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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만화의 새로운 흐름 김성모 그리고 양경일 본문

머릿속 탐구/칼럼

우리 나라 만화의 새로운 흐름 김성모 그리고 양경일

☜피터팬☞ 2005. 6. 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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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한 후배가 내게 재미있는 정보를 흘려주었다.
"디씨의 김성모 갤러리에서 양경일 팬하고 김성모 팬하고 한 판 붙었어."

그 친구의 저 한 마디로 디씨에 김성모 갤러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식의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해서 직접 김성모 갤러리로 찾아갔다.
하루에도 샐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글이 올라오는 디씨에서 후배가 내게 알려주었던 글을 찾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_-;
결국 5월 28일에 올라온 게시물들 중에서 관련 글 몇 개를 찾아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글이 있지는 않았다.
아마 게시판 관리자들이 관련 글들을 지웠거나 아니면 양경일씨의 만화와 김성모씨의 만화에 대한 논쟁이 그리 대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김성모의 만화를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예전에 소년 챔프를 한참 보던 시절에 챔프에 실렸던 그의 만화를 본 적은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챔프가 맞을 것이다. 보물섬을 사서 봤던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으니까.
김성모 갤러리에서는 그의 만화를 보지 않고서 그의 만화를 논하지 말라고 하던데.. 걱정마시라.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김성모의 그림이나, 스토리, 그 컬트적인 표현 등에 대해서는 전혀 태클 걸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의 그런 면이 엄청난 팬 층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까지도 부여하고 싶다.
그의 만화는 지금 하나의 컬트 문화를 형성하고 매니아층을 양성하고있다.
김성모 갤러리를 들어가보라.
거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김성모를 정말 좋아해서 들어오던지, 아니면 김성모를 고도로 비난하기 위해 들어오던지,
확실히 그의 만화는 하나의 문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언젠가 유행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 명맥을 조금씩 이어가고 있는 마사루처럼 말이다.
그 만화가 논리적인 혹은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지않아서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나의 매체에서 나오는 작품들이 다 그렇게 훌륭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김성모에 대한 비난을 내 마음껏 하기 전에 하나 지적하고 넘어가자.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나는 대여점에서 하루에 만화 10권씩(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자주) 빌려보는 만화 매니아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말아라.
혹은 "만화 따위의 후루룩 매체는 그저 잠시 즐기고 말 뿐이지. 만화가 아무려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지 말아라.
만화를 즐기면서도, 그에 준하는 기본적인 소양과 이 땅의 만화 문화가 가지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 글을 아무리 읽어야 시간만 아까울 분이고, 이런 사람들과는 정상적인-혹은 발전적인- 토론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이 후의 글을 제대로 읽고 건전한 토론이나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 나라의 대여점 문화가 가지고 있는 폐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와서 나머지 글을 읽기를 적극 추천한다.
(글이 많아서 못 읽겠다면.. 김성모식으로 말해 '근성'으로 다 읽고 와라.)

김성모에 대한 비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를 '화뷁'으로 지칭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화백'이라는 말의 정의는 화가를 높이 지칭해서 쓰이는 말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만화가가 화백이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는 뒤로 하고서라도,
일단 '그림을 그리는 분야의 작가에 대한 존칭'이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럼 작가는 무엇이냐?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작가다.
화백이라고 불리던, 화가라고 불리던, 작가라고 불리던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작품을 만드느냐하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작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유명한 작가에게 그림 한 점 그려달라고 하고 그걸 내 이름으로 어딘가에 내놔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나뿐이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돈 조금 있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내 이름만 붙어있으면 작가가 된다는데 작가가 못 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슬 감이 잡히는가? 김성모 화뷁을 작가나 화백이라는 칭호로 부르지 않고 화뷁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이유를 말이다.

그가 유명한 '만화 공장장'이라는 사실은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단 만화가 한달에도 수십권씩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그 만화에 관여해서 작업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작품은 전혀 손도 안 대고 그의 이름만 달고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대여점 문제를 떠나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방식에 관해서 기존의 한 명의 작가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분업화된 방식을 취하는 것이 더 좋으냐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산업화되고 빠른 싸이클을 가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특징과 관련지어서 본다면 그의 공장식 만화 생산형태가 꼭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좋다고 치자. 이런 공장식 만화 제작 방식이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의 만화 제작 방식에 대해서 백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화백의 호칭을 붙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그는 직접 만화를 생산한 것이 아닌 생산된 만화 공장의 공장장이므로.
차라리 그의 만화가 '김성모 프로덕션'이나 그가 가진 빌딩의 이름을 달고 나온다면 덜 욕하겠다.-_-
영화의 엔딩 크리딧처럼 그냥 대표는 김성모고, 다른 건 누가 했다더라하는 식으로만 나오고, 그 만화가 그렇게 평가된다면 이렇게 열올리지도 않겠다.
작품은 다른 사람이 열심히 만들고 칭찬은 김성모가 듣는 이런 기형적인 상황이 과연 옳은 것인가?
재주는 곰이 넘고 박수는 원숭이가 받는다더니 김성모가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받는게 올바른 일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공장제 만화 자체에 대한 내 견해는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김성모라는 이름을 달고 작품은 나오지만, 실제로 만든 사람은 다른 사람인 이런 어이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평가는 단지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는 명예와 대접이 필요하고 스스로 그럴만한 긍지도 가져야한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인 김성모 휘하에 있는 문화생들(공장직원들)의 생각이다.
자신이 열심히 그린 만화를 보고는 김성모 화뷁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팬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돈은 제대로 받으니 나는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일까?
하지만, 실제로 돈은 필요할 정도로 받고, 자신은 그토록 원하는 그림을 그리니 괜찮다라고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 이제 두번째 비난을 시작할 차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공장제 만화 생산 자체에 대해서는 그닥 비난할 생각은 없다.
(김성모처럼 자신의 이름이 아닌 프로덕션 이름으로 만화를 내놓는다면 말이다.)
내가 비난하고자 하는 바는, 이 만화 공장 시스템이 결코 이 땅의 건전한 만화 문화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만화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어느 정도는 이 땅의 대여 문화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몇 권의 만화를 만들어내더라도, 어차피 팔리는 부수는 다 거기서 거기인 이 땅의 현실을 말이다.

