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부캐의 시대를 보는 복면 세대의 시선 본문

머릿속 탐구/칼럼

부캐의 시대를 보는 복면 세대의 시선

☜피터팬☞ 2020. 11. 1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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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90789

어느 예능에서 시작된 부캐가 유행이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드는 꽃말고.. 메인이 아닌, sub라는 의미의 부캐.
이런 부캐와 관련하여 최근 듣는 시사방송에서 보통 사람들이 sns계정을 평균 8개 정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각각의 계정을 목적에 따라 다르게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부캐가 방송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이제는 복면의 시대가 부캐의 시대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472#1375762

슈퍼맨, 배트맨을 비롯한 코믹 시리즈부터 영화 반칙왕, 미국 프로레슬링의 레이 미스테리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모습으로 활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과거의 복면 캐릭터나 현재의 부캐나 평소 자신과는 다른 역할을 하기위해 만들어졌고 각각의 캐릭터는 서로 단절되어있다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복면은 정의를 위해서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건 복면 사용에는 "피치못해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정체를 드러낼 경우 평범한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일반적인 사회에 용인되지 못할 것이 두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설정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복면에 담겨있었다. 그래서 복면 사용에 대해 고민하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리고 복면은 주로 특출난 사람들의 것이었다. 평범하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비범함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복면이었고 그래서 복면에는 평범함에 대한 갈망, 남들과 다름에 대한 고민과 기피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이런 장치들이 관용적 사회,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면을 사용해야하며 그 때문에 복면 사용자들은 고통받게 된다고. 따라서 남들과 다른 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않고,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이상적인 사회였다. 복면이 상징하는 감춤은 사회 환경에 의해 강요된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부정적인 것이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용기이자 필요한 덕목이며 추구해야할 가치로 연결되었다.

 

http://www.goodnews1.com/news/news_view.asp?seq=101212

부캐는 이런 복면의 무거움과 고민과는 꽤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예능에서건, 일반인에게서건 말이다.
복면의 무거움이 정체성의 갈등에 기초하고, 단일한 자아에 대한 추구라는 측면에서 언젠가는 벗어나야하는 장치였다면, 부캐는 자신의 다양성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둘의 역할은 비슷해보여도 실상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정체를 감추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부캐는 비범함을 필요로 하지않고, 피치못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도 이 둘의 차이를 드러낸다. 복면은 평범함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었다면, 부캐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욕망이 담겨있다.

 

사실 부캐의 이런 성격은 일정부분 복면을 쓰고 나오는 악당과 닮은 구석이 있다. 복면 악당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복면을 사용한다. 부캐 역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의미가 강하다. 내 기준에서 과거보다 사회는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남들과 다름에 대해서 그다지 관용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특이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닌 듯 하다. 여기에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미덕으로 보지않는, 혹은 굳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다. 나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미덕인가하는 포스트 모던적인 질문이 현실적인 무게를 갖는 시점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부캐에는 개개인이 욕망에 솔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부정적인 뉘앙스보다 긍정적인 뉘앙스를 더 강하게 느낀다. 부캐는 복면과는 확실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나는 피터팬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내가 가입한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도, 피터팬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주저하지 않고 피터팬을 선택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부캐는 피터팬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캐를 현실의 나를 감추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내 정체성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사용해왔다. 나는 나의 부캐를 오히려 더 드러내고 싶어했다. 이제 복면의 시대에서 부캐의 시대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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