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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탐구/낙서

너의 이름은, 드로리안

☜피터팬☞ 2017. 6. 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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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Back to the Future"에 등장했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

어제 나는 이 드로리안을 중고 자동차 매매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야 말았다.


나무위키에 올라와있는 드로리안 사진


내 또래의 아재들이 어린 시절에, 그리고 더러는 지금도 열광하는 영화 "Back to the Future"를 정작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SF를 싫어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해저 2만리"라던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같은 SF적 요소가 짙은 이야기를 좋아했음에도 이 영화는 어째 나와 인연이 없었다. 아마 TV에서도 몇번 방영을 했을텐데도 못 봤다. 아니 안 본 건가? 어쨌든 이 영화는 나랑 접점이 없다. 그런데 드로리안이라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차는 드로리안이 아닐 수가 없다.



어제 중고차를 한 대 구입했다. 

애당초 여유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원래부터 순위에서 한참 밀려있었다. 하지만 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결혼할 때 아버님께서 당신 차를 바꾸시면서 주신 구식 체어맨이 있었던 것. 이 체어맨의 이름은 -아주 단순한 이유로- 의자왕이었다. 너무 오래 전 인물의 이름을 붙인 탓이었을까. 이 녀석은 13만 km를 뛰었다고는 해도 너무 골골 댔다. 결국 운행중 몇번 문제를 일으킨 것과 더불어 이사와 함께 잔뜩 늘어난 빚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자 보험 기간 만료와 함께 처분을 하고 대략 한달여를 차없이 지내던 중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하고싶은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하는 일을 아직 구분하기 어려운 나이의 아이와 함께 살면서 차가 없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은 -게으른 우리 부부에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아직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마나님의 운전 실력을 키우면서, 재정상황이 나아져서 더 좋은 차로 넘어가기 전까지 게으른 우리를 보좌해줄 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휴가는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은 나에겐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때마침 가까운 중고차 매장에 예상보다 싼 가격에 차가 올라왔고, 연식에 비해서 주행거리는 매우-×10- 짧아서 이것저것 잴 것도 없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시간을 좀 오래 잡아먹기는 했지만, 중고차 구매는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그렇게 구입한 차는 기아 로체LEX20.


역시 나무 위키에 올라온 로체 사진


차에 그다지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라서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었지만, 기왕에 산 차 기능 정도는 알아보기 위해 둘러보던 중 내 눈에 무엇인가가 확 하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별다른 생각없이 만나서 지루한 이야기가 오가던 소개팅 중에 갑작기 상대방의 매력을 발견하고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지던 순간과 같았다.


의정부 본가를 다녀오면서 찍은 차량 내부


사진에 이미 힌트가 잔뜩 들어가 있어서 이미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나를 사로잡은 그 매력은 바로, 클래식한 내부의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 차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2005년식 차량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지 특별한 경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이미 휴대용 CD 플레이어도 보편적이라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세트 플레이어는 전혀 예상 밖의 아이템이었다.


지금이야 신곡이 발표되자마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내 감수성이 빅뱅처럼 폭발하던 중고생 무렵에 그런 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보급되던 CD를 거부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을 카세트 테이프로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카세트 테이프가 골동품이 되면서 내가 애창하던 노래들도 의정부 본가의 책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이문세씨가 별밤지기를 하던 때에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했던 90년대 중반의 가요들 역시 가수들의 앨범이 처한 상황과 다를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인터넷으로 노래를 듣기 시작하면서 카세트 플레이어와 함께 내 앨범 수집의 열정도 함께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런데 카세트 플레이어라니!! 그렇게 세월의 한 구석으로 밀려나, 이제는 모두 잊혀졌다고 생각한 내 추억의 흔적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의정부 본가에서 손에 잡히는데로 들고 온 녹음 테이프 몇개


때마침 의정부 본가에 갈 일이 있어서, 서울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동안 먼지만 쌓이던 녹음 테이프 몇개를 꺼냈다. 당시 집에서 굴러다니는 테이프는 닥치는데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사용했었던 터라 라벨도 제각각이고, 시간도 너무 오래 흘러서 무슨 노래가 담겨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무렵 내 취향의 노래라는 것 뿐.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세트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었고, 충분히 들어줄만한 음질로 노래가 나왔을 때의 희열이란. CD나 고음질 파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귀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테이프가 늘어진 수준만 아니라면 괜찮은 내 막귀에는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음질이었다.

당시에 노래를 녹음하던 규칙 중에 하나는 멘트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노래만 녹음하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녹음된 노래의 가수와 제목을 모르는 것이 태반이었다.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당연히 모른다. 처음 녹음을 시작하던 때에는 노래방이 생기기 전이라서, 노래방에서 부르기 위해 제목을 따로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처음으로 노래방을 간 것은 고등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사실 또래에 비해서 늦은 편이긴 했다.) 당시에 나는 그냥 테이프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제목은 몰라도 가사는 다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멜로디와 가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더라는 것. 덕분에 의정부에서 창동으로 오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마나님과 아이는 추억의 가요와 함께 내 노랫소리도 들어야만 했다.



20여년전과 비교하면 음색도, 성량도, 음역도 모두 부족하고 가사도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이 노래 가사와 멜로디 만으로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던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운전 중인 차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래들이 유행하던 그 시절 새벽 늦도록 혼자 노래를 하면서 느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그 무렵의 나는 노래하는 것을 참 좋아했고, 새벽 2~3시까지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서 참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사한 집에서 새벽에 노래를 부르다 이웃집의 항의를 받고 나서는 몇번 이불을 쓰고 노래를 하다 그만두었던 것이 생각난다. 확실히 중학생 때까지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않고 노래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파트라서 집에서 노래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지만... 차는 다르다. 노래방처럼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데 노래방에서처럼 찾을 수 없을까 염려할 일도 없다.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들은 내가 좋아해서 녹음한 노래들이고, 차에서 부르는 노래는 아무도 방해하거나 항의하지 않는다.(마나님과 아이만 참아준다면..^^;;) 이 차를 운전하면서 노래하는 동안, 나는 이 노래들을 녹음하고, 플레이하면서 따라 부르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 차의 이름을 드로리안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느냔 말이다. 차를 바꾸면서 또 이름을 지어줄 꺼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ㅋ 이 차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명백히, 분명하게, 빼박캔트, 확실한, 드로리안이다. 



테이프에 담겨있는 노래들을 한참 듣던 때엔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 두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내 과거의 일부를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이어져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둘러말할 필요없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기뻤다. 너의 이름은, 드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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