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영화 - 올드보이 [박찬욱] 본문

감상과 비평/영화

영화 - 올드보이 [박찬욱]

☜피터팬☞ 2005. 1. 19. 16:46
반응형
User-created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요."

"이제 나 무슨 낙으로 살지?"

"사랑해요... 아저씨..."


오대수(최민식)는 이우진(유지태)에게 복수를 하려고 살았다.
"11년 째되니까 살만하더라."
자신의 몸에 한 해, 한 해를 새겨가며 왜 자신을 15년이나 가뒀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했다.
처절한 복수. 그랬다.
"넌 시체도 찾을 수 없을꺼다. 왜냐하면 내가 널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먹을테니까.

그런데 이우진은 오히려 그걸 즐기고 있다.
그는 오대수가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지 없는 지 마치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오대수를 향해 느긋하게 미소지어보이는 이우진. 대체 어떻게??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올드보이'
'올드보이'를 막 보고났을 때 웬지 '복수는 나의 것'이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복수는 나의 것'감독이 박찬욱이라는 것은 조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과연 복수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감독은 복수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복수는 나의 것'을 아직 보지않아서 그 감독이 생각하는 바에 좀 더 접근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올드보이에서 내가 최초로 접한 것은 인간의 집착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
인간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에 가장 용감해지고 가장 강인해진다.
이런 인간이 목적이 없을 때는 완벽하게 무너져내리지만, 목표가 있을 때는 그것에 대해 맹목적일 수 있다.
그에게는 뒤를 돌아볼 필요도, 의미를 둘 것도, 가치를 부여할 것도 남아있지않다.
영화 속 오대수가 이우진에게 그토록 집요하게 접근하려고 하면서 자신조차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가진 것은 그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그가 갇혀있는 동안 살해되었고, 15년만에 풀려나자마자 확인한 것은 자신의 어린 딸이 입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갇혀있는 동안 그는 아내의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어 친구도 친척도 없이, 말 그대로 세상에 홀로 남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우진은 아마 오대수가 더욱 그렇게 되길 바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않은 인간이 무기력하고 절망적으로 무너지기보다는 오히려 복수심에 불타길 바랬을 것이다.

복수를 한 것은 오대수가 아니라 이우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사랑을 했어.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오대수는 복수를 하려 달려들었지만, 그것은 덫이었고, 미끼였다. 이우진은 철저하게 오대수에게 복수를 하려든다.
그의 복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오대수에게 미도를 보낸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미도는 오대수에게는 복수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원이었지만, 이우진에게는 복수의 절정이었다.
가진 것이 있는 자는 죽지 못한다. 아무리 복수심에 불타고 상대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쳐도, 자신 외에 다른 것을 가진 자는 죽을 수 없다.
인간의 집착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났을 때 다음 대상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그래서 오대수는 살고, 이우진은 죽었다.

광각을 이용한 뛰어난 공간 감각과 감독의 색감, 그리고 충분히 만화적인 연출을 통해 그의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추악하고 잔인한 본성. 그것은 박찬욱 감독의 선호하는 소재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 던져진-여러가지 의미에서-아주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불쾌한 이유는 박찬욱 감독이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를 인정하고 싶지않는다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형식면에서. 감독은 결국 이우진의 손을 들어준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던져진 구원은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회피였고, 속임수였으며, 자기기만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오대수의 글의 끝부분인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글귀는... 감독의 마지막 자기 방어이자 오대수의 자위라고 믿는다.

P.S : 올드보이의 몇몇 연출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을 떠오르게 했다. 깡패들과 복도에서 싸우는 씬이나 칫솔로 사람 죽이기. 가위로 실장의 귀를 찔러 죽이는 장면 등.
반응형
Comments