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연극 - 검은 백조가 사는 곳 [작 정소정/극단 혼/연출 이현빈] 본문
http://blog.naver.com/yjchoi293?Redirect=Log&logNo=80116380598 에서 찾은 검은 백조 사진
※검은 백조 :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하늘에 세개의 태양이 보이는 환일 현상이 목격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뉴스는 환일 현상은 안좋은 일의 징조로 세계 종말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는 소식을 들려주며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날... 행복한 가정의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괴롭힘을 당하던 나약한 고등학생이 개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당뇨에 걸려 고통받던 어린 아이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뉴스에서 보도된 이 사건들이 발생하기 전, 이들은 특정 브랜드의 안경을 착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이 착용한 안경을 만든 회사는 가벼운데다 고급스럽기까지 한 브랜드의 안경이었다.
그 회사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달렸지만. 실제 안경을 생산하는 중국 현지 공장에서는 자살자가 끊이지 않았다.
회사를 물려받게 된 회장의 아들은 이 자살사건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중국 공장에 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곳에서 회장의 아들을 자살한 옛연인의 환생으로 착각하는 리우라는 아가씨를 통해
공장의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과 노동자들의 분노에 찬 바람을 알게 된다.
리우와 사랑에 빠지게 된 회장의 아들은 리우가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낙태를 해야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하고 아버지에게 공장 관리의 문제를 보고하려고 한다.
하지만 공장 감독관의 횡포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사실 리우가 뒤에서 조종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리우와 함께 회장의 아들도 자살하고.. 리우와 중국 노동자들이 만든 안경은 세상에 풀려
행복한 가정의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괴롭힘을 당하던 나약한 고등학생이 개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당뇨에 걸려 고통받던 어린 아이가 자살하는 일을 일으킨다.
그리고 뉴스에는 하늘에 세개의 태양이 보이는 환일 현상이 목격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6월 5일로 이 극은 무대에서 내렸다.
이야기의 전말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내 리뷰의 기본으로 삼지만,
이 경우에 이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극을 누군가가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부 풀었다.
극본을 동아리 후배가 썼고,
그 후배와 친한 선배가 다른 후배에게 연락을 하고,
그 후배가 내게 연락을 해서 보게 된 연극.
퇴근 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대학로의 금요일 저녁을 장식해준 이 연극을 보고 난 후,
극본을 쓴 동아리 후배에게 내가 한 첫마디는 "야, 넌 왜 금요일 저녁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였다.
이 작품은 내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인식하고 있지않은 불편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구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하는 생산에 정당한 소비는, 과연 그 생산의 주체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는 것일까.
우리가 누리는 생활의 편리가 사실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 얻었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식사 후에 즐기는 그윽한 커피의 원두가
저 멀리 에티오피아에서 갓 열살이 넘은 아이들이 10시간 넘게 따낸 것이라면,
우리가 항상 편리하게 이용하는 컴퓨터의 부품이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만들어낸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과 편리를 과거와 같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누릴 수 있을까?
(극본을 쓴 후배는 이 소설의 모티프 중 하나가 중국의 애플 공장에서 일어난 연쇄적 자살 사건이라고 했다.)
연극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안경을 사용했다.
연극이 끝나고 가진 술자리에서 '안경'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잠시 나왔지만,
나는 안경이라는 것에서 나름 의미를 두고 이야기를 보았다.
안경은 일종의 프레임,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해석을 했던 것이다.
연극 속에서 안경을 썼던 사람들은 그 안경을 만든 사람이 원하는 방향,
분노하고 절망한 그들이 저주한 방법으로 세상을 보았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의 종말을 가져오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언젠가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먹을 것들이, 그 안에 담긴 힘없는 노동자의 분노를 담아 독이 되고
살인 흉기가 되어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을 해한다고 해도 그 나름의 타당성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착신아리나 링에 담긴 원혼이 그 제품을 만든 노동자들의 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연극 속에서 이런 노동자들의 분노는 자신들을 구속하고 유린한 이 세상 그 자체를 향하고 있다.
