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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5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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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너의 과거 - #15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피터팬☞ 2022. 2.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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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능력을 경험하기 전까지 그를 믿지 않던 베드로는 곧 예수의 제자 중 첫 번째 제자로 인정받을 만큼 그를 따르게 된다.

하지만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평가받는 베드로도 예수가 체포될 당시, 그를 세 번 부인한다.

물론 그 후에 그는 다시 예수를 부정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순교한다.

초기 기독교 역사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드로지만, 그의 신앙은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지고지순했던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앙에 대한 입장도, 심지어 베드로마저도 이토록 달라진 사례가 있는데,

나같이 평범한 사람의 입장이 과거와 좀 달라진다고 해서, 그게 뭐 그렇게 큰 문제가 되겠냐 싶다.

 

2020년 12월 수유 외가 댁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서 공고하게 생각했던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무언가 변할 때에는 그냥 쉽게,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입장에 대한 정리와 새로운 입장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

예전에 내린 결론을 굳이 고수하지는 않지만, 결론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간은 언제나 있어왔고, 그런 순간들마다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를 잘 해왔다고 믿는 편인데,

최근의 고민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간단하게 정리가 되질 않는다.

이전에는 내 입장에 대한 문제의 영향력이 주로 나에게 한정되어 있었던 반면, 최근의 고민은 별이에게까지 영향력이 닿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의 나에게 그 당시 결론이 과연 지금도 타당한지를 묻게 하는 질문은 게임과 관련이 되어있다.

내가 하는 게임이 아닌 별이가 하는 게임이 최근의 이슈로,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2022년 2월 현재, 별이는 만 6세 10개월인 시점이다.

우리 나이로 이제 8세가 된 별이의 최근 선호도를 조사해보면, 아마 유튜브나 다른 놀이를 밀어내고 게임이 1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와 관련된 포스팅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게임이 더 핫해져서 과연 쓰게 될지...^^;;)

코로나로 야외 놀이에 대한 부담이 되던 시기,

집에 있는 놀잇감에 한계를 느끼면서 구입한 닌텐도를 시작으로 별이는 본격적으로 게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닌텐도 마인크래프트와 게임 코딩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임은 최근에는 사촌 형과 로블록스라는 게임으로 바뀌었고,

사촌 형과 함께 게임을 하는 시간은 별이에게 있어서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신나는 시간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나님과 나는, 게임을 시작한 다른 아이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창동 집에서

마나님의 게임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너그러운 편으로(때때로 귀찮아서 너그러운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게임을 악마화하거나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편은 분명히 아닌데, 게임의 악영향에 대한 걱정은 상당한 듯하다.

나는,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게임을 비롯한 문화 장르에 관해서는 상당히 리버럴 한 입장이다.

어린 시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 중에 청소년들의 일진회 문제가 있었는데 이때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만화책이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비행 사유는 만화책이라는 유해매체 때문이라는 진단 속에서 사회적으로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졌다.

(지금도 잘 나가는 모 거대 서점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매장에서 만화 코너를 완전히 없애버린 적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판매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왜 유해매체를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는지 입장을 묻고 싶었다.)

만화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하던 청소년이었던 나는 만화에 대한 당시의 관련 토론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만화를 유해매체로 취급하는 입장의 사람들 주장을 들을 때면 

만약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이 만화를 보지 않았다면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 입장은,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직접적인 이유는 만화가 아니고 그들이 놓인 환경이라는 것이다.

비행 청소년들이 만화의 어떤 표현을 모방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 문제없는 청소년이 순전히 만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비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관심을 갖고 올바른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대하고 있었는데, 만화가 그 모든 것을 망쳐버렸을까.

아니다.

부모가, 가정이, 학교가, 또 사회가 맡아야 할 청소년 관리의 책임을 만화에게 전가하면서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당시 비행을 저지른 학생들은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대우 명제로 같은 만화를 보고도 비행을 저지르지 않은 청소년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만화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던 마녀 사냥은 지금 유튜브와 게임으로 표적이 바뀌었을 뿐 양상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게임이나 유튜브가 아이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고, 이미 망가진 환경에 있는 아이가 게임이나 유튜브를 계기로 표출된다고 본다.

제대로 된 관심과 교육이 있다면 아이가 접하는 매체나 콘텐츠는(심지어 성인물이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별이가 성인물을 접하고 있지는 않은데, 일단 집에 별이가 접할 수 있는 성인물로 분류된 콘텐츠가 없다..^^;

 

2021년 11월 창동 집에서

그런데 여태까지 이런 입장은 순전히 매체를 접하는 대상을 '나'로 한정해서 세워진 기준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유해 매체(성인물을 포함하여!!)를 접하고 싶었다는 욕망도 숨어있고 사실 충분히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기준을 적용해야 할 대상에 별이가 추가되었고, 동일한 기준을 별이에게 적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 내로남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생각에 대한 보편타당함을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별이에게 지금까지 내가 고수해 오던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적용해도 괜찮은 걸까?

 

별이는 현재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을, 게임 권장 연령과는 상관없이 즐기고 있다.^^;

처음 게임의 세계로 이끌었던 마인크래프트도, 지금 즐기고 있는 로블록스도 별이는 특별히 금지당하는 것 없이 할 수 있다.

