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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데어데블(Daredevil) 시즌1 [넷플릭스]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드라마 - 데어데블(Daredevil) 시즌1 [넷플릭스]

☜피터팬☞ 2021. 8. 26.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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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허름한 지역인 헬스 키친이 고향인 두 명의 초짜 변호사 포기 넬슨과 맷 머독.

힘없는 선량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대형 로펌에서 나와 덜컥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그들은,

건설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다 어딘가 수상한 살인사건에 휘말린 캐런 페이지를 돕게 된다.

비록 장님이지만, 어린 시절 훈련을 통해서 초인적으로 발달한 다른 감각을 이용해 밤에는 자경단으로 활동하는 맷 머독은

캐런의 사건을 시작으로 헬스 키친을 장악하려는 거대한 검은 움직임을 눈치채고,

사랑하는 헬스 키친을 지키기 위해 캐런, 포기와 함께 고군분투한다.

 

애초에 이 시리즈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제시카 존스 다음에 디펜더스로 바로 직행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 시리즈를 정주행 해버리고 말았다.-_-;

디펜더스 드라마를 시작하자마자 초반에 등장하는 데어데블의 인물들을 보다가 뭔가 혹 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평도 나쁘지 않았던 터라 기왕 디펜더스 보기로 한 거 데어데블도 일단 시즌1 정주행 완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데어데블 역을 맡은 배우 찰리 콕스의 목소리가 너무 섹시해서가 아닐까 한다..ㅋㅋ)

 

개인적인 평가는 제시카 존스 시즌1이 더 좋았는데, 데어데블 시즌1은 상대적으로 보통의 히어로물에 가까웠기 때문.

지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를 정복하려는 악당에 맞서서 복면 쓴 주인공이 친구들과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는 전개보다는

자신이 히어로라는 별다른 자각도 없는 주인공이 반쯤(아니 전부?)은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전개가 내겐 훨씬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만 데어데블의 신선도가 제시카 존스에 비해서 부족했다는 평가가 데어데블이 재미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두 축인 맷과 피스크의 이야기가 잘 살아있는 덕분에 둘의 대립은 입체적으로 구성되고 흥미를 끌어낸다.

자신처럼 몸을 쓰는 거친 일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지만, 결국 그 뜻과는 반대로 자경단이 되어 거친 인생을 사는 맷.

힘과 권위로 자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로 인해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아버지처럼 힘과 권위로 헬스 키친을 지배하려는 피스크.

자경단 활동으로 주변인들과 되도록 얽히지 않으려 하면서 홀로 고독한 싸움을 펼치는 맷의 모습과

지역 지배 사업의 주요 임무를 담당하는 심복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며 자신의 사적인 영역까지 맡기는 피스크의 모습,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법망에서 벗어나 있는 자경단 활동과 행위에 대해 방황하고 질문하는 맷의 고민과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지독한 악행을 하면서도 자신의 활동이 지극히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피스크의 신념,

사무실 월세를 걱정하는 가난한 변호사와 정재계 인사들과 연이 닿아있는 부유한 자산가라는 사회적 위치에 이르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서 극명하게 다른 두 사람은 드라마 곳곳에서 대비되고 대조된다.

더구나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포커스를 받게 되는, 히어로 활동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맷의 이야기가 그냥 커피라면,

비록 악당이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고통받으며 한 여자에 대한 순정을 보여주는 피스크의 이야기는 T.O.P라고 할 정도다.

원작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 속 피스크의 인상이 내게는 '힘숨찐'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피스크의 심복 웨슬리가 더 카리스마가 있어서 피스크는 최종 보스지만 진짜 그냥 찐따 악당인 줄...;;

노린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 이미지를 처음에 가지고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매력이 더 커지는 효과가 있었다.

 

13편이라는 길이와 완성도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겠지만 이야기가 두 사람에게 집중되면서 나머지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뒤로 밀려난다.

그나마 맷의 오랜 친구 포기는 맷의 과거 이야기 때문에 비중이 더 있어 보이는 정도고,

다른 지역 출신의 캐런이 맷 이상으로 정의감을 불태우는 이유는 그냥 개인 성격이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며,

클레어와 맷의 미묘한 감정선은 언제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짧고 단순하게 처리된다.