단순히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공장 소유주와 회사가 아닌,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세상에 분노한다.
그 분노에 희생당하고 상처받고 고통받게 되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다.
연극 속에서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리우의 분노는 그녀가 낙태를 강요받았던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단순히 그녀 하나를 지켜준다고 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회장의 아들이 가슴이 터져라 미안하다고 외친다고 해도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만들어진 세계의 종말은 몇몇 사람들의 참회와 반성으로 고쳐질 수 없다.
그렇게 연극은 부조리한 현실의 세상을 보여주며 그것이 곧 세계 종말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내가 이 연극에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저 무력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상황.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무력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상황' 때문에 이토 준지의 만화를 좋아한다...;;)
물론 연극에서 뚜렷한 해결책이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도 아니었을테고 책임도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희망도, 가치도 제시하지않고 보여주는 절망적인 현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것을 가치로 삼은 나를 참으로 무겁게 짓눌렀다.
물론 연극 속에서 회장의 아들은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 보여주는 소망을 담은 안경을 만든다.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소외받으며 스러지는 영혼을 위한 그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저 보여주고 알리는 것으로는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나를 짓눌렀던 짐들을 털어버리기엔 너무 약했다.
어쩌면 작가는 아직 이런 부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을런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리는 것을 넘어서는 더 적극적인 행동을 원했던 것일테고...
종말의 시작이 이야기의 끝이라기 보다는
종말을 극복해내는 것을 이야기의 끝으로 삼고 싶은 내 욕심이 나를 더 짓누른 듯 하다.ㅋ
에잇... 기왕 절망적으로 만들 꺼면 그런 희망따윈 없애지...-ㅅ-;;
주저리주저리 한참을 썼다가 지웠다.
쓰다보니 내가 리뷰를 쓰는지 칼럼을 쓰는지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확장되는 것 같아서... ^^;;
연극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와 맞닿아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 판단에 근거한 소비의 문제다.
아마 연극 후에 술자리에서 이야기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노동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로 피를 토하면서 이야기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직접 노동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연극은 중국 공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멀리 중국으로 갈 필요도 없다.ㅋ
우리 나라에서도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기업(이라고 쓰고 '삼성'이라고 읽는다.)의 공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없이 화학약품을 다루다가
백혈병을 얻었지만 해당 기업과 법의 외면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걸, 뭐.
우리 나라에 암 발생율이 높아지는 건
어쩌면 그 기업의 가전제품에 담겨있는 노동자들의 한이 강한 전자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 가정에는 그 기업에서 나온 가전제품 하나 이상은 다 가지고 있을 테니까.
호오... 이거 은근히 설득력이 있는 연극인데..ㅋㅋ
그러고보니 백혈병 이야기도 제대로 언론에서 다뤄준 적이 없구나... 프레시안에서만 나왔지..ㅋ
연극 속의 작은 희망처럼 어쩌면 아직은 이 세상에 진실의 목소리를 더 널리 퍼지게 하는게 우선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눈앞에 꺼내놓고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되던 웃음 코드에서도 나는 웃지 못했다.
주변 모든 관객이 소리내어 웃을 때도 나는 그저 인상을 구기면서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연극이 끝났을 때 나는 처참한 기분으로 담배를 찾아야만 했다.
이제는 연극이 현실에서 실현되게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할 때인 지도 모른다.
P.S : 연극 속에 등장한 희생자는 안경을 사용한 사람이든 중국 노동자든 모두 씁쓸했지만, 그 중에 최고는 당뇨병에 걸린 어린 여자아이였다. 당뇨 때문에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못 먹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이 나왔는데... 나도 어릴적에 두드러기 때문에 좋아하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무렵이었는데.. 그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으니까..ㅋ 그래서 그 이야기가 나올 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ㅠ.ㅠ
P.S 2 : 아... 이 연극 이후에 작가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다음 작품에서 또 엿볼 수 있겠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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