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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9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본문

일상의 모습/너의 모습

나의 현재, 너의 과거 - #9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피터팬☞ 2021. 6. 2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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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좋아졌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제 일상의 많은 것들을 사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내 세대가 어릴 때만 해도 사진은 이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있어야 했고(?!), 카메라 안에 들어가는 필름을 사야 했으며(??!!), 다 사용한 후에 인화(!!!)를 해야 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나면 정해진 매수를 다 찍을 때까지 인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는데 필름이 남은 경우에는 아무 사진이나 찍어서 카메라에 들어간 필름을 다 쓰거나,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다음의 특별한 날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상한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전부 사실이다. ㅋㅋ

별아, 정말이야. 아빠가 어릴 때는 정말 그랬어.^^;

 

2015년 11월 창동 집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 속에 남겨진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영 어색하고 익숙해지지 않아서 사진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는 내 모습이 사진에 남지는 않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진을 찍는 매력은 앞서 이야기한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할 정도로 크지 않았다. 중2병이 한창이던 때에는, 기록하고 싶은 순간은 머리로, 가슴으로 남기는 거지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해왔다.

 

2016년 11월 창동 문화센터에서

디카의 보편화로 경제적인 부분에서 꽤 많이 자유로워졌을 무렵에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사진은 내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영역은 아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간 것이 아닌 상태에서 감탄스러운 어떤 것을 만났을 때 나는 스마트 폰을 들고 그것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바로 떠오르질 않는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내가 구시대에 속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에게 사진은 그만큼 완전히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활동이 아닌 것이다.

 

2017년 4월 오사카 난바 역에서

지금까지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쯤은 앞서 이야기한, 사진으로 남기기보다 기억으로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어차피 사진으로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다 남길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 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나의 이런 사진에 익숙하지 않음이 아쉬운 순간이 종종 생기게 되었다. 

 

2018년 4월 트니트니에서

아이의 모든 순간이 다 특별하고 소중한 것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 아이도 내 일상의 일부이기에, 아이의 존재가 종종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게 되고 사진으로 남길 생각을 한참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순간이 지나서야 아, 사진으로 남겨둘걸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따라온다. 물론 덕분에 나는 그 순간을 다른 생각 없이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2019년 5월 창동 하나로 마트에서

순간의 아쉬움이 지난 후에, 다시 아쉬움이 찾아오는 것은 아이가 부쩍 커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얼마 전까지 엄마 젖을 열심히 빨던 아이가 이유식을 먹게 되고 우리와 함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때가 되면 다시 한번 그 때그때 남기지 못한 모습들에 대한 아쉬움이 찾아온다. 엄마 젖을 열심히 빨던 별이의 입술에 잡혔던 물집과 서툰 숟가락질로 얼굴 여기저기에 이유식을 묻힌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이제 할 수 있는 건 그때 그 모습을 온전히 남기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원망과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뿐.

 

2020년 4월 초안산 생태공원에서

모든 것을 다 챙겨줘야 하던 그 시점에는 바쁘고 피곤해서 미처 남겨두지 못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쩌면 이제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제 별이를 더 이상 아기로 생각하던 시간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물론 여전히 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고, 새로운 관심사를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면서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놓친 것보다 남겨야 할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기록도 당연히 계속되지만, 무언가, 더 담아냈어야 하는데 담아내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부족한 생각에 대해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2021년 4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더 좋아진 세상은 나에게 추억을 오래도록 더 생생하게 남길 도구를 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단번에 별이의 모습을 따라가 볼 수도 있게 되었고 말이다. 나중에 우리 별이가 컸을 때는 또 어떤 것이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기대되기도 한다. 별이는 자신의 아이가 빛나는 순간을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더 많이 기록할 수 있겠지? 그때가 되었을 때 별이는 지금의 내가 느끼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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