(뭐, 클레어와 맷의 러브 라인이 너무 밋밋해서 피스크와 바네사의 러브 라인이 더욱 돋보였고, 덕분에 피스크라는 캐릭터가 살긴 했다.)

선한 역할의 주변 인물들 뿐만 아니라 피스크를 도와서 헬스 키친을 지배하려던 악당들의 사정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러시아 갱단들은 단순하게라도 과거 이야기가 나왔지만, 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한 야쿠자와 삼합회 이야기는 성의 없어 보일 지경.

 

선과 악의 주인공 두 명의 이야기에 집중한 결과 아쉬운 또 하나의 지점은 바로 두 사람의 목적인 헬스 키친이라는 배경이다.

여러 면에서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맷과 피스크지만, 두 사람 모두 고향인 헬스 키친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맷은 낮에는 변호사로서 법의 힘으로, 밤에는 자경단으로서 법이 미처 닿지 못한 범죄를 무력으로 해결하며 헬스 키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반면에 피스크는 현재의 음습하고 낙후된 헬스 키친을 돈과 힘을 이용해서 번듯한 지역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를 통해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동일한 목적은 가졌지만 대립하는 이 구도에서 우리가 맷을, 비록 그가 좀 과격하긴 하지만, 선역으로 생각하고 히어로라고 부르는 이유는

피스크의 독단적 행위로 인해 무고한 피해를 입는 헬스 키친의 선량한 사람을 맷이 지켜내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엘레나 할머니가 그 대표 격이며, 맷의 입을 통해서도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나이를 적당히 먹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이쪽 이야기와 저쪽 이야기를 대충 들어본 경험이 있는 아재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량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 진정 선인지, 심지어 그 사람들에게도 정말 그게 좋은지 의심이 든다...;;

드라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맷의 명분이 되는 헬스 키친의 주민들이 정말 '선량한 사람들'인지 제대로 조망해주지 않는데,

우리도 알다시피 대중이란 마냥 선량하지도, 마냥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서, 맷의 입장은 너무 나이브하고 안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범죄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피스크의 방법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나쁜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게다가 근본적으로 이 전제에는 대상의 선량함과는 상관없이 무도한 일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그 관점에서 보면 피스크가 하는 개발이나 맷이 하는 자경단 활동이나 (규모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맷의 자경단 활동이 범죄자를 후드려패는 일이고, 피스크의 개발 사업이 범죄를 베이스로, 더 큰 범죄를 위한 것이라는 차이를 말하기 이전에

둘 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한쪽을 용인하면 다른 쪽도 용인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 것.

이처럼 부실한 배경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딜레마 속에서 맷이 히어로일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맷을 선한 위치에 있게 해주는 헬스 키친의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장치가 아쉽긴 하지만, 맷과 피스크의 위치는 배경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맷을 히어로로, 피스크를 빌런으로 결정짓는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맷과 피스크 모두 헬스 키친과 주변인들(피스크의 경우 어머니와 연인)을 아끼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피스크가 헬스 키친과, 자신의 어머니와, 연인을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려는 반면,

맷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헬스 키친을 포함하여 주변인들 모두)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으며 그저 지키고자 한다는 점이 바로 결정적인 차이다.

어머니가 무척 마음에 들어했던 요양원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비록 옮기는 곳이 더 좋을지라도, 피스크와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치는 캐런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 하면서도 결국 캐런의 의지를 묵묵히 지지하며 돕는 맷.

데어데블 시즌1의 빌런과 히어로가 갈라지는 지점은 그들의 철학이나 목적, 또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사랑하는 태도가 달랐기에 신념에 차서 움직이던 피스크는 홀로 감옥에 남았고, 고뇌하며 번민했던 맷은 동료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 의지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상대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안 그래도 변수가 많은 상황에 내가 세운 계획이 틀어질 것이 분명하고 그것이 서로를 더 힘들게 할 것이 뻔할 때는 더더욱.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최선의 자세는 무엇일까?

데어데블 시즌1의 끝에서, 맷과 포기는 (공교롭게도) 제시카 존스와 같은 자세를 이야기한다.

그저 천천히 함께 나아가자고.

 

묵직한 액션과 괜찮은 배우들이 열연해준 데어데블 시즌1이 내게 해준 이야기는 그랬다.

 

 

P.S : 이제 데어데블 시즌2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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