취식을 하거나, 그냥 좋은 집에서 잠을 자거나...

자살로 포장한 살인과 데이트를 빙자한 강간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를 지배하거나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표인 빌런들에 비해 잡범 정도의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별 위협은 아닌 듯한 이 빌런에 맞서는 히어로는,

빌런의 능력에 제대로 당해서 자신의 인생 일부분을 지우고 싶은, 스스로가 피해자이기도 한 제시카 존스다.

코믹에서는 하늘을 나는 능력도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저 엄청난 괴력과 그 괴력을 바탕으로 한 점프력 정도의 능력이 전부.

히어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그녀는 길거리 아르바이트 중에 한 아이를 구하고 난 후 히어로 노릇 좀 해볼까 하다가

킬그레이브와 우연히 조우하면서 그의 능력 때문에 한동안 노예처럼 살다가 결국 살인까지 하게 된다.

살인을 계기로 킬그레이브의 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그 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까칠하고 냉소적인 주인공.

그래서 그녀는 드라마 속 여느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킬그레이브 때문에 겪게 된 일로 계속 고통받고 그를 두려워한다.

그녀와 다른 피해자의 차이는 그녀가 그저 엄청난 힘이 있고,

킬그레이브에게서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것 때문인지 그의 통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뿐.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포인트는, 그녀가 악을 싫어하고 단죄하고 싶은 정의감이 넘쳐서가 아니라

단지 킬그레이브의 통제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 그녀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거칠게 요약하면, 제시카 존스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일상을 찾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히어로가 등장하지만(그것도 둘이나!!) 전혀 히어로 영화스럽지 않은 드라마가 바로 제시카 존스다. (적어도 시즌1은 확실히.)

하지만 그렇다고 히어로물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일단 빌런의 능력부터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기 때문.ㅋ

 

드라마 속 킬그레이브의 복종시키는 능력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빌런들의 행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의 문법처럼 피해자를 액션 장면의 소품 같은 것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킬그레이브와 얽힌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받은 피해의 내용을 드라마 내에서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가 범죄의 크기와 관계없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의 안타까움과 그들이 겪을 정신적 고통을 상상하게 한다.

이를테면 화장실이 가고 싶은 아이들이 킬그레이브의 명령으로 벽장에 들어간 후

벽장 바닥 틈 사이로 천천히 오줌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눈치 없이 킬그레이브에게 말을 걸었다가 담장이나 보고 서 있으라는 명령을 들은 청년이

다음 날 그곳에 제시카 존스가 조사하러 올 때까지 식은땀을 흘리고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로 계속 서 있는 장면을 정면으로 잡는 등,

피해자를 화면의 주변부에 배치하지 않고 풀 샷으로 잡고 클로즈 업을 하는 등 드라마의 한가운데에 계속 등장시킨다.

이 드라마 속 피해자들은 히어로와 빌런의 정신없는 능력 배틀 중에 도망치다 쓰러지거나 돌에 맞는 배경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되는 우리 혹은 우리 이웃의 모습으로 느껴지게 된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그저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 킬그레이브의 명령으로 범죄 혹은 악행도 저지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시카 존스가 그렇듯이 말이다.

드라마 속 피해자 모임에서 킬그레이브 차에 타는 바람에 차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길에 내려두고 가버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내가 그였다면 나 자신을 용서하고 죄책감 없이 살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킬그레이브의 능력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을 했고, 따라서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 사건을 겪은 내가 받은 심리적 충격과 고통,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한 행위까지 기억에서 없애주는 것은 아니니까.

개인에게 닥친 거대한 재앙 앞에서, 그리고 그 재앙의 중심에 내가 있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시즌1의 사건이 모두 마무리되고 제시카는 다시 탐정사무소로 돌아온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제대로 돕지 못했고, 피하고 싶어 하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만든 바로 그 장소에서,

쏟아지는 도움 요청 메시지를 들으며 열심히,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스스로 히어로라고 속을 날이 오지 않겠냐는 독백을 한다.

어쩌면, 전혀 히어로 영화 같지 않은 이 드라마가 거대한 재난과 고통 앞에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나 스스로에게 주어진 짐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인 것 아닐까.

(하지만 결국 나름 무게 있는 답을 던졌다고 보는 건 순전히 내 해석이고,

드라마 제작 과정이 가진 한계 때문에 결론은 그냥 뭔가 너무 튀지 않는 대사 하나 던지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 지은 것일 수도.ㅋ)

 

 

P.S : 이제 마음 편히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수 있다...ㅠㅜ 아자.

      2015년에 나왔지만 이제야 겨우 본 첫 마블 히어로 드라마.

      생각보다 굉장히 몰입했다.

      풀고 싶은 썰은 아직 더 있는데, 이미 많이 풀었으니,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지.

      다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미드가 그러했듯이 다음 시즌도 이런 식으로 전체 흐름을 풀어낼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열심히 본 미드는 보다 보면 씹고 싶어지는 순간이 꼭 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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