우리 나라가 만약 만화를 사서 보는 문화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은 모두 사서 보는 사회에서 탄생한 공장 만화는 그닥 비난할 것이 못 된다.
공장 만화라고 재미없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많은 수의 작품을 빨리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시스템은 정말 환영받을만 하다.
하지만, 지금의 공장 만화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태어난 시스템이 아니다.
대부분의 만화가 대여점을 통해서 읽혀지고 있고, 아무리 좋은 작품을 그려도 대여점 수만큼만 팔리는 이 땅에서 태어난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작품 수만 많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탄생한 시스템인 것이다.
기형적인 만화 시장 구조에서 생긴 기형적인 만화 생산 방식.

혼자 그리는 만화가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고는 딱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몇 편의 작품을 얼마나 빨리 만들어내느냐에 작가의 수입이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 작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빨리 만들어내는 것에 된다.
결국 살아기기 위해서, 만화를 계속 그리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공장 만화를 그리는 편이 좋다는 결론만이 남게 된다.
작가의 만화는 사라지고, 프로덕션의 만화만이 이 땅에 남게 될 것이다.
만화는 소장하는 것이 아닌, 빌려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될 것이고, 이 땅에서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들은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덕션 소속의 한 직원이 될 것이다.

그게 왜 나쁘냐고? 그렇게 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만화는 영화가 아니고,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만화는 만화만의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만화는 오히려 소설이나, 그림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한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다.
공장 시스템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매력과 깊이가 전통적인 만화 제작 방식에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위에서 말한 의문이 남는다면 어째서 만화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공장 만화가 성행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기 바란다.
아니면, 어째서 수공업 제품들이 대량 생산된 제품들보다 비싸게 팔리는 지에 대해서 고민해봐라.
(그래도 모른다면 당신의 지적 수준을 의심해보자.)

그러나 나의 이런 비난은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여점은 합법이니까.
그러니까 나의 비난은 잘못된 것일까?
.... 당신 내가 앞에서 이 글 읽지 말라고 그랬지..-_-
법적으로는 합법이라고 해서 항상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적어도 내 비난은 도덕적으로는 합당하고, 당연하다.
내가 잘못되었다면, 일제 시대에 일본에게 협조한 것도 합법이다.-_-
경우가 틀리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상황이 결과를 항상 합리화시켜주지는 않는다는 거다.
절대적은 아니지만, 적어도 잘못된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럼 마지막으로 양경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성모 화뷁에 대한 이야기에서 갑자기 양경일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뭐냐고?
내가 이 글을 쓰게 해준게 바로 디씨 인사이드의 김성모 갤러리고, 양경일 작가와 김성모 화뷁의 비교 때문이다.
거기에서 있었던 양경일 작가에 대한 비난, 그리고 현재 우리 나라에서 양경일 작가에 대한 일반적인 비난은 이런 것이다.
이 비난은 감히 우리 나라 작가가 일본에 넘어가서 만화를 그리고 거기다가 만화가 역수입되어서 일본 출판사에 돈을 벌어준다는 것이다.
헤! 헤! 헤! -ㅂ-^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일본에서 역수입되어서 열받는다고?
우리 나라 만화계를 버리고(?), 일본 만화계에서 활동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럼 박지성은? 이영표는? 박찬호는? 박세리는? 김미현은? 안정환은?
그 선수들은 국내 스포츠계를 버리고 해외로 도망가 버린거 아닌가?
그 선수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그 수입을 벌어주고 선진 스포츠 문화 속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긍지를 심어준다고?
그럼 양경일 작가는? 대체 그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틀린게 뭐가 있냐?
게다가 이 비정상적인 국내 만화계에서 더 좋은 조건의 외국으로 나가는 건 오히려 안 나가는게 이상할 정도다.-_-
적어도 양경일 작가는 이 땅의 만화 문화에 독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이 나라의 수많은 만화가들에게 칭찬을 보낼 것은 당연하지만, 그게 양경일 씨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나라의 만화계가 얼마나 열악한 지는 만화가이면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지 보면 알 수 있다.
만화보다 라그나로크에 더 열광하는 이명진 작가나 이제는 게임 디자이너라고 불러야하는 지 고민되는 김태형 작가,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한다고 알고 있는 이태행 작가.
그 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만화를 포기하거나 이 땅에서 만화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다.
모두 이 땅의 척박한 만화계 속에서 그나마 계속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들에게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땅에서 만화를 그려야한다고 말할 정도의 자격을 갖추고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고는 있는가?
단지 만화는 후루룩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싸가지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은 어떻게 되도 좋다는 유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은 해 봤는가?
대체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은 하고서 그런 비난을 퍼붓는 것인 지.


각각의 이해 관계와 만화에 대한 인식에 따라서 아마 이 두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나 만화 문화의 발전과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에서 장기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김성모 화뷁과 양경일 작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하나의 문화에 대해 좀 더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따져봐도, 김성모 화뷁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가 앞으로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만화의 가능성을 엿보았고, 그것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다.
만화를 무시하기 전에,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보기 전에 당신은 이 땅의 만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고민해보라.
당신이 더 좋은 만화를 보기를 원하고,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건전한 그리고 올바른 문화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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