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뮤지컬 - 밑바닥에서 본문

감상과 비평/기타

뮤지컬 - 밑바닥에서

☜피터팬☞ 2006. 6. 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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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어느 지방의 허름한 술집.
뮤지컬은 이 작은 술집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뤄진 단막극이다.
술집 주인인 타냐의 동생인 페페르가 출소한 날부터 뮤지컬은 시작된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애환과 고통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블라디보드톡에서 온 나타샤가 희망을 불러온다.

술집 주인인 타냐와 살인범의 전과를 안고 있는 페페르와 폐병을 앓고 있는 딸이자 동생인 안나.
창녀 나스쨔, 사기꾼 싸친, 알콜중독으로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배우.
백작과 페페르의 전 연인인 그의 부인.

그들의 삶은 망가지고 피폐했으며,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삶이다.
제목 그대로 그들의 삶은 '밑바닥에서'의 삶 그 자체이다.
그들은 나름의 바람과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 그런 바람과 희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실은 너무나 무겁고 높은 벽으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을 뿐,
그들은 단지 현실을 힘겹게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샤가 나타난다.
그녀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자리를 찾아 타냐의 술집까지 온 발랄한 처녀였다.
나타샤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희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희망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용기를 붇돋아준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해주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창녀의 사랑. 살인범의 평범한 삶. 폐병의 완치. 알콜 중독의 무료 치료.
그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비참한 삶도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희망은 그 희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잔인하기도 하다.
현실의 벽은 희망이라는 달콤한 환상을 가지고 넘어가기엔 너무 높기만 하다.
다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찢기고 배반당한 희망이었고, 잔혹하고 무거운 현실이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뮤지컬을 보는 내내 너무나 심한 감정의 기복에 무척 힘이 들었던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높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곤두박질치듯이 끌어내리는 분위기의 전환은
원래의 공연 시간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 것같다.
그렇게 희망은 배반당하여지고, 끝끝내 남는 것은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뿐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 뮤지컬은, 나는, 그리고 관객은 많은 힘을 요구했다.
희망이란 환상일 뿐, 한순간의 꿈이고 달콤한 마약. 결국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그리고 그것이 끝나는 순간 다시금 그 실체를 더욱 부풀려서 나타나는 현실.
이 뮤지컬이 계속해서 영화 '바그다드 카페'랑 연관지어서 생각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비참한 현실에서 하나는 희망의 완성을, 또 하나는 그 희망의 파괴를 말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밑바닥에서의 삶에, 희망마져 배반당한 지금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글쎄. 뮤지컬은 그것에 대한 마지막 대답을 주진 않는다.
단지 뮤지컬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져도 환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뮤지컬을 보고 난 후에 내 머릿속에서는 '블라디보스톡의 봄'이 멤돌고 있다.
나약한 인간인 나는 결국 희망의 파괴를 보았으면서도 그 부서진 희망에 계속 기대를 하고있는 지도.
그리고 그것이 그 뮤지컬 속의 사람들을,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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