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애니 -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 [토미노 요시유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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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 [토미노 요시유키]

☜피터팬☞ 2025. 5. 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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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세기 0093년.

네오 지온의 총수 샤아 아즈나블은

자기중심적인 지구의 지배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지구에 소행성을 낙하시키는 작전을 전개한다.

소행성 낙하로 지구에 핵겨울을 불러와

인류가 살 수 없게 만들려는 계획을 그냥 볼 수 없는

론도벨과 아무로는 샤아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를 매우 축약해서 적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굳이 스토리를 언급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 싶은 작품이다.

건담 시리즈의 고전 of 고전이자 명작 of 명작인 데다가,

비교적 최근 작품인 유니콘의 기반이 되는 작품이라서

올드 팬들도, 신규 팬들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 내적인 의미 외에, 작품 외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것이 많아서

이미 이 작품과 관련된 포스팅이나 정보는 차고도 넘치고 있다.^^;;

그래서 이 포스팅은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역습의 샤아'는 내가 처음으로 감상한 건담 애니메이션이자, 가장 좋아했던 건담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형이 가지고 있는 LD 복사본 비디오로 봤는데,

당시엔 영상에 자막이 없어서(불법 복사였으니까! ㅋ) 프린터로 출력(!!)된 대사집을 옆에 두고 감상해야 했다.

영상과 출력물을 따로, 동시에 본다는 건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듣는 대사와 출력물에 적힌 대사가 일치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결국 중간부터는 영상만 보고 나중에 대사집을 읽으며 장면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과연 이해는 했을까 싶은 의심이 드는 것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힘든 조건도 조건이지만,

나에게 건담은 어디까지나 프라모델 ip 중에 하나였을 뿐이라서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감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작이 주는 감동은, 작품 감상 환경의 열악함을 뛰어넘고, 사전 지식 부족마저 뛰어넘어서,

친구의 집에서 역습의 샤아를 감상한 이후 나의 최애 로봇은 드라고나에서 뉴 건담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과거의 유명한 작품들이 인터넷에 활발히 (불법적으로) 업로드되던 시기, 역습의 샤아를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

이때는 영상과 대사를 함께 볼 수 있어서 감상 자체는 수월했만, 건담 세계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퍼스트 건담과 제타 건담을 제대로 감상하게 된 건, 이때 역습의 샤아를 다시 본 이후로도 10년은 지나서일 듯.

첫 감상의 향수와 여전히 최애 건담인 뉴 건담에 이끌려 봤던 두 번째 감상은, 어릴 적 끝내지 못한 숙제의 완성이었다.

작품의 재미가 아쉬웠던 이유는 내 사전 지식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불친절한 토미노 옹의 작품 스타일 때문인 줄 알았다.

 

처음 역습의 샤아를 감상한 이후로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퍼스트와 제타, 그리고 각종 OVA와 설정집, 인터넷 유머 등을 통해서 건담 세계관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5월 7일, 기동전사 : 역습의 샤아가 롯데 시네마에서 정식으로 개봉했다.

이 작품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처음으로 접한 건담 영상물이자, 나를 건담의 세계로 빠지게 만든 작품이고,

건담의 영원한 주인공 아무로와 샤아의 마지막을 보여주면서, 퍼스트 건담부터 시작한 우주 세기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다시 감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ㅋㅋ

 

다시 본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는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빛나는 작품이었다.

착한 우리 편과 나쁜 상대편이 단순하고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력 묘사,

무책임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처리하는 권력자들과 그러한 부조리함에 피해를 받는 평범한 사람들,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치장했지만 알고 보면 그저 개인적인 감정의 해소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미래를 망치려는 행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파괴적인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안타깝고 불필요한 죽음을 비롯한 수많은 비극들,

그에 맞서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임무에 충실한 모습까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어째서 뉴 건담이 리얼 로봇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이끌었는지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찌질하고 지저분하며 부조리해서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현실과

그러한 현실 속에서 주어진 몫을 성실히 해나가는 것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토미노 옹의 세계관은 꿈도, 희망도 없이 암울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최소한 나는 건담에서 그런 무자비한 암울함을 본 적은 없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건담 세계관을 제대로 숙지하고 감상한 뉴 건담은, 그동안 내가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했다. ㅋ

대충 생각해도 3번, 아마 따져보면 4번 정도는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분명히 이 작품은 건담의 세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물론 셀화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멋진 로봇들의 화려한 대결과 연출은 여전히 충분히 볼만하고,

작품 내에서 언급하는 대사들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건담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작품의 재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멋짐(!!)은 아마 50% 정도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아무로와 샤아가 TV 시리즈를 통해 이미 수많은 에피소드를 쌓아왔고,

이 작품은 그렇게 쌓인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2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완결 지어야 하는 극장판의 형식은 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지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TV 시리즈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극장판을 통해 완결 짓는 일본 애니 전통에 충실한 이 작품은,

건담 세계관의 역사를 아는, 우주세기의 팬인 사람들에게야 온전히 자신이 가진 진가를 드러낸다.

 

그렇게 작품의 진정한 재미를 (나름대로) 찾아낸 지금에 와서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중2병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샤아와 충분히 완성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무로의 대비가 그렇다.

퍼스트 건담에서 여러 모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무로의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만족스러웠지만,

그로 인해서 아무로와 관련된 드라마가 작품 속에서 별로 없다는 것은 아쉽다면 아쉬운 지점이 되었다.

극 중에서 재미있는 드라마는 모두 샤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덕분에 수많은 명짤이 탄생하게 되었... 쿨럭)

그래서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은, 물론 작품의 피날레는 아무로의 몫이었지만, 주인공인 아무로가 아니라 샤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작품의 스핀 오프 격인 소설, 벨토치카 칠드런은 어땠더라? 갑자기 이 소설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0년의 세월을 지나, 과거에 비해서 조금 더 진성(?) 건담 덕후가 된 이후에 감상한 역습의 샤아는,

내가 왜 건담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고, 뉴 건담을 가장 좋아했으며, 여전히 그 세계를 기반으로 한 유희를 즐기는지 증명해 주었다.

또한 어떤 방대한 세계에 입문하고자 할 때 첫 작품이 중요하다는 실증으로 나는 이 작품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이번의 감상은, 그러한 나의 기억과 경험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건담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봐야 한다.

이미 건담의 팬이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이 작품을 봐야 한다.

나는 건담이라는 세계와 그 세계의 문법이 갖는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 그것이 바로 역습의 샤아라고 감히 주장한다.

 

P.S : 노원 롯데 시네마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에 노원 롯데에서 건담 베이스가 철수한 것이 이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이 또 없다...ㅠㅜ

작품을 감상하고 뽕이 오를 데로 오른 팬들의 지갑을 제대로 털어먹을 수 있는 찬스가 될 수 있었는데... 멍충한 한국 건담베이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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