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3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본문

일상의 모습/너의 모습

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3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피터팬☞ 2021. 10. 3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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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대로라면, "내 아빠는 오덕후 (후편)"을 올려야 하지만 살짝 미뤄졌다. 개인적으로 좀 바쁜 것은 차치하고서도, 열심히 쓰다 보니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걸 깨닫고 1차 현타. 현타를 이겨내고 내용을 정리하다가 원래 쓰려던 방향이 뭐였는지 까먹어서 2차 현타... 하지만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어떻게 끌고 가는 와중에 급하게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겨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포스팅 순서를 바꿔가면서 정리. ㅋ

 

2017년 3월 창동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열심히 야근을 하고 있던 중 마나님이 별이의 행동에 관한 카톡을 보내왔다. 보통 마나님으로부터 별이와 관련된 일로 상의하기 위해 카톡이 오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만큼 별이는 우리가 염려할 만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아니고, 우리도 시시콜콜 별이를 컨트롤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게 측정 가능한 범주는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부부는 비교적 별이에게 자율성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별이에 관한 카톡이 왔다는 건 나름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별이가 요즘 습관처럼 "아이, 씨"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였다. 유치원에서 줄넘기를 하는데 본인이 생각한 만큼 실력 발휘가 안 되니까 아쉬워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는데, 울면서 "아이, 씨"라는 말을 했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전언이 있었다. 마나님은 저 말이 욕은 아니지만, 듣기에 좋지 않은 단어니까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며 카톡으로 급하게 상의를 한 것.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걸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 게임을 하던 중에 별이가 그런 말을 사용하는 걸 몇 번 들었기 때문. 그런데 나는 별이가 그 말을 하는 걸 듣고 지적을 하려다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씨"가 나쁜 말인가???

 

2017년 7월 북서울 꿈의 숲에서

별이의 "아이, 씨"는, 내가 명확히 들은 것을 근거로 확신하는데, "씨" 뒤에 다른 음절은 전혀 붙지 않은 순수한(?) "아이, 씨"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닌 상황 자체에 대해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 혼잣말이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저속하고 저열하거나, 혹은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욕과는 달리 "아이, 씨"는 단어로 봤을 때는 특정 상황에 대한 표현을 하는 감탄사다. 듣는 사람이 불쾌하다는 효과(?)는 있지만, 단지 불쾌하다는 이유로 어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적절할까? 내 고민의 시작은 바로 여기였다. 어떤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상대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그 말을 금지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비슷한 예로 생각나는 것은 "인성"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의미 자체로 보면 그냥 가치중립적인,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말일뿐이다. 하지만,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이 "ㅇㅇ 네 인성"하는 식의 비하적인 표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단어의 용례를 잘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가 나쁜 단어가 되어 있었던 것. 인성이 어떻다는 서술이 들어가야지만 그 단어를 듣는 사람의 기분을 변하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그럼 이 경우에 바람직한 해결책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인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단어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그 단어의 사용에 문제가 없음을 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럼 "아이, 씨"는 어떤 의미일까?

 

2018년 9월 창동 집에서

알 수가 없었다. "아이, 씨"는 나쁜 말인가? 씨X, 개X끼와 같은 욕처럼 그 말이 저속한 것을 상징하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서는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미처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일 뿐, 저 말을 듣는 사람이 충분히 불쾌할 만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자.

포털 사이트에서 "아이씨", "나쁜 이유"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결과 대부분은 "아이씨"라는 말을 하는 어린아이들의 언어 습관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이씨"가 왜 나쁜 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그 말은 이미 나쁜 말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글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몇몇 커뮤니티에서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아이씨가 나쁜 말이냐"는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글의 댓글을 살펴보면 "아이씨"는 "아이씨X"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다른 주장은 몰라도 이 주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데, "아이, 씨"라는 말은 어떤 말의 줄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포탈에서도 그다지 만족할만한 답을 찾아내지 못해서 계속 검색을 하던 와중에 국립국어원에도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역시나 속시원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페이스북 지인들에게도 내 궁금증을 던져봤다.

(그리고 많은 페북 지인들께서 내 질문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해주셨다.)

 

여러 의견을 듣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던 중에 내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다.

첫 번째 근거는, "아이, 씨"라는 감탄사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젠장"이라는 것인데, "젠장"은 국립국어원의 의견으로는 욕이다. 기본적으로 욕은 상스러운 표현이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맞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젠장"과 비슷한 용례들을 떠올려보니, "짜증 난다", "썅"같은 표현이 있었고, "짜증 난다"는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썅"이라는 표현은 저속한 표현이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맞다. 다만, 여전히 "아이, 씨"는 상대적으로 덜 저속하고 상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대상에 대한 표현이라도 "성기"는 "자지" 또는 "보지"와는 다른 뉘앙스로 다가가는 것과 비슷할 듯.

두 번째 근거는, 앞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듣는 사람의 기분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근거의 뉘앙스와도 연결되어 있긴 하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화자뿐만 아니라 청자도 존재하기 때문에, 청자의 존재를 완전히 떨어뜨려놓고 "말"의 성격을 정의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특히 페북 지인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강해진 부분이다. 의견을 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것은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보다는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기는 한데, 실제의 의미와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그 단어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근거는 여전히 비판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지만 잘못 사용되거나 오해가 있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오용과 편견에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싸움을 별이가 벌써부터 시작할 이유는 일단 없으니까.^^;;;

 

2019년 12월 창동 집에서

이쯤 되면 "아이, 씨"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다. 부모가 판단하기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이 무슨 죄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간단명료하게 그런 말을 쓰지 않도록 잘 가르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지 않냔 말이다. 하지만, 부모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에게 다 나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가르칠 때는 명확한 진리에서 출발하지는 못하더라도,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위엄과 신뢰가 생겨날 수 있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거나,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경험의 교훈이 완전무결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문제없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러니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으면 고민하고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런 식의 고민과 탐구를 하는 것은 또 아니지만.^^;; 어쨌든 완벽하지 못한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완벽해지는 것도 아닌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저 부모라는 권한으로 어떤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싫었다. 특히나,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금지하는 것은 내가 어릴 적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어른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이유로 어떤 것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앞으로 별이가 커 가면서 만나게 될 세상과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적응해가고 살아가고 있을 별이에게 부모랍시고 내 기분이나 좁은 식견을 바탕으로 조언을 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무엇이 진짜 좋은 방향인지를 찾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이것은 별이에게는 철학의 문제고, 나에게는 원칙의 문제다. 살아가면서 함께 성장하고 배워가는 것. 그 지점에서 별이와 나는 동등하다.

 

2021년 10월 남양주의 이모 결혼식장에서

내가 열심히 나름의 근거를 찾고 있었던 것과는 별개로, 이 문제는 인식했을 때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배운 말의 사회성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이의 입에 "아이, 씨"라는 말이 완전히 붙어버리기 전에 주의를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따라주는 착한 심성에 더불어 눈치가 빠른 편이라서, "아이, 씨"가 좋지 않은 말이라는 지적에 바로 동감을 표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처럼, "아이, 씨"라는 말을 쓰고 싶은 상황이 되면 "씨"를 빼고, "아이"라는 말만 하거나, "아이, 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알려주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비록, 비슷한 상황에서 별이가 어떤 말을 쓰는지 아직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렇게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이해시키고, 시도하면 되는 일이니까.

언젠가는 나 혼자서가 아니라 이런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지며 같이 고민할 날도 오겠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숙제와 네가 겪어야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좋은 방향을 찾을 준비도, 아빠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니까 별이는 좀 더 자유롭게, 그리고 대범하게 너의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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