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일본과 나, 그리고 국격 - 일본 불매 운동에 대한 단상 본문
일본의 아베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한국에 경제적 전쟁을 선포했다. 대외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식민 지배로 피해를 받은 민간인의 배상이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행정부의 태도를 두고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하다가, 북한에 전략물자가 유출될 가능성으로 이유를 바꿔버렸지만 둘 다 말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다. 헌법을 통해 3권분립이 보장된 나라에서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을 행정부에게 무시하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일본이 주장하는 자유무역 논리와도 어긋난다. 그리고 전략물자 유출 가능성의 부분에서도 우리보다 일본이 더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우리보다 물자 관리에 문제점을 드러내는 나라들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 내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일본의 입장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논리적으로 이해될만한 지적을 한 적이 없고,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논리 부족에 대한 지적을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지않다는 식으로 회피만 해왔다. 도대체 일본이 왜 이런 무리하고 무례한 짓을 하는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은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극우인 아베 총리가 자국 총선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현재의 일본 헌법을 바꾸고 싶어서 벌이는 어거지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나라 시민들은 이런 일본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고 여기저기서 일본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불매 운동이 시작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며 일본 불매 운동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며 이번 기회에 일본에게 의존하던 분야의 독립이 가능하다며 격려했지만, 일부는 불매 운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불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감정적이라며 태도를 나무랐다. 일본의 어떤 경제인은 이 불매 운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 운동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 대한 복잡한 시선이 지금 우리 사회의 이슈다.
79년생인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 일본은 어떤 이미지일까?
내 어린 시절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해서 7시에 끝나는 어린이 프로 방영을 사수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미리 신문 TV 편성표에서 특선 만화 방영 시간을 확인해서 행여나 놀다가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우주소년 아톰, 은하철도 999, 개구리 왕눈이로 시작해서 나중에 비디오가 생긴 후에는 고드마르스와 머신로보트까지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만화 영화는, 비록 이제는 잘 찾아보진 않지만, 여전히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 영화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대충 그 무렵부터 일본과 우리 나라와의 격차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일본은 묘한 선망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랬다. 일본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가 이순신 장군에게 혼쭐나고 돌아갔다가, 제국주의 시대엔 강제로 우리 나라를 지배하다 전쟁에 패배하면서 항복한, 역사적 악연을 지닌 못되고 미울 뿐인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나라가 실은 우리 나라보다 경제는 몇배나 더 크고 문화적으로도 풍성하며 세계에서도 더 인정받고 있었고, 그냥 우리보다 잘 사는 수준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내가 국가간 대항전이라는 의미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이었는데, 이 때 우리는 일본을 누르고 종합 2위의 성적을 차지했다. 당시 각종 매체들의 호들갑떨던 모습은 그저 두 나라간의 역사적 악연에서 비롯한 감정 때문인 줄만 알았다. 우리 나라가 86 아시안 게임 이전에는 꽤 큰 격차로 일본에게 밀렸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이다. 국력의 차이와 스포츠 기량의 차이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스포츠 분야에서 일본과 대등한 혹은 우세한 경기력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나는 잘 몰랐다. 심지어 많은 스포츠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에게 뒤지고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을 이겼던 것은 그나마 선수들의 노력으로 기량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과 자존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내게 일본의 첫 모습은 역사적으로 악연이 깊은, 만만하고 생각보다 대단한 국가가 아니었지만, 객관적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었고 우리는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H2와 오!나의 여신님으로 달래고, 슬램 덩크와 드래곤 볼을 보면서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닌텐도 게임기로 파이널 판타지를 밤새워 플레이하고,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은 소니 CD플레이어로 X-Japan을 듣거나, 유행에 민감한 친구들은 일본 패션잡지 Non-no를 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때는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기 전이었음에도 일본 만화 영화와 영화(야한 거 말고 작품성이 있는!!)를 찾아 보고, 용산 상가에 발품을 팔아가며 국산에 비해 훨씬 비싼 일본 전자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어를 한글자도 모르면서 잡지를 보고, 번역된 스토리북과 화면을 번갈아보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다. 지우개부터 전자 제품까지 일본어로 쓰인 제품들이 더 고급져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애국심 때문에 우리 제품을 사야한다는 분위기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대부분 국산을 선택했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기념 선물로는 일제가 선호되었던 것만 보더라도, 많은 부문에서 일제는 국산보다 나앗다.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 레터와 토미노 요시후키의 건담을 보면서 느껴지는 우리 나라 문화의 아쉬움과, 소니와 삼성의 세련됨의 차이를 깨달으면서,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두 나라의 격차는 점점 더 선명해지며 일본은 점점 더 부러운 나라가 되어갔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일본 문화 전면 개방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일본 문화가 우리 나라에 전면 개방되면 우리 나라 문화 시장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컨텐츠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환호가 교차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나라는 결국 일본을 향해 문을 열었고, 그동안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일본의 수많은 컨텐츠들은 정식으로 수입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방식으로 우리 문화 시장이 급속히 잠식되어가는 사태는 없었다.