(기준이 적절하냐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마인크래프트도 로블록스도 별이는 아직 권장 연령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별이가 아무 게임이나 마음껏 하고 있고 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별이에게는 게임보다 중요한 것이 많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 게임을 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별이가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마나님과 나와 함께 약속한 숙제를 모두 끝내야만 한다.

숙제를 끝내고 별이가 하는 게임에 대해서 마나님과 나는 지금까지 특별히 제약을 두거나 한 적은 없다.

물론 어떤 게임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는 별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뭐 이런 수준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별이는 하루 종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이 재미있겠지만, 끝내야 할 때는 끝내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종료하고 게임기의 전원을 끄는 것은 모두 별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마나님과 나는 계속해서 끝낼 시간이라는 것만 이야기한다.

절대 우리가 강제로 게임을 끄거나 전원을 끄진 않는데, 게임을 끝내는 행위의 주체는 별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 별이는 이런 순간에 칭얼대면서 매우(x100) 아쉬워하긴 하지만, 스스로 게임을 닫고 게임기의 전원을 끈다.

 

게임을 끝내야 할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보통 약속한 시간을 넘어서 게임을 끝내지만 별이는 게임을 끝내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서너 시간을 하고도 게임을 그만하라는 소리에 칭얼대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마나님과 나는 그런 때마다 (말하는 사람도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설득(혹은 충고)을 별이에게 해왔는데,

게임은 즐거우려고 하는 것이고, 게임을 즐겼으면 칭얼대지 말고 끝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내용이다.

(최근에 나는 게임을 끝내고 칭얼거리는 별이를 안아주면서 게임에 지배당하지 말고 게임을 지배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내용에 대해 별이가 이해했는지 혹은 아직 엄마 아빠의 말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나이라서 무작정 수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별이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받아들이고 있었고, 최근에는 게임을 끝내는 과정이 수월해지고 있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분명히 별이에게 여전히 게임을 끝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연습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적어도 내 눈에는 별이가 게임을 하고 싶은 욕망과 절제해야 하는 당위 사이에서 자기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상을 게임으로 한정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내용을 가만 생각해보면 게임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문제는 항상 있다.

지루해지지 않고, 아직도 즐겁고 재미있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을, 그것도 그 감정을 한창 느끼는 중에, 멈추는 것은 어렵다.

비단 별이의 경우가 아니라 나도, 마나님도, 몰입하고 있는 순간에 빠져나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시련은 인간이라면 평생 겪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련이 힘들다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마 별이는 게임을 통해서 배우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여전히 고수하는 기준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 별이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것이다.

 

2021년 12월 창동 집에서

베드로의 입장 변화는 비록 고전적이긴 하지만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게임의 위험한 부분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나와 마나님)와 별이와 게임의 삼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고 쌓아갈 것인가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이다.

최근 유행하는 육아 프로그램처럼 우리의 방식에 대해 관찰 상담이라도 받고 싶지만, 그게 뭐 하고 싶다고 무작정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는 우리가 긍정적이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스스로 점검하고 대화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다.

게임을 절대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별이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인정하면서 함께 가는 지금

게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매력적인 매체이고 전통적인 매체와는 다른 차원의 재미를 주는 매체이다.

그리고 별이에게 게임(그리고 유튜브)는 친구들이나 형들이 들려주는 신기한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하고 직접 즐기는 매체다.

이 매체는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것이고 우리 생활과 밀접해질 것이다.

부정한다고 부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외면하고 피한다고 없어지는 매체가 절대 아니다.

게임을 막는 것보다 어떻게 게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유해야한다는 것이 내 기본 방향이다.

 

2022년 1월 도봉산 둘레길 입구에서

다만 이 지점에서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나는 별이가 즐기는 게임들을 별이처럼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나는 별이가 좋아하는 게임들에 별다른 흥미가 안 생기고 재미를 못 느끼겠다.-ㅅ-;)

과거에 내가 어른들이 만화를 유해 매체로 지정한 것은 만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나도 그런 이해가 부족한 지점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별이가 즐기는 게임을 함께 플레이 하면서 별이의 게임 세계를 공유하고 이해하면 좋겠는데...

미안해, 별이야.

아빠의 게임 취향과 지금의 네 게임 취향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구나....ㅠㅜ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으로 최근에는 게임 자체에서 옛날과 같은 재미를 잘 못 느끼고 있는게 가장 큰 원인이다.

어쩌면 과거의 어른들도, 이미 늙어버려서 내가 만화에서 느꼈던 그 열정을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만화를 유해 매체로 지정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약간의 이해심도 생겼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과거의 어른을 이해하는 부분이 생기는 과정인 지도...ㅎㅎ

다만 과거의 어른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가능하면 최근 재미있게 본 인터넷 짤처럼, 아이가 즐기는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게임을 추천하는 아빠가 되었으면 했는데...

그 정도로 힙한 아빠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 많이 아쉽다. 쩝.

 

비록 게임에 대한 흥미는 과거보다 부족하지만, 먼 훗날 별이의 아이와 함께 하려면 지금부터 게임을 즐기는 연습을 해둬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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