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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0 아빠와 아들 본문

일상의 모습/너의 모습

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0 아빠와 아들

☜피터팬☞ 2021. 7. 1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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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서둘러 걷고 있는 중에 마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지, 이 시간에?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음? 영상 통화??!!

걸려온 전화가 영상 통화인 것을 확인하자 어떤 상황인지 살짝 짐작이 간다.

2021년 7월 출근 중에

전화 연결을 하자 별이의 얼굴이 보인다.

역시 그랬군.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마감일이 가까워져 가면서 최근 주중에 집에 일찍 들어간 일이 없었다.

주 52시간...? ㅋ

지난 주말에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아직 7살인 별이는 다음 주말까지 아빠를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겠지.

그래서 아마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아빠를 잠시라도 만나려고 결심이라도 했었던 모양.

그런데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한 것이 속상했던지 아빠가 보고싶다며 울고 있는 별이를 위해서 마나님이 바쁜 아침 출근시간을 쪼개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다.

 

..........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서로 부모님들이 얼마나 답답한지

성토하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첫 타자로 나선 나는 아마 아부지와 밥 먹으면서 무슨 대화를 했는데 반응이 정말 실망스러웠다는 투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을 포함한 기성세대에 불만이 가득하던 혈기왕성한 사춘기 고등학생 때의 아주 평범한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나와 함께 성토 대회에 참가 중이던 친구들의 첫 반응 때문이다.

"뭐?? 아빠랑 대화를 한다고??!!!"

당시엔 무언가 억울(?)했지만, 내가 그 대회(?)의 꼴찌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의 표준이 아니고, 내가 처한 환경이 모든 사람과 같지 않다는 점을 두고두고 상기하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우리 아부지는 나와 내 동생에게 참 많은 애정을 표출해주셨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MSX(재믹스) 게임기를 내가 초등학생 1학년 무렵에 사주셨는데,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아부지가 함께 14인치 티비를 보며 퍼즐 게임들을 하던 모습은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나와 동생이 한 팀으로 아부지와 셋이서 어거지로 야구를 했던 것도 꽤 즐거운 기억이었다.

지금이야 놀이 문화가 바뀌어서 초등학생인 아이들도 놀이터에 부모님이 보호자 격으로 있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당시의 놀이터는 부모님이 보호자 격으로도 잘 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는 우리뿐이었다!!

맞다, 우리 아부지는 놀이터에 보호자 격으로가 아니라 정말 놀아주기 위해서 함께 오시기도 했었다.

 

2020년 7월 창동 집에서

우리 아부지 역시 세대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대화가 잘 통하고 친구같이 마냥 편한 그런 타입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권위적이기보다는 다정하셨고, 위압적이기보다는 친근하셨던, 당시의 흔한 아버지와는 조금은 다른 아버지셨다.

(그래서 아부지한테 맞을 생각 안 하고 대들기도 많이 대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일로 맞은 적도 없고...ㅋ)

오락실 게임은 할 줄도 모르셨음에도 오락실을 정말 가고 싶어 하는 우리를 위해 흔쾌히 함께 가주시던 그런 아부지.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들보다 우리 아부지는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훨씬 가깝고 익숙한 존재였다.

다만, 그런 아버지였기에 내가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그런 사랑에 더 고마워했던 것은 아니다.

철이 들기 전에는 모든 아버지가 아부지같은 줄 알았고, 아부지의 특별함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아부지..ㅠㅜ)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고 결국 우리 부자는 전혀 서먹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친밀하지도 않은, 평범한 부자 관계로 있다.

(어쩌면 나중에 언젠가, 지금 우리의 관계가 여전히 다른 부자들보다 아주 친근했었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부지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쑥스러워서 말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다른 아버지들보다 우리 아부지는 특별히 다정한 아버지셨다고.

 

2020년 8월 과학관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하지만 별이 세대에게 우리 아부지같은 다정한 아빠가 더 이상 특별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의 다정한 아버지에 대한 경험과는 별개로 우리 세대 아빠들은 얼마나 자상하고 다정한지!!

당장 페이스북만 보아도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적극적으로 아이가 하는 일에 열심인 아빠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빠들 사이에서, 우리 아부지의 다정함을 넘어설 정도는 아닌 나는 그저 평범한 아빠일 뿐.

그저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야근에 시달리면서, 대출 이자와 생활비에 대한 스트레스를 겨우 극복해내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어 하고, 못해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며,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를 응원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아빠들보다 더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는, 그런 아빠다.

내가 그들과 명확히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내 사랑과 응원이 향하는 존재가 별이라는 것이겠지.

 

2021년 6월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자기만족이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별이가 원하는 것, 별이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별이를 사랑해주는 존재로 아빠인 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게으름과 일상의 무게 속에서 어떻게든 그 역할을 위해 애쓰는 이 아빠를, 별이는 참 많이 좋아하고 따라주고 있다.

때로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별이는 내가 있을 때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당연해 보일 수도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 정서적 교류는 내가 거대한 삶의 무게를 견디는데 참 많은 힘이 되어준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별이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별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사랑한다는 것.

언젠가 꽃 피울 특별함을 숨겨둔 아이의 사랑을 받는 평범한 아빠가 얼마나 굉장한 축복인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것. 엣헴.^^

 

2021년 3월 창동 집에서

..........

아직 울음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아빠의 얼굴을 보니 아쉬움은 조금 달래진 것 같았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바쁜 거 끝나면 많이 놀자는 약속을 하며출근길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주말에 별이는 원하는 대로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마인크래프트를 하면서. ㅋㅋㅋ

 

때로, 아니 종종 별이가 아빠를 찾는 것이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될 때가 있지만,

이런 사랑스러운 존재가 굳이 평범한 나를 찾는데,

내가 어찌 감히 그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냐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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