우리보다 일본이 많은 부문에서 확연히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시기에도 우리 나라가 그저 일본을 부러워만 하고 선진 문명이라고 무조건 따라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 지리적 관계에서 오는 경쟁심 때문인지 혹은 원래부터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민족적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과 격차가 분명하던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만들어왔다. 드래곤 볼과 슬램 덩크가 국내 만화 시장을 휘어잡고 있던 그 시기는 사실 한국 만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해이기도 하다.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를 통해 이충호, 이현세, 허영만, 이명진, 양경일, 양재현 등의 작가들이 우리 만화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파이널 판타지를 필두로 제대로 된 RPG 게임은 영어와 일어 뿐이던 시절에 손노리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라는 게임으로 한글로 된 RPG게임을 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주었다. 비록 야구는 상대적으로 열세였으나 축구와 농구,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는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삼성 전자와 LG, 현대차는 나름대로 세계 시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었다. 이 시기 대만은 좋은 비교 대상인데, 우리와 여러모로 비교되던 대만은 만화와 자동차 시장을 포기하고 일본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자동차는 경제적 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화 시장과 같은 문화 시장을 포기한 것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갔다. 전세계 음악 시장을 차지하던 CD 플레이어는 MP3로 바뀌어갔고, 인터넷은 보급되는 속도와 범위만큼 세상을 변화시켰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던 우리 나라는 이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게 계속 도전하고 있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삼성 반도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고 LG는 가전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래스로 성장했다.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 아깝다는 평가를 받던 한국 영화는 이제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으며 굳이 외산 영화를 찾지 않아도 될 수준이며, 뽀로로와 핑크퐁같은 어린이 영상물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출판 만화와는 다른 문법을 지닌 웹툰은 인터넷 보급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고, 온라인 플레이가 주류를 이루는 현재 게임 시장에서 한국은 여러모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J-팝의 아류 내지는 하위로 여겨지던 K-팝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국의 스타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대표적인 한류가 되었다. 빨리빨리 문화가 민족성이라고 이야기되는 우리 나라가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는 동안, 일본의 잘 변화하지 않는 습성은 여러 분야에서 갈라파고스화를 만들어내면서 두 나라의 격차는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부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화적인 대통령 탄핵까지 시민의 손으로 민주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동안 일본의 정치는 유사 민주주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낙후되고 발전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일본이 그렇게 좋아보이거나 대단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정도로 정치에 대한 시민 의식이 발전해나가며 주변 국가들을 부러워하는 나라에서 주변 국가들의 부러움을 받는 나라로 변하고 있었다. 세계의 변방에 있던 나라가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시간 동안, 비록 내가 그 과정에 크게 기여한 것은 없더라도, 나는 함께 성장하고 세상을 보는 인식을 키워갔다.
물론 여전히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나라다. 비록 일본이 90년대 초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르는 장기 침체 중이고, 우리의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보다 월등하다. 시대의 변화에 우리가 발빠르게 대처하며 우위를 점한 부분만큼, 전통적으로 일본이 잘 해오던 분야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다. 애니메이션, 출판 만화, 게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와 같은 하위 문화의 격차도 여전하고, 과학 기술력이나 외교같은 부분에서도 일본은 전통적으로 강했다. 일본이 하는 행태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들이 확실히 선진국이고 많은 면에서 우리보다 나은 면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내가 일본을 인정하는 태도나 시선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아마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나와 비슷한 세대는 내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일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거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의 변화는 아마 다른 세대와는 다른 우리 세대만의 독특한 지점이 아닌가 한다. 우리 세대는 집마다 전화기가 없던 시기에서 삐삐를 시작으로 핸드폰을 거쳐 스마트폰을 경험하고, 대본소 만화에서 출판 만화와 대여점 시기를 지나 웹툰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최루탄이 자욱한 신촌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뉴스로 시청하다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세대이다. 경제적 풍족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가고, 문화적 성장속에서 선진 문화와 경쟁할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음을 확인하고, 교과서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정치적 행위를 평화적으로 실현한 사건을 주체로서 경험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세대에 태어나서 지금 노인이 되신 분들과 같은 시대를 경험하긴 했지만,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것과 어느 정도 가치관이 성립된 성인이 된 후에 경험하는 것은 경험을 내재화하는 과정부터,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비록 일본이 우리보다 선진국이긴 하지만 더 이상 일본이, 아니 일본이 아니라 세계 그 어느 나라라라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국산과 일제 컨텐츠의 질과 양의 차이를 애국심으로 채워야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는 우리 것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지금 일본이 경험하지 못한, 우리 손으로 사회적 변화의 기회를 이뤄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이번 불매 운동을 단순한 악다구니와 불가능한 도전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가 이룬 것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성장해나가는 우리 이후의 세대는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른 인식을 가지고 일본과 이번 불매 운동을 바라볼 것이다.
불매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특정 단체가 선동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 도발에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번 불매 운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더 나은 분야가 많다는 것을 부정하지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번 운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고, 애국심으로만 일제를 배척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가,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것을 보고, 만들어내고, 경험한 세대가 많아졌다. 국격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우리 시민이, 우리 자신이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행할 때 상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우리의 국격이 또 한